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학계 "'선공급 후계약' 관행, '선계약 후공급'으로 바꿔야"
해외 주요국 방송 수신료 매출 대비 프로그램 사용 지급비 저조
[미디어펜=박규빈 기자]최근 방송가에는 콘텐츠 선계약 후공급과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율 조정을 통한 콘텐츠 사용료 현실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수년 새 OTT 출현 등과 같은 '미디어 빅뱅'이 일어나는 가운데 낡은 거래 구조를 개선해 관련 생태계 선순환을 조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IPTV 3사·CJ ENM 로고./사진=각 사

2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료 방송 사업자-방송 채널 사용 사업자(PP) 채널 계약 과정 상 '선공급 후계약' 관행을 '선계약 후공급'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콘텐츠 사용료 갈등 원인으로 지목돼 왔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그램 공급사(PP)들의 수익 문제와도 직결된다. PP들이 IPTV 또는 케이블 TV에 콘텐츠를 먼저 제공하고, 통상 방송 송출이 끝난 다음 시점인 당해 년도 하반기에 계약을 체결해 양측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PP들은 프로그램 사용료가 얼마나 되는지 미리 알 수 없다. 따라서 콘텐츠 투자 비용 예상 등 사업 계획을 제대로 세우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프로그램 사용료 산정에서도 플랫폼사 대비 열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밖에 없다는 점 역시 불만 사항이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종합 감사에서 유료 방송 대가 산정 방식에 대해 "계약을 먼저 하고 공급을 이후에 하는 게 옳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 9월에는 △유료방송시장 콘텐츠 거래 합리화 방안' 정책 세미나 △글로벌 OTT 시대 합리적인 국내 미디어 산업 거래체계 정립 방안 모색' 세미나 △통합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미디어 정책 재설계 세미나 등이 개최되는 등 관련 주제 논의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CJ ENM과 같은 대형 PP가 아닌 중소 PP의 경우 협상력이 약해 이들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과제도 있으나 대체로 선공급 후계약 체제는 개선의 필요성이 따른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방통위는 2018년 2월 '유료방송시장 채널 계약 절차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프로그램 공급 계약은 계약 만료일 이전에 마치도록 권고하고 있고, 유료 방송 사업자는 연 매출 50억원 미만 중소PP에 대해 채널 계약 만료일 전에 차년도 계약을 완료하도록 재허가 조건을 부과하고 있다.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은 "선계약 후공급 원칙을 정립해 콘텐츠 경쟁력 제고와 플랫폼 사업자·PP가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율 조정 역시 올해 방송가 화두로 떠올랐다. 프로그램 사용료는 방송 플랫폼사가 채널 이용 대가로 고객들에게 벌어들인 금액 중 방송사가 가져가는 몫이다. 적정 수준의 배분율이 얼마인지를 두고 매년 플랫폼사-방송사간 샅바 싸움이 벌어진다.

올해 상반기에는 CJ ENM이 현행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율로는 콘텐츠 투자를 통한 '지속 가능한 한류'가 불가능하다며 공개적으로 거론해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등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우상호 의원은 "플랫폼 중심 정책으로는 '오징어 게임'과 같은 콘텐츠가 나올 수 없어 배우나 작가 등 제작사 위주의 진흥책이 요구된다"며 "제작자들에게 더 큰 이익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면 대가 산정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료 방송 시장 콘텐츠 거래 합리화 방안' 세미나에서 김용희 전문위원은 발제문을 통해 "불합리한 콘텐츠 가치 책정 탓에 생겨난 콘텐츠 사업자들의 투자 회수율 저하 문제는 콘텐츠 품질 저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며 "국내 유료 방송 콘텐츠 수익 배분 비율을 현행 대비 약 10~20%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범수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낮은 프로그램 이용료는 콘텐츠 투자 위축, 품질·다양성 하락, 이용자 불만족 등으로 이어진다"며 "콘텐츠 이용료가 합리적이지 않으면 콘텐츠 경쟁력을 잃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해외 주요 국가의 방송 수신료 매출 대비 실시간 채널 프로그램 사용료 지급 비율은 미국 62.2%, 영국 83.6%, 뉴질랜드 58.78%, 인도네시아 50.2%인데 반해 국내에서의 사용료 지급 비율은 33%에 그친다.

한편 방통위가 지난 6월 29일 공개한 '2020년도 방송 사업자 재산 상황 공표'에 따르면 IPTV 3사의 지난해 매출은 4조2836억원으로 전년 대비 11.1% 가량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PP사들이 -0.2% 역성장을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최근 유료 방송 업계의 쟁점이 되고 있는 실시간 채널 프로그램 사용료도 IPTV만 지급율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IPTV 3사가 실시간 채널을 보는 대가로 가입 고객들에게서 받은 기본 채널 수신료 매출은 2020년 1조9075억으로 전년 대비 10.3% 늘었지만 전체 PP에 지급하는 기본 채널 프로그램 사용료는 4742억원으로 같은 기간 8% 증가하는데 그쳤다는 분석이다. IPTV 3사가 기본채널수신료 매출액 대비 전체PP에 기본 채널 프로그램 사용료조로 주는 지급 비율은 2019년 25.4%에서 2020년 24.9%로 감소했다.

전범수 교수는 "콘텐츠 사업자가 플랫폼 사업자에게 의존하고 있거나 또는 종속된 형태인데, 협상력 강화와 콘텐츠 시장 활성화 등 업계 상생을 위해 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 인상 기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과기정통부·방통위는 이달 중 선계약 후공급을 골자로 한 유료 방송 대가 산정 관련 가이드라인 공청회를 연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관련 업계간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난맥상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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