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흑표·천궁·신궁·현무 등에 녹아…중거리 대전차 미사일·초등훈련기·공기부양정 등 운용
[미디어펜=나광호 기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러시아산 무기체계가 우리나라에 도입됐던 '불곰사업'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노태우 정부는 구소련(USSR)과 수교를 맺는 과정에서 1991년말까지 14억7000만달러의 차관을 제공했으나, 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로 채무관계가 이전됐다. 그러나 러시아도 재정난으로 상환이 어려워지자 현금+α를 제안했고, 한국이 이를 수용하면서 1995년부터 4년간 4억5000만달러 상당의 방산물자·원자재·회전익항공기(헬리콥터)를 받게 된다.
당시 국내로 들어온 무기체계는 T-80U 전차 33대·BMP-3 보병전투차 33대·메티스-M 대전차미사일 발사기 70문·이글라 견착식 대공미사일 발사기 50문 등으로, 이후 1998년 8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잔여 차관 상환에 차질이 생겼고, 한국은 러시아제 킬로급 잠수함 3척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
|
|
▲ K-2 흑표(블랙팬서) 전차/사진=현대로템 |
해군이 차기 잠수함(현 손원일급) 사업을 추진 중이었음에도 이같은 결정이 내려진 것은 국내외 여론상 지상 무기체계를 도입하기 쉽지 않았던 까닭으로, 척당 가격이 높은 잠수함의 상환효과가 크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러나 해군 사찰단이 이들 잠수함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고, 러시아 해군 북방함대 소속의 오스카급 핵잠수함(쿠르스크함)이 훈련 중 침몰하면서 이를 철회했다. 대신 2003년부터 4년간 5억2000만달러 규모의 T-80UK 전차·BMP-3 보병전투차(IFV)·메티스-M 발사기·무레나급 공기부양정·일류신(IL)-103 실습기·카모프(Ka)-32A 탐색구조헬기를 받는 등 육·해·공군 모두가 2차 불곰사업의 대상이 됐다.
이렇게 들어온 무기체계들은 아직까지 3기갑여단을 비롯한 우리 군에서 운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장비를 통해 습득한 기술력은 △K-2 흑표 전차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궁 △대공미사일 신궁 △현무 미사일 등에 녹아들었다.
이 중 T-80U는 우리 군이 운용한 첫번째 비서방제 전차로, 고속 중성자 방어용 폴리에틸렌-붕소 감속재 기술을 적용하는 등 K-2 개발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현대로템(당시 현대정공) 공장에서 분해해 기술을 검토한 덕분으로, 이 전차가 쓰는 유도포탄(9M119)로부터 얻은 노하우를 토대로 여기에 쓰이는 것과 유사한 탄약을 K-2에 탑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T-80U는 과학화훈련에서 활용되는 등 적성국 무기체계에 대한 연구를 돕는 중으로, 북한의 전차전력 강화를 막는 등 다방면으로 우리 안보에 기여하고 있다. 러시아가 한국 수출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공격용 무기 수출을 중단, 구형 T-62계열을 개량한 전차만 운용하게 된 것이다.
1990년 처음 공개된 BMP-3는 당시 러시아의 최신 장비로, IFV로는 이례적으로 105mm 주포를 장착한 것이 특징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차기 보병전투장갑차 개발에 영향을 끼쳤다. 도하성능이 우수하고 K-200 장갑차 보다 기동력과 화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
|
|
▲ K-21 장갑차(가운데)/사진=미디어펜 |
ADD와 러시아 국영 방위산업체 알마즈 안테이가 공동개발한 천궁의 경우 고체 추진 측추력기 관련 기술을 이전 받았으며, ADD와 LIG넥스원이 만든 신궁 역시 2색 적외선 시커 기술을 통해 플레어를 비롯한 재밍에 강점을 보이는 등 이글라 대공 미사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1995년 개발된 IL-103는 공군 조종사들의 훈련에 쓰이고 있다. 이는 1972년부터 운용된 T-41 초등훈련기를 대체한 것으로, 여기에서 합격한 조종사는 KT-1 기본훈련기와 T-50 고등훈련기로 넘어가게 된다.
핵잠수함 대신 들어온 공기부양정(호버크래프트)도 8000마력급 가스터빈 엔진 2기와 30mm 개틀링 기관포 2문을 달고 해상과 갯벌에서 북한 공방급 고속정 등을 상대로 감시·정찰 임무를 수행 중이다.
산림청과 해양경찰청이 중량급 Ka-32A 헬기를 운용하는 등 민간부문도 불곰사업의 수혜를 입었다. 기존 미국제 벨206L3이 600리터의 물을 싣는 것과 달리 Ka-32A는 3400리터를 담을 수 있고, 불곰과 같은 파워로 악천후 속에서도 임무를 수행 가능한 것도 강점이다. 실제로 벨412Y1 등 다른 헬기가 이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Ka-32A는 12명의 환자를 구했으며, 지난해 고성에서 산불이 났을 때도 강풍을 뚫고 산불을 진화했다.
업계 관계자는 "메티스-M을 비롯한 러시아산 장비가 운용·정비 측면에서 난점이 있지만, 우리 군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등 호평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면서 "이들 장비를 싣고 온 수송선에 실려 러시아로 건너간 팔도 도시락 컵라면과 오리온 초코파이 등이 현지에서 인기를 끌면서 오늘날 신북방 지역에서 K-푸드 저변이 확대되는 기반을 마련하는 등 다방면에서 우리나라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