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징' 노렸단 점에서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과 유사
   
▲ 이원우 기자

5일 오후 시민단체 ‘우리마당’의 대표이자 재야운동가인 김기종이 주한 미국대사 마크 리퍼트를 흉기로 가격하는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전쟁훈련 반대” 구호를 외치며 리퍼트를 공격한 김기종은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라는 ‘엘리트’ 경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2010년 7월 일본 대사에게 콘크리트를 투척하고 2015년 미 대사에게 칼을 휘두른 것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 즉 주한 외교관들로 대표되는 ‘일본’과 ‘미국’ 그 자체에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극렬 반미주의자가 미국의 ‘상징’에 테러를 가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지식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가해자가 미국의 상징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1982년 3월18일 발생해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약칭 부미방)’을 연상시킨다. 올해로 사건은 발생 33주년을 맞는다.

1982년 3월18일 정오경 부산대학교 약대생 최인순, 부산여대 김지희 등이 부산 미국문화원의 담장을 넘어 잠입했다. 2시를 넘어 도착한 고신대학교 문부식, 부산대학교 류승렬 등은 휘발유를 배달한 뒤 흩어졌다.

   
▲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에 대한 테러는 도를 넘은 반미주의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극렬 반미주의자가 미국의 ‘상징’에 테러를 가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2년 3월18일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난지 33년만에 또다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YTN화면 캡처
이후 고신대 김은숙, 고신대 의대생 이미옥 등이 휘발유 통을 들고 문화원 정문으로 접근했다. 이미 잠입해 있던 최인순과 김지희는 문을 열어줬고 여학생 4명은 미국문화원 문을 깨고 실내에 잠입해 휘발유를 쏟아 부었다. 그 뒤 밖으로 나와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한 솜사탕 모양의 방화봉을 꺼내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여 휘발유가 쏟아진 건물 안으로 던졌다.

문화원 건물은 순식간에 폭발음과 함께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크게 번진 불은 문화원 건물 내부를 전소시켰다. 지하 및 건물 1,2층과 집기 등 당시 금액으로 1억8천7백만 원 상당의 막대한 피해액이 산출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동아대학교 경영학과 장덕술(22)은 사건발생 4일 전 휴학계를 내고 군 입대 전까지 유학을 위한 공부를 위해 미국문화원 도서실을 찾았다가 이날 사망했다. 그 밖에 동아대학교 회화과 허길숙(24), 김미숙(24) 등이 각각 전치 3주의 화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철저하게 계획된 테러였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문화원이 불타고 있을 무렵 800m 근방에 위치한 유나백화점과 국도극장에서는 “살인마 전두환 북침준비 완료!” “광주시민을 무참하게 학살한 전두환 파쇼정권을 타도하자!” “88올림픽은 한국경제를 완전히 파탄 나게 할 것이므로 그 준비를 즉각 중단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유인물이 흩날리고 있었다.

부미방은 1980년 5‧18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반미 감정이 위험수위에 달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의 테러를 옹호하고 미화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김기종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부미방을 해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2015년에도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부미방 사건을 일으킨 피의자들에게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선고까지 내려졌지만 실제로 사형을 당한 인물은 없다. 김은숙의 경우 약 5년을 복역한 뒤 1987년 출옥했다. 이후 ‘김백리’라는 필명으로 소설 창작과 번역 활동을 했으며 2011년 5월 암으로 사망했다.

사망 한 달 전에는 그녀를 후원하는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고 고은 시인은 그녀를 “숨은 꽃”이라고 표현했다. ‘통일의 꽃’ 임수경 의원은 투병 당시 김은숙 후원에 앞장섰으며 김은숙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어머니에게 수여되는 ‘오월 어머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가 한 것은 정말 민주화운동이었는가? 먼 훗날엔 김기종도 민주화 투사로 추앙받는 날이 오는 것인가?

한 가지 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의 피의자들을 두둔하는 변호인단 명단에서 우리는 또 한 명의 익숙한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20년 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되리라는 것을 아마도 모르고 있었을 젊은 변호인, 노무현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