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산업계 55% "2050 탄소중립 전환 어려워"…금융지원 절실
산은·신보 등 정책금융으로 국내 산업계 탈탄소산업 재편 활발
기후 변화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살 곳을 잃은 '북극곰의 눈물'이 이제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음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상황이다. 강대국과 글로벌 리더, 기업들은 기후 재앙을 피하자는 대원칙 속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가 바꾸고 있는 세상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새로운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강대국들의 헤게모니 다툼, 기회를 잡기 위한 기업들의 전략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우리 역시 기후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편되는 국제질서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과 냉철한 전략이 요구된다. 미디어펜은 '기후위기 리포트' 심층 기획시리즈를 통해 '신기후 시대'에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을 짚어보고 급변하는 환경에서 도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전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위기를 타파하는 방안으로 '탄소배출 제로'를 뜻하는 '탄소중립'에 주목하고 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내걸은 파리기후협약을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군을 중심으로 투자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탄소중립이 요원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금융권이 석탄 관련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는 '탈석탄금융'에 나서는 한편, 산업계의 탈탄소·저탄소 산업전환을 위한 지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전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위기를 타파하는 방안으로 '탄소배출 제로'를 뜻하는 '탄소중립'에 주목하고 있다. / 사진=미디어펜DB


영국 스탠다드차타드그룹이 지난 3월 공개한 '탄소중립보고서-제로노믹스'에 따르면, 기업들의 탈탄소 목표치와 실제 이행 수준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산업계의 55%는 '자사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향해 빠르게 전환하지 않는 상황이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금융지원(전환 비용 조달)을 꼽았다. 또 글로벌 기업의 85%는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을 위해 높은 수준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글로벌 산업계가 탄소중립을 위한 투자에 공감하면서도 실상은 따라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기후협약 목표 달성을 충실히 지원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47%에 그쳤다. 

특히 탄소배출이 심한 탄소집약적 산업군과 신흥시장 기업들이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에 가장 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응답 기업의 71%는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주요 조치들을 2030년 이후로 미루겠다고 응답했다. 

국내에서도 탄소중립이 글로벌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으면서 정부와 산업계를 중심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철강·석유화학 등 주요 제조업군이 그동안 우리 경제를 이끌어 왔지만, 탄소배출이 심한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펼쳐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12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패러다임에 동행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를 위해 '기후대응기금'을 신규 조성하고 세제·부담금·배출권거래제 등 탄소가격 부과수단들을 동원해 가격체계를 재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책금융기관을 활용해 녹색분야 자금지원 비중을 늘리고, 저탄소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위한 기업지원도 시사했다.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선언 이후, 정책금융기관들은 국내 기업의 청정산업 재편을 적극 지원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산업은행은 신재생에너지, 환경·폐기물 처리, 2차전지 등 녹색사업을 적극 발굴해 직접 투융자, PF, 펀드 조성, 녹색채권의 발행·주선 및 탄소배출권 시장조성 등 다양하게 녹색금융을 지원하고 있다. 이로써 오는 2025년까지 녹색금융 자금공급 비중을 30% 수준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 사진 왼쪽부터 안영규 KDB산업은행 부행장, 이창기 한국시멘트협회 부회장, 김상규 성신양회 대표, 장오봉 한일‧한일현대시멘트 부사장, 이현준 한국시멘트협회 회장(쌍용C&E 대표),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이종석 삼표시멘트 대표, 이훈범 아세아시멘트 대표, 임경태 한라시멘트 대표, 이근환 KDB미래전략연구소 본부장 / 사진=산업은행 제공

탄소중립을 위한 금융지원 사례도 눈길을 끈다. 산은은 탄소배출이 심한 시멘트산업의 탄소중립을 위해 지난 6월 한국시멘트협회 및 국내 주요 시멘트 7개사와 금융지원 협약을 맺었다. 

이를 위해 산은은 오는 2025년까지 탄소저감 시설투자에 1조원을 우선 지원하고, 향후 기술 상용화가 필요한 원료대체 및 친환경 열원 개발 등에 적극 협력할 계획이다. 시멘트업계는 석탄사용 감축을 통한 탄소저감 및 원가절감, 폐기물과 시멘트간 순환경제 구축으로 친환경 산업으로의 전환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 외에도 산은은 국내 건설사의 친환경분야 사업 진출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해 9월 SK건설의 '환경시설관리' 인수에 5500억원의 금융을 주선했다. 환경시설관리는 국내 최대 수처리·환경폐기물 처리업체다.

LG화학과는 '산업·금융 협력프로그램' 협약을 체결하는 한편, 동반성장펀드를 조성해 국내 2차전지 산업 육성에 적극 지원했다. 산은은 수출입은행·농협과 함께 LG화학의 2차전지 글로벌 생산시설 투자에 오는 2024년까지 '그린론'으로 50억달러의 공동 금융지원을 하고 있다. 

또 관련 소재·부품·장비 협력사의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동반성장펀드로 1500억원을 조성해 금전적 지원을 돕고 있다. 

산은은 전기차 관련업종으로 사업재편을 추진 중인 SK그룹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SK그룹 계약사들은 전기차에 필요한 웨이퍼, 2차전지, 동박 등을 개발하고 있다. 

산은은 웨이퍼 개발에 나서고 있는 SK실트론이 미국 듀폰사의 차세대 웨이퍼 부문을 인수하는 데 돕는 명목으로 4억 5000만달러의 금융을 주선했다. SK실트론은 지난해 2월 이 사업부를 인수했다.

산은은 2차전지를 개발 중인 SK이노베이션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에게도 금융을 주선했다. 두 회사가 2차전지와 분리막 해외공장 건설에 나서자, 산은은 이들에게 각각 2억 2000만달러, 1억 3000만달러·7억위안의 금융을 주선했다. 

동박 사업에 집중하는 SKC에게는 산은이 2차전지용 동박 생산업체 SK넥실리스(옛 KCFT) 인수 및 시설투자 용도로 1조 8000억원의 패키지 금융을 주선했다.

   
▲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녹색보증사업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신용보증기금 제공

정책보증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주도로 녹색보증사업에 나서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기술보증기금과 함께하는 이 사업은 신재생에너지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협력체계를 구축해 저탄소경제로 산업구조 혁신을 도모한다. 

신보는 산업부 출연금 250억원을 재원으로 에너지 전문기관인 에너지공단과 탄소배출 저감기술 등이 우수한 신재생에너지 기업을 적극 발굴해 우대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기존 미래성장성평가에 기후기술평가를 추가로 반영해 관련 기업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보증비율을 95%로 우대하고 보증료율을 0.2%포인트(p) 인하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