허위·조작 기준 모호 피해 사칭 제3자 소송 늘듯…비판보도 위축 불가피
8월 입법 타이밍 놓칠 수 없고 '레임덕 최소화' 등 대선 승리 여건 위해?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19일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언론 재갈법'이라는 비판을 듣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소관 상임위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전체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민주당은 숙려기간 5일을 보낸 뒤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예고하고 나설 정도로 강경한 입장이다.

과반수 의석을 내세워 그간 쟁점법안을 무수히 처리해온 여당이 이번 언론중재법 또한 단독 처리를 불사하고 나서면서, 득과 실 등 이면에 깔린 계산이 무엇인지 관심이 쏠린다.

'실'부터 따지자면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름 우호적이었던 거의 모든 언론사들을 적대적으로 돌린다는게 가장 크다. 장기적으로는 2024년 총선에까지 민주당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 국민의힘 이달곤 간사(오른쪽)와 의원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의결을 앞둔 전체회의에서 도종환 위원장의 회의 진행를 막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독재정권 등 전세계 다른 권위주의정부만큼 심하다는 비판 또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터져나온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비판받는 지점은 해외에서도 유사 입법사례가 없을 정도로 독소조항으로 가득찬 법이라는 것이다.

법 개정안이 갖고 있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는 최대 5배까지 매길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허위·조작보도의 기준이 모호해 제 3자가 피해자를 사칭하고 나설 경우 소송전 남발을 막을 수 없는 내용이 꼽힌다.

미국과 영국이 그나마 세계 주요국가 중 이번 법안과 유사한 법체계를 갖고 있지만, 그 궤를 달리 한다.

미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고 판례마다 상이해 사실상 각 법원 재판부의 판결에 의해 정착됐다. 미국 언론계를 좌우하는 건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다'는 수정헌법 1조인데, 이에 따라 언론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직접 규정한 법률은 따로 없다. 그나마 판례 중 '악의적 허위보도'를 입증해 징벌적 손배를 인정한 사례는 있었다.

영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요건에 대한 입증이 형사책임 입증 정도로 엄격하다. 영국의 경우, 해당 보도가 명예훼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확정적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를 입증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매우 제한된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이다.

인도 또한 영국과 마찬가지로 가해자에게 '확정적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음'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명예훼손으로 인한 언론사의 이익이 손배액을 능가할 것이라는 기대를 입증해야 징벌적 손배를 적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에 대해 징벌적 손배를 별도 규정한 사례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강행 처리가 현실화되면서 여론은 악화되어 가고 있다.

국제언론인협회(IPI·International Press Institute)는 17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성명을 올려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 기자들은 향후 잘못된 보도에 대해 의도적이지 않다는 것을 자신들 스스로가 입증해야 하는 책임까지 지게 된다"며 "모호한 규정과 개념의 불확실성 때문에 언론의 비판 보도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콧 그리펀(Scott Griffen) IPI 부국장은 이날 성명에서 "과도한 징벌적 손배 때문에 언론 보도에 불만을 품은 특정인이 해당 매체를 대상으로 '경제적으로 파탄시키겠다'는 협박을 가할 수 있다는게 특히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언론현업 4단체가 "문제적 법안의 강행처리 중단과 국민공청회 개최 요구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나온 독소조항 일부에 대한 지적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춰 강행처리 명분으로 삼는 것은 신뢰를 저버린 반민주적인 처사"면서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다만 민주당이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안 처리를 강행하고 나선 배경에는 이토록 서두를 수밖에 없는 '득'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타이밍이다. 이번 달을 넘기면 문체위 상임위원장은 국민의힘 몫이 된다. 문체위 분야의 쟁점법안을 쉽사리 처리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사실상 민주당에겐 이 달이 마지노선인 것이다.

당장 닥친 대선에서 절대적으로 승리해 정권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도 속내 중 하나로 꼽힌다.

앞서 소위 '불공정-내로남불' 사례로 꼽히는 조국 사건으로 인해 언론의 특종 보도가 잇따르고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문재인 정권은 좌초 분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때마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사태가 일어나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조국 사건과 같은 전례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언론의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민주당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권이 사실상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언론의 펜과 입이라도 막아야 레임덕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부장판사는 19일 본보 취재에 "언론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웠다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안만 강행하는 것도 괴랄한 일"이라며 "정치적으로 잃을 것만 있다면 민주당이 지금 이렇게까지 나오겠는가, 반드시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이라 보고 초강수를 던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번에 법안을 강행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독소조항 일부에 대한 지적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춰 강행처리 명분으로 삼았다. 어떻게 해서든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며 "일부 제한적으로 바뀌었지만 고의-중과실 추정, 기사열람 차단청구, 정정보도 청구 표시 등의 독소조항이 버젓이 살아있는게 사실이고 이를 소송에 들어가 재판정에서 어떻게 악용하려 들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당 지도부가 장악력을 유지하는 8월 임시국회에서 속도전으로 처리하는 것이 민주당 대선 후보의 짐을 덜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친문 등 강성 핵심 지지층은 여전히 여당의 언론개혁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이들의 이탈을 최소화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언론중재법을 향한 국내외의 강한 비판에 줄곧 침묵하면서, 민주당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상임위 처리는 끝났다. 민주당이 과반수를 앞세워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일괄 통과시킬지 주목된다.

꼼수 논란에 이어 단독 강행 처리까지. 언론중재법 통과 과정에서 민주당의 구설수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