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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
모두들 아주 신기해했다. “한국은 드라마 왕국이네요”
이제 더한 신종병기가 나왔다. 예능이다. TV가 전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형식을 두른 예능 프로그램이 지금 미디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예능 리얼리티 쇼와 다큐의 풍성함이 한계 효용 정도를 훌쩍 넘어 너무 심한 지경으로 번지고 있다. 들불처럼 확산된 리얼리티 예능은 이제 곧 미디어 소비자들의 문화건강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냉철하게 진단해 보자.
이번 설 연휴 명절 미디어 풍경을 보면 안다. 설정도 가식도 없는 이른바 제로 세팅으로 최고 시청률에 등극한 '삼시세끼'를 필두로 지상파TV들의 신상품 '아빠를 부탁해'가 흥행을 주도했다. '삼시세끼'와 '아빠를 부탁해'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온 키워드 조각들이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인터넷 구역을 점령해 버렸다.
그러니 인기 예능은 재방송 봇물이 터졌고 디펜딩 챔피언 격인 '슈퍼맨이 돌아왔다', '무한도전', '런닝맨', '1박 2일' 같은 지상파 간판 프로그램들도 더 놀랍게 더 자극적으로 맞서는 경쟁 모드에 돌입했다. 예능 대전 여파는 전천후로 퍼졌다. 음악가요 프로그램도 오디션을 빙자한 소프트 예능으로 돌았고 토크도 요리도 교양도 뉴스마저도 죄다 예능 코드 심기요 예능 바라기 일색이다.
정통 음악프로그램이나 정통 뉴스, 정통 다큐 같은 양화를 축축해버린 악화로서 집권한 예능 대세가 날로 강고해지는 와중이다. 한 가지 더. 프로그램 사이 안구정화와 휴식 담당도 하던 광고까지도 그 예능 그 리얼리티 포맷에 덧 입혀 강제 복습을 시켜버리는 미디어 환경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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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시세끼./ TVN캡처 |
예능 과포화 환경을 보는 첫째 의심은 우인화(愚人化)다. 우인화는 한때 통속 영화나 드라마, 용비어천가류 간신 미디어로 온 국민을 집단적으로 홀린 우민화의 뉴 버전이다. 우민화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획책한 음모였다면 우인화는 미디어산업이 바람 잡고 낱낱이 흩어지고 지친 개인들이 쉽게 넘어오고 빠져 동조하게 된 자해나 자학에 해당한다.
하루 종일, 설 연휴 내내 TV 예능 쳇바퀴를 돌며 우인화된 시청자, 소비자들은 역설적이게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기 자신 진짜 리얼리티 라이프는 축내고 외면하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아기들, 아이들, 장인 장모 사위, 독신자들 내보내더니 이제는 아빠나 다 큰 딸까지 총 동원하는구먼”하고 내뱉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말 그렇다. 연예인은 물론이고 일반인까지 서울 강남 고급빌라는 기본이고 저어기 오지 시골 어촌 농촌까지 구석에다 안방에다 CCTV 달고 퍼스널 라이프를 훔쳐보는 예능 폭주가 부른 우인화를 어찌 해야 할까?
예능 천국을 보는 그 다음 시선은 병든 한국, 병든 한국인 그리고 병든 미디어다. 70년 전 1945년 나온 시인 오장환 작품 ‘병든 서울’이 결핍의 병이었다면 70년 후 2015년 지금 한국은 과잉의 병에 내몰리고 있다. 미디어 과잉이 불러온 이 병증은 중독이나 마취 성분이 너무 강해 사람들이 자각 증상도 못 느끼는 채로 빨려들어가는 거대한 늪만 같다.
그러니 이제 예능에서 빠져나오는 해독제를 생각할 때다. 빨간 불이 켜졌다. 해독제는 정시 번쩍 차리게끔 또렷하게 내놓아야 한다. 어중간한 절충은 삼갔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는 예능이 워낙 대세이다 보니 “예능으로 배운다”는 미디어 일각의 분석 기사가 그럴듯하게 나온 적도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진화 발전하다보니 학생, 직장인, 주부들에게 상담해주고 지혜도 건네주기도 하는데 이런 순기능을 부각한 진단이었다.
일리는 있겠고 예능으로 자기계발 하고 학습하는 것도 못할 바는 없겠지만 문제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현실에 있다. 예능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인터넷 낭설과 카더라 루머와 거짓과 같은 음성 매체, 스낵 컬처, 블랙 미디어 바이러스가 더 강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디어 전체 건강함을 지키는 뭔가를 해내야 할 시점이 왔다.
우스개 하나로 비유하자면 ‘종편’의 문제가 생긴 셈이다. 종편을 허가해 주었더니 종일편파방송이라는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게 요즈음 보통 시청자들의 눈높이요 썩은 미소로 전하는 우스개다. 예능도 꼭 그렇게 변질되었다. 지상파나 케이블이나 종일 예능으로 편파 방송하는 또 다른 종류의 괴물로 둔갑해 있으니. 얼마나 예능 정도가 심했으면 같은 출연자들끼리도 혀를 끌끌 찰 정도로 강력한 사회적 신드롬이 되었다.
'삼시세끼'를 두고 역시 예능에 빠진 배우 이서진이 “요리 배운다고 차승원 이기겠냐?”고 말했다지 않는가. 또 다른 예능 '꽃보다 할배'로 기존 예능 챔피언 '삼시세끼'와 붙어 차별화해야 한다는 말이었겠지만 이젠 일반인들까지 마구 감염되고 있는 중이다. 만재도 어촌에서 어묵도 만들고 케첩과 식빵, 오렌지 마말레이드까지 만들어내는 만화 같은 예능은 이미 온 국민의 일상 거울이 되어버렸다. 누구 전업주부 남편이 솜씨 좋다 하면 “차승원도 울고 가는...” 이라 하고 뉘 집 꼬마 아이들까지도 대한 민국 만세 삼둥이, 사랑이 에피소드에 입에 달고 산다.
이런 정도로 과열된 예능 종일편파방송은 미디어산업 전체에도 분명 해악이다. 담배나 진배없다. 한 개비 그냥 핀다고 하지만 담배가 스트레스 풀고 피로도 구제해 준다고 자위하면서 그만 속절없이 중독에 빠지고 마는 것과 매한가지다.
예능은 예능일 뿐 그냥 오락이고 소일거리고 때로는 배울 것도 있고 웃게 해준다고 반기는 이 순간 우인화된 미디어 시청자는 자기 자신의 리얼리티를 저당 잡힌다. 설 연휴 SBS 뉴스 기획이 꼬집은 대로 가뜩이나 시간 빈곤에 허덕이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숱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간 도둑이자 개개인들의 리얼리티 교란자일 수 있다.
종일편파방송으로까지 비화된 미친 예능 중증 해독제는 다름 아닌 지상파나 CJ 같은 공급자 손에서 나와야 한다.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를 만든 나영석 PD나 '무한도전' 김태호 PD 같은 이들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미디어 미학이 적절한 해독제 일 수 있다. 카타르시스가 아닌 소격이론을 뜻함이다. 리얼리티나 다큐 포맷으로 예능을 만들었지만 대부분이 대리 만족을 종용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류였다.
이걸 차별화하기 위해서라도 베르톨트 브레히트 소격이론을 감안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리얼리티 예능을 보면서 시청자가 소외되고 격리됨(소격)을 느끼고 자신의 리얼리티를 되돌아 보게 만드는 힘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아직 살아 있는 아카데미상 수상작들이 이 소격이론을 웅변해 주고 있으니 뛰어난 예시들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우리 지상파와 CJ 같은 콘텐츠 리더들이 예능 해독제를 손수 제공해주길 바란다. 깊은 감동과 희망을 다뤄 국민들 자신 실제 리얼리티를 되찾아주게 만드는 정제된 예능, 멋진 예능으로 한류를 확장시키나가는 예능 혁신을 촉구해 본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