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철회권, 카뱅 5만9천건으로 최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금융소비자가 대출·보험·펀드 등 금융상품에 가입했다가 일정 기간 안에 위약금 없이 계약을 파기하고 이미 낸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해주는 '청약철회권'이 도입된 지 약 6개월여 흐른 가운데, 은행권에서 소비자에게 환불된 금액이 1조 40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디지털금융을 주도하는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에서 청약철회 신청을 모두 받아준 반면, 일부 시중은행은 수용률이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 왼쪽부터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 사진=각사 제공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의 일환으로 마련된 청약철회권이 지난 3월 시행되면서, 대출상품을 중심으로 차주들이 자금을 빌리고 단기간에 갚으려 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은행에 이자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자금을 마련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영업전략으로 '중도상환수수료 제로'를 내세운 인터넷은행은 오히려 제도와 시너지를 보이면서 소비자 권익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청약철회권 도입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입수한 '금융회사 금융상품 청약철회 신청 및 처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25일부터 9월 말까지 금융권의 청약철회 신청 건수는 총 82만 1724건으로 집계됐다. 금액으로는 1조 9917억 9390만원에 달한다. 

청약철회 신청 대비 철회가 완료된 건수는 총 81만3898건으로 수용률은 99.1%에 달했다. 금액으로는 1조 8776억 220만원으로 나타났다.

금융업권별로 살펴보면, 청약철회 신청건수는 손해보험권이 44만 1002건으로 전체의 53.7%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금액으로는 은행권이 1조 3941억 8810만원으로 70.0%에 달해 가장 많았으나, 철회 수용률은 92.5%에 그쳤다.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는 철회 수용률 100%를 기록했다. 

국내 18개 은행권의 청약철회 신청 및 처리 내역을 살펴보면, 10만 3729건의 철회신청 건수가 접수됐으며, 이 중 9만 5901건이 처리됐다. 금액으로는 1조 3942억원 중 1조 2800억원이 처리돼 집행률 92.5%를 기록했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카뱅이 5만 9119건(철회신청액 4679억원)으로 전체의 57.0%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철회 수용률은 100%를 기록했다. 

뒤이어 우리은행이 1만 2797건으로 신청건수 2위를 기록했는데, 이 중 실제 철회 처리건수는 7287건으로 수용률이 56.9%에 그쳤다. 철회금액은 1750억원 중 1300억원만 처리됐다. 3위는 케뱅이었다. 케뱅은 1만 295건, 1856억원의 청약철회가 신청됐는데, 모든 신청을 수용했다. 

5대 시중은행 중 철회 신청을 모두 수용해준 곳은 NH농협은행 4053건(1126억원), KB국민은행 2640건(985억원) 뿐이었다.

그동안 청약철회권을 두고 금융권에서 분석하는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금소법이 발동하면서 대출을 일으켰다 취소하는 등 악용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주로 공모주 청약 등을 위한 거액의 자금이 필요할 때 소비자들이 대출을 일으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회권을 이용해 단기간에 되돌려줬다. 특히 6월까지 매월 1만여건에 그치던 대출 취소 건수는 7월 1만3324건, 8월 1만6524건 등 급증하는 현상을 보였다. 

대출을 받은 뒤 14일 안에 계약을 철회하면 중도상환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대출 기록도 삭제되며, 신용점수에 영향도 없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상품을 중심으로) 소비자들이 중도상환수수료를 갚지 않기 위해 청약철회권을 많이 쓰는 모습이다"며 "특히 공모주 등에 투자하기 위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저신용자 대출 활성화를 실현해야 하는 인터넷은행들은 포용금융을 실천하기 위해 '중도상환수수료 폐지'를 영업전략으로 내세웠다. 

특히 카뱅은 고신용자에게도 대출상환 부담을 없애면서 여신경쟁력을 강화했다. 현재 카뱅은 전 상품에 중도상환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으며, 케뱅도 중·저신용자가 주로 이용하는 신용대출 플러스와 비상금 대출 상품의 중도상환 수수료를 폐지했다. 시중은행과 대형 저축은행들이 자금조달비용 명목으로 중도해지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카뱅 관계자는 "카뱅은 원래 중도상환수수료가 없는 은행이었기 때문에 소비자가 (제도를) 악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카뱅이) 쉽게 (대출을) 신청할 수 있고, 철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일시적으로 급전이 필요한 차주들에게 비용 부담 없이 자금을 빌려줘 소비자 권익을 증진시켜준 만큼, 청약철회가 많은 걸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인터넷은행이 모바일로 상품 가입과 철회를 손쉽게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시중은행이 무조건 오프라인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도 청약철회 건수 격차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들이 은행 방문을 위해 시간을 내어야 하는 문제와 더불어 청약철회가 쉽지 않다보니 기존 상품에 안주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반면 모바일 디지털화를 고도화한 인터넷은행은 청약철회 과정이 간결해 건수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강 의원은 "청약철회권 시행 반년만에 82만건 이상, 2조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환불금액이 신청되었다는 것은 금융상품 선택 시, 소비자가 불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금감원은 청약철회권 제도의 안착을 위해 판매 현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더욱 심도 있게 하고, 특히 청약철회 신청건의 3분의 1 이상이 인터넷 전문은행에서 발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청약철회권 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특화된 관리·감독 지침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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