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수다한 물음에도 소이부답(笑而不答:웃음을 뛸 뿐 답하지 않음)하던자, 내조의 덕을 베풀어 준 영세반려(永世伴侶:끝없는 세상의 반려)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여든 아홉 노정객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아내 박영옥 여사를 먼저 보내면서 손수 지은 비문이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21일 마지막 가는 부인의 옆을 지키며 숨을 거둘 때까지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한을 내려놓듯 박영옥 여사의 숨이 넘어가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65년간 반려자로서 살아온 아내와 마지막 입맞춤으로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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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후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 故 박영옥 여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22일에도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내가 이렇다 할 보답도 못했어. 나를 남겨 놓고 먼저 세상을 뜨니 허망하기 짝이 없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충혈된 눈으로 조문객을 맞은 김 전 총리는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만나는 사람마다 전했다.
이완구 총리에게는 “마누라 하고 같은 자리에 눕고 싶어 국립묘지 선택을 안했다”며 “먼저 저 사람이 가고 그 다음에 언제 갈지…곧 갈 거예요. (제가) 외로워서 일찍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에게는 “65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큰 병 앓은 일이 없었는데 아주 못 된 병에 걸려 가지고. 그런데 아주 편안하게 숨을 거뒀어요. (나보다) 몇 발짝 앞서서 간 거죠”라고 애통함을 전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생전 “딴 여자한테 눈길 한번 준 적 없었다”고 말할 만큼 생전 금슬이 좋았다.두 사람은 1·4후퇴 직후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결혼식을 올린 후 고 박영옥 여사는 최전방에 투입된 남편이 걱정돼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강원도 춘천까지 찾아갔던 일화도 유명하다.
고인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셋째형 박상희씨의 딸로, 박근혜 대통령과 사촌지간이다.
경북 선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구미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51년 2월 박 전 대통령의 소개로 김 전 총리를 만나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