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폐쇄로 취약계층 금융접근성 악화, 금융사기사고 급증 지적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은행들이 코로나19로 촉발된 급속한 비대면 서비스와 디지털금융을 명분으로 점포 폐쇄를 강행하자 금융노동계 대표들이 결집했다. 은행들이 실적 경쟁하듯 점포 폐쇄를 이어가면서 취약계층의 금융접근성 악화를 야기했고, 금융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없애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계는 무분별한 점포 폐쇄를 제어하기 위해 금융당국의 제재를 요구했다. 
 
25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전국은행산업노동조합협의회와 금융정의연대는 금융감독원 앞에서 '은행 점포폐쇄 중단 및 감독당국의 점포폐쇄 절차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무분별한 은행 점포폐쇄가 계속되면 지속적인 인력감축이 불가피하다"며 "연령과 거주지에 따른 금융격차를 확대하는 사회적 혼란도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25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전국은행산업노동조합협의회와 금융정의연대는 금융감독원 앞에서 '은행 점포폐쇄 중단 및 감독당국의 점포폐쇄 절차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사진=류준현 기자


은행노조협의회는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노조 측은 "(고객들이) 코로나 상황에도 밀집된 공간에서 대기하며 몇 십분, 때로는 한시간을 기다려야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손님들께 안내문자 한 번 나가지 않고 있다"며 "코로나로 인해 온 국민이 고통을 감내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이 상황에 은행들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면서도 점포를 무리하게 폐쇄하고 신규채용도 하지 않고 직원들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올해 노사 간 산별중앙교섭을 언급하며 사용자측의 점포 폐쇄가 상당한 속도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올해 산별교섭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된 부분은 △영업점 폐쇄중단 △점포 폐쇄시 노조와 협의할 것 등이었다. 특히 점포 폐쇄시 노조와의 협의는 강제적 조항이 아니었음에도 사측이 협의조차 응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노사는 산별교섭에서 △금융취약계층의 접근보호 △고객의 불편보호 등을 우선 고려하기로 합의했다. 

박 위원장은 "시중은행(장)들의 머리 속에 적정 은행 점포 수는 몇 개인가. 현재 있는 점포 수의 절반 이하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오직 수익성만 매몰되어 점포를 없애다간 금융소비자들 국민들의 불편은 점점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한국씨티은행의 지점 축소와 지난 2005년 흥국생명의 지점폐쇄를 사례로 들면서 "꼭 대면업무를 해야 하는 소비자에게 점포폐쇄는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말 국내 은행의 전체 영업점 수는 6789개였지만, 올해 상반기 말 6317개로 4년새 472개가 줄어들었다. 문제는 최근 2년간 지점 폐쇄가 급격하게 이뤄진 점이다. 지난해 은행 폐점은 1년 전보다 303개 증가했다. 과거 연간 30~40개 축소되던 것에 견줘 상당한 속도다. 

올해는 9월까지 161개의 점포가 폐쇄됐다. 5대 시중은행은 오는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 약 100여개의 점포를 추가 폐쇄할 방침이다.  

지점 폐쇄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직원 수도 급감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최근 10년 새 2만 5000여명에 달하던 직원 수가 1만 7000여명으로 급감했다. 노조는 점포 폐쇄가 강행되면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져 사회적 부담도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는 점포 폐쇄 반대 이유에 대해 "은행업이 공공성과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방과 노년층이 주로 거주하는 격지 위주로 영업점 폐쇄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이 수익성만을 좇아 디지털 세대만을 공략할 경우, 지점 방문이 익숙한 소외계층들이 금융서비스에서 외면받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급진적인 비대면화가 금융보안의 취약성을 야기하면서 사기사고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 대표는 "은행이든 신용평가사든 둘 중 한 곳이라도 뚫리면 본인이 아닌데도 대출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인터넷에서 본인확인 없이 일어나는 피해는 금융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을 향해 좀 더 구체적인 점포폐쇄 관련 지침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금감원은 은행연합회의 자정 노력에도 대규모 영업점 폐쇄가 지속되자 지난 3월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은행 점포 폐쇄 시 '사전영향평가'를 의무화하도록 했지만 출장소 전환이나 ATM 운영 등 대체수단을 허용토록 했다. 또 '지역 내 자행 및 타행 위치'를 고려사항에 포함시켰다. 예외적인 허용조건들이 은행 폐점을 합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용인하게 해줬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은행이 공공성을 포기하고 접근성을 무시하고 금융소비자 취약계층을 배제하고 오직 IT로 접근성을 (추구)한다면 인터넷전문은행으로 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온다"며 "결국 대면해야 할 업무들이 줄어들면서 사기(사고)는 늘어나고 있다. 최소한 점포 유지를 위해 금감원과 노조, 시민 사회단체들이 모여 어느 것이 적정한 지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줄 것을 다시 한 번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노조 측도 "은행들의 사상 최대 이익은 국민들의 불편과 금융공공성 훼손, 금융노동자 일자리 축소, 쓰러지기 직전의 과도한 노동의 결과다"며 "금융당국은 이제라도 정신차리고 은행을 관리감독해야 한다. 공식적인 가이드라인 규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 은행들이 돈벌이에 급급한 것을 묵인하지 말고 금융공공성을 회복하고 국민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점포 폐쇄를 즉시 중단하고 국민들과 노동자, 사용자들이 다함께 모여 점포 폐쇄와 관련된 룰을 새로 정하자"며 "만약 이것이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면 또 다시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