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내부의 제작-편성 자율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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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Media라는 말은 라틴어 Medium에서 비롯됐다. 그 사전적 의미는 ‘중개자’라는 의미다. 무엇을 중개하느냐 하면, 신과 인간세계를 중개한다는 의미이고, 그렇기에 media는 단순히 뉴스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고 아젠다를 설정하는 예언자적 기능을 한다.
인류 최초의 미디어는 선사시대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같은 주술적 동기로 시작됐다. 그런 미디어의 속성상 언론인은 한 사회에서 자신을 특수한 신분으로 스스로를 존치시키는 경향이 있고 그런 소명의식이 긍정적으로 발휘되면 ‘진실의 수호자’가 되지만, 부정적으로 발휘되면 ‘소영웅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에 모든 미디어에는 저널리스트를 내부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데스크의 게이트 키핑기능이 그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언론은 저널리스트가 가진 확증편향이나, 사적 이익의 추구, 또는 이념의 편향성으로 일어나는 스핀(spin)보도, 즉 왜곡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기에 KBS의 경우 공영방송이라는 정체성은 제작과 편성에 있어 데스크의 기능이 일반 방송채널보다 더 엄격히 요구되지만, 사실상 사주가 없는 방송이다보니 이는 제작 편성 현업자들과 사측간에 편성규약과 같은 형태로 등장하게 된다.
문제는 제작,편성 현업자들의 이념적 지형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점에 있다. KBS에 제작 PD로 몸담았던 경험으로 이야기하자면 KBS 제작,편성 현업자들이 보수 일각에서 비판하듯이 ‘종북’적 이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우리 사회에 고착화 되어 있는 부조리와 기득권 계층의 비민주적이고 위선적 행태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하다보니 건강한 진보를 넘어 좌경화되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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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70주년 특집 다큐, 뿌리 깊은 미래' /사진=KBS 방송캡쳐 화면 |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말없는 다수,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제작자들이 소수의 헤게모니 투쟁에 이끌려 가게 된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KBS 간부들이 조정자의 역할이나 방어막의 기능을 해야 하지만, KBS 노조의 힘은 사실상 간부들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솔직히 말해, KBS내에 노조와 PD협회, 기자협회를 제어할 수 있는 사측의 대항세력은 없다고 봐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BS내부에서 통제가 실패하면 외부의 개입이 들어오고, 그럴 때마다 중립적인 제작PD들과 기자들은 KBS조직 논리에 동조하게 된다. 일종의 순혈집단의식과 순수집단 의식이 강하기에 내부에서 피가 터지고 뼈가 부러지더라도 외부에서 강요적인 압력으로 제작과 편성의 자율권을 침해하면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경향이 있는 집단이 KBS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KBS를 공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위치시키는 방법은 제작과 편성을 독립적으로 분리하는 방법이다. 이는 KBS 본사는 프로그램의 기획과 개발, 편성전략에 집중하고 제작은 KBS 계열사로 분리 독립시키는 것이다.이러한 모델에서 KBS제작 프로덕션은 다른 프로덕션과 경쟁하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세계 3대 공영방송이라고 자부하는 KBS의 제작 퀄리티는 글로발 스탠다드로 진화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KBS본사는 보도와 편성에 특화시키고, 제작은 제작의 전문성에 집중함으로써 제작 PD들을 KBS내 사내정치와 이념투쟁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 만일 KBS가 이를 거부한다면 KBS 수신료를 현행 전기료 합산 징수 방식에서 공사 경영책임에 따른 자체 징수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KBS내 제작과 편성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된다 하겠다. 현행 수신료 전기료 합산 징수는 KBS제작진으로 하여금 시청자 주권을 무시하는 성향을 낳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방안에 비해 좀더 KBS가 자율적으로 제작의 균형과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방안은 편성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이념적 갈등이 있음을 전제하고, 제작과 편성에서 현존하는 다양한 가치들에 부응하는 방송물을 제작 편성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KBS는 KBS의 시각이나 스탠다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KBS는 사실과 진실에 합당하는 수준 높은 퀄리티의 방송 스테이션일 뿐, 어떤 정치적 입장도 함의하지 않게 된다. 그야말로 KBS내 제작의 자율성을 충분히 인정하는 대신 그 만큼 평가를 받으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기계적 중립의 방안은 사실 KBS의 모든 프로그램이 정치적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사,역사 다큐멘터리들이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KBS내부의 검토를 거쳐 편성전략으로 삼을 수 있다. 다시말해 한해 10편의 역사-시사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송한다면 5:5로 진보와 보수이념을 반영하는 기획물을 제작하라는 것이다.
큰 틀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면 일과적 방송들에서는 시의적으로 이념적 편차가 있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이렇듯 KBS가 어떤 가치를 편향적으로 추구하기 보다는 다양한 가치들을 반영할 때 오히려 KBS의 공영성은 그 만큼 증대된다고 볼 수 있다. 평가는 시청자들의 몫으로 두면 된다.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전 KBS PD
(이 글은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 '역사왜곡 다큐 논란을 통한 KBS 실태 점검-공영방송의 역할을 다시 묻는다.’ 토론회에서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발표한 주제 발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