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서울특별시의 남쪽 경계를 이루며, 암릉을 마치 병풍처럼 둘러친 두 바위산이 관악산(冠岳山)과 삼성산(三聖山)이다.
이 두 산을 가르는 경계가 되는 곳이 바로 ‘무너미고개’다.
사실 ‘무너미’ 혹은 그 변형인 ‘무네미’란 이름이 붙은 고개는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경기도 용인, 충남 공주, 충북 청원, 설악산 내설악과 외설악 사이, 지리산, 인천 장수동 및 서창동, 경남 진주 등이다.
서울 수유리(水踰里)도 원래 무너미인데, 한자로 옮겨 수유리가 된 것이다.
그 의미는 ‘물이 넘는(넘은, 넘치는)’ 혹은 ‘물을 넘는 고개’란 뜻이다. 옛날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물을 만나면 건너거나 우회하는 길이 생기는데, 그런 길에 대한 일반 명칭이라는 것. 관련된 전설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반론도 있다. 산을 뜻하는 고어(古語)인 ‘무레’와 ‘너미’가 합쳐진 말로, 산등성이를 넘는 고개를 의미한다는 것.
아무튼, 관악산 무너미고개는 이 산을 넘는 가장 낮은 길이다. 속칭 ‘깔딱’ 구간도 없다.
이 고개에선, 관악산 팔봉능선(八峯稜線)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양쪽으로 넘친다. 서울 쪽으로는 도림천(道林川)이 계곡을 따라 서쪽으로 흘러 안양천으로 합류하고, 경기도 안양시 방향으로는 삼성천이 내려가다가 역시 안양천에 합쳐진다.
고개가 나눈 물길이 결국 안양천에서 다시 만나는 것.
삼성산 쪽에는 삼막천(三幕川)이 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삼성산의 대표 사찰인 삼막사에서 이름이 유래한 삼막천은 안양예술공원 아래쪽에서 삼성천으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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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미고개 오르는 길. 도림천 계곡/사진=미디어펜 |
여름이 막바지인 오늘, 이 무너미고개와 삼성천, 삼막천을 이어 걷는 계곡트래킹에 나섰다.
출발지점은 서울대학교 정문 옆, 관악산 등산로(登山路) 입구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오면, 서울대 정문 겸 관악산 입구로 가는 버스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주말 오전에는 등산객들과 서울대생들, 지역주민들로 버스마다 승객이 가득 찬다.
관악산을 향해 오르는 길은 항상 산객들이 넘친다. 관악산과 삼성산 산행길 들머리이니, 당연한 일이다. 도림천은 꽤 수량이 있어, 여름날 서울대 옆 관악유원지(冠岳遊園地)에는 피서객이 제법 많다.
초입에 전에는 못 보던 인공폭포가 있다. 돌 벽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벽천(壁川)이다.
산을 오르는 길은 좌우로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하늘을 가리고, 여름 한낮의 땡볕도 새어들기 어렵다. 특히 가을에는 단풍(丹楓)이 절경인 길이다. 왼쪽 아래는 계곡물이 흘러내려간다.
머지않아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은 삼성산 등산로다. 우린 왼쪽으로 간다.
곧 아름다운 호수정원이 보인다. 분수(噴水) 2곳에서, 하늘을 향해 힘차게 물이 뿜어져 오른다. 그 위로 뭉게구름이 한가롭다. 너머엔 사각 정자(亭子)가 고즈넉한 모습이다.
특히 호숫가의 이끼 낀 나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밑동부터 몸통과 가지 저 꼭대기까지, 온통 푸른 이끼를 뒤집어쓴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본격적인 계곡길이다. 좌측으로 도림천을 끼고, 산길을 오른다.
제1.2 야영장(野營場)을 지나,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엊그제 비가 많이 와서, 산기슭에서 없던 폭포까지 생겼다. 물이 많으니,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신이 났다. ‘다슬기’를 잡는 아낙네도 보인다.
제4 야영장 좌측 관악산 정상 연주대(戀主臺)로 가는 갈림길, 또 우측 삼성산 삼막사 행 등산로를 다 지나면, 무너미 고개 가는 길만 남는다. 길 옆 샘에서 목을 축이고, 계속 오른다.
얼마 안 가 고갯마루다.
별다른 표식은 없고, ‘제4쉼터’와 삼막사 방향 안내 말뚝 하나만 서 있다. 잠시 앉아 숨을 고를만한 곳도 없고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기도 힘든, 좁은 고개 정상(頂上)이다. 방향표시가 없는 왼쪽은 관악산 팔봉능선이다.
반대쪽으로 넘어가 조금 내려가면, 반가운 물길과 만날 수 있다.
나무 밑 시원한 계류(溪流)에 발을 담그고, 싸온 음식으로 입맛과 허기를 채워주면,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산 길도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길이다. 시멘트 포장의 완만한 경사다. 오른쪽으로 계곡물이 흘러내려간다. 바로 삼성천으로, 안양예술공원 즉, 옛 안양유원지(安養遊園地)로 이어지는 물길이다.
그 중간에 서울대 관악수목원(冠岳樹木園)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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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관악수목원 호숫길/사진=미디어펜 |
이 수목원은 1967년 처음 설립돼, 1971년 대통령령으로 국내 최초의 수목원으로 등록됐다. 수목 관련 교육과 정보의 축적, 우리나라 자생식물(自生植物)의 수집.증식.보전.전시 및 연구, 국내외 관련 기관과의 교류.협력이 설립목적이다.
총면적 1501ha, 수목 전시지역은 25ha다. 목본과 초본 등, 약 1146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희귀 및 멸종위기(滅種危機) 식물의 보전, 자생식물 정보 수집, 대학교육 및 연구지원, 사회공헌 역할을 한다.
과거엔 일반 등산객들이 들어갈 수 없어서 철책 옆길로 우회해야 했는데, 이젠 산 쪽 후문을 개방,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아직 반대편 안양예술공원에서 들어올 수는 없다.
입구 왼쪽 산기슭에는, 비산동 도요지(陶窯址)가 있다.
경기도기념물 제124호인 이 도요지는 고려 후기인 11~14세기에 사용된 유적이다. 양각.음각.반양각된 고려 백자(白磁)와 청자(靑瓷), 그리고 철기 등의 다양한 파편이 반경 40~50m에 널려 있어, 고려시대 도자문화의 다양한 발전상을 한 눈에 보여준다.
궁궐과 관청에 상납했던 고급자기를 구웠던 전북 부안이나 전남 강진과 달리, 이 곳의 도자기들은 일상용기(日常容器)가 주류다.
특히 서울 근교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려청자 도요지이며, 국내에 하나뿐인 고려후기 백자 요지이기도 하다. 고려후기~조선초기,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숲 터널을 조금 내려가면, 길 왼쪽에 호수가 나타난다. 고즈넉한 호수가 아름답다.
대잔디원, 무궁화(無窮花) 꽃밭, 유리온실, 야생화 화원, 소잔디원 등을 차례로 지난다. 숲 속에는 야외 강의장 같은 곳도 보인다. 이윽고 왼쪽 큰 건물을 지나니, 바로 정문이다.
밖은 안양예술공원(安養藝術公園)이다.
맨 앞 뱀 같이 구불구불 이어진 투명한 원통형 조형물이 반긴다. 2005년 안양유원지가 예술공원으로 업그레이드된 이 공원에는 국내.외 작가들의 조각품과 조형물들이 줄지어 서서, 관람객들을 기다린다.
삼성천이 흘러내려가는 유원지에는 여름철, 항상 물놀이 객들이 장사진(長蛇陣)을 이룬다.
삼성천을 건너 조금 가면, ‘음식문화 거리’다. 마침 일행이 아는 단골집이 있어, 많은 식당 중 선택을 해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
식당 뒤뜰에는 인공폭포가 흘러내리고, 새빨간 봉선화(鳳仙花. 봉숭아) 꽃이 참 정겹다.
식당가를 지나면, 안양예술공원의 ‘랜드마크’인 대형 인공폭포가 기다린다. 마치 주상절리(柱狀節理) 같은 인공 돌기둥들이 솟고, 그 사이로 시원한 폭포수가 쏟아진다. 이를 배경으로, 사람들은 기념사진을 찍기 바쁘다.
삼성천 너머 오른쪽에는, 주차장이 있다. 그 곳에 안양역(安養驛) 가는 버스가 있다. 하지만, 천변으로 내려와 산책로를 따라 내려간다. 오른쪽 멀리 ‘김중업건축박물관’이 보인다.
그 앞에 중초사지(中初寺址)가 있는데, 보물 제4호로 지정된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이 있다.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신라 흥덕왕 2년(827년) 세워진, 건립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국내엣 유일한 당간지주다.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64호 삼층석탑은 고려(高麗) 중기의 작품이다.
내처 삼성천변을 걸으면, 반대편으로 건널 수 있는 돌다리가 나타난다. 그 오른쪽으로, 또 다른 물길이 흘러내려온다. 삼막천이다.
합류지점에서 삼막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천의 반도 못되는, 소하천(小河川)이다.
머지않아 멋진 아치형 돌다리가 보인다. 조선 정조대왕의 수원 화성과 융릉 행차를 위해 건립했다는, 유서 깊은 다리 만안교(萬安橋)다.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8호로, 조선후기의 대표적 홍예석교로 평가된다.
만안교를 건너 아스팔트 대로를 따라 500m 정도 가면, 수도권전철 관악역이 나온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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