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한 만큼 좋아한다"…존재감 사라지는 현대 소통의 지렛대

   
▲ 조세형 서울시립대 교수
최근 들어 부쩍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이다. 그런데, 과연 문화예술이란 무엇인가? 또, 그것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세계적으로 문화예술이라는 단어가 주목받고 있고 많이 들어도 봤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문화예술의 사전적인 정의 또한 여느 개념처럼 각자 다양한 입장이나 이론에 따라 정리되겠지만, 쉽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문화예술이란 일차적으로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즐기기’가 아닐까? 공작적 인간(Homo faber)과 유희적 인간(Homo ludens)의 두 속성을 결합, 조화시켜 온 것이 인류의 역사였다면 일하는 시간만큼 그 나머지 즐기는 시간도 소중한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다음으로, 그러한 문화예술의 실천을 위해 생각할 여지가 큰 것이 ‘자신에게 투자하고 자신을 알아가기’이다. 우리는 흔히 근대를 두고 개인(자아)의 발견이 이루어진 시대라 한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조차도 스스로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세계는 물론 자아에 대해서도 총체적 이해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감조차도 없는 것이 현실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상황에서 문화예술을 통해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스스로 발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초를 다투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스트레스가 심할 뿐더러 자신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것이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모두 충족되고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사회에서 그 다음으로 충족되어야 할 것은 정신적 만족과 자기존재감의 확인이다. 문화예술의 실천활동을 통해 자기욕구가 채워지면서 스트레스도 승화가 되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며 생활의 활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기는 무척 어렵다는 점이 문제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세종문화회관을 비롯한 공연장과 국립현대미술관 등 전시장도 많고, 최근에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을 잘 안다고 나서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하다.

문화예술의 실천을 위해서는 물론 돈도 들겠지만 크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각자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투자하는 일이 핵심적인데, 그러한 투자를 잘 이끌어주는 요소들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서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문화예술의 모범사례들을 한번 보기로 하자.

첫째 사례는 전병현 작가이다. 그는 “싹공일기”를 통해 미술계를 포함하여 문화예술계 전반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바, 작가 스스로 생각하는 작가적 삶을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글과 그림이 함께하는 작가일기 형식으로, 미술이 뭔지 잘 모르고 부담스러워하는 대중들에게 알기 쉽고 가까이 다가가기 쉽도록 배려하였던 것이다. 인터넷 연재물로 시작하여 출판하였는데,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온라인 매체를 통해 지금도 소통을 계속하고 있다.

2003년 첫 책이 출간된 이래 2013년 두 번째 책이 나왔다. 그리고 “글과 그림이 적당히 어우러져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거창하지 않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같은 삶의 궤적에 대한 서술일 따름이다. 화가로서, 때로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계절에 순응하는 일상의 모습들이 때론 걸쭉하고 때론 순수하게 그려져 있다.”는 평을 얻은 바 있다. 필자는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 경력자라는 이력보다 그의 이러한 면에 더 주목하고 싶다.

   
 
그러한 작가의 노력이 거두고 있는 결실 하나를 들어본다. 2015년 2월 11일 인사아트센터에서는 최병진 작가의 프레스코전이 열렸다. 전병현 작가는 그동안 프레스코(fresco painting) 강습반을 운영해 왔고, 최병진 작가는 그 강좌 출신이다. 일명 ‘회반죽 그림’이라고도 불리는 프레스코는 고대로마 이후로 13세기 후반부터 16세기까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그는 고구려 벽화 등에서 보는 동아시아 전통과 연결지은 바 있다. 작가의 대중적 소통의 성과는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사례는 이동연 작가이다. 그가 부군 임태규 작가와 함께 운영하는 “배돋 문화공간”은 그림만으로 살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예술 현실과 그 속을 살아가는 작가의 선택인 한편, 어린 시절의 꿈을 펼치지 못한 사람들이 와서 그림을 배우고 자신들의 꿈을 충족시켜 나가고 만족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미술에 관심과 취미가 있는 사람들이 와서 더 깊이 미술을 배우고 알아가는 공간이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그림’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소통하는 공간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공간은 우리의 문화예술에 기여한다. 이 공간을 통하여 어떤 사람은 준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콜렉터가 되기도 하는 등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다.

   
 
이미지 자료에서 보듯이, 단순한 대중강습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수준이 높다. 그림 부분을 수묵화와 채색화 두 개의 반으로 운영하는 한편, 노자와 장자 동양철학 강좌를 함께 운영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동양 전통의 문학과 철학(미학)을 수묵화와 미인도에 접목해 온 작가의 방법론이 대중적 실천활동에도 반영된 결과라 할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취미지만 철학이나 사상을 이해하고 작품에 임하도록 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장자 철학은 그 자체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개요는 이해하고 작품에 임했을 때 더 깊이있는 자기표현도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하고 깨닫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경험한 것을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좋아한다.”

셋째 사례는 미술을 벗어나 연극 쪽을 보기로 하자. 갖은 문화예술행사가 풍성하게 열리던 작년 12월, ‘관악연기아카데미’의 공연 <한여름 밤의 꿈>도 있었다. 이 아카데미는 모대학 연극동문회의 부설 극단인 ‘관악극회’에서 개설한 과정이다.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서 3개월 동안 연기 기초부터 시작하여 공연까지 해보도록 한다. 강사진은 프로들(전문 연출가, 대학 교수 등)로 구성되어 있다.

수강생은 완전 초보도 있고 연극을 몇 번 해본 사람들도 있다. 출연진을 보아도 그런 점이 도드라졌다. ‘오베론’ 역의 배우는 대학 때 공연 경험이 있는 현직 변호사이고, ‘티타니아’ 역의 여배우는 학창시절 연극 경험은 없으나 취미와 치유를 위해 연극 활동에 열중하여 무대에 섰을 때 우울감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다고 한다. ‘드리트리어스’도 대기업의 현직 상무로, 방광암 초기 발견 후 요양 차 휴직 중인데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들 가운데 하나로 연극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년 초 직장에 복귀하는데,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서는 기간이 행복했다고 전한다. ‘돌담’ 역은 큰 광고회사를 거쳐 현재 모 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인데 전문가 수준의 취미생활을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공연을 통해 자기만족, 자존감, 자신감 등을 얻고 있음을 보게 된다. 특히 연극은 공연예술이므로 공연과정을 통해서 그 사람의 잠재력을 볼 수 있고 자기치유의 과정 또한 목격할 수 있었다. 무대의 부담감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가족들은 박수를 치면서 응원해주었다. 인상적인 가족애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평상시 보던 부모나 배우자의 모습이 아닌, 무대 위에 서서 자신의 예술적인 기량을 발휘하는 모습을 통해 자녀나 배우자들에게 주는 영향 또한 컸으리라 짐작한다. 그런 출연자의 모습, 자신이 펼치지 못한 꿈을 예술을 통해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가족들은 평상시에 말로는 다하지 못한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내면의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이상으로 문화예술의 대중화와 실천이라는 주제로 세 개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감조차 없던 사람들이 실천적인 활동을 통해서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우호집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었다. 우리는 “경험한 만큼 좋아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어떤 경험은 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관심은 안목을 키우고 높이며, 그러한 관심과 안목에 따라 다시 경험의 양과 질이 달라지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퀄리티가 높아지도록 한다. 결국, 문화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고 가장 가까운 우리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조세형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