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울산(蔚山)은 대한민국 6개 직할시 중 하나인 대도시다.
울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당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은 경제개발의 초점을 기존 섬유.가발.신발 등 소비재 경공업 위주에서 중화학공업 육성에 맞췄고, 그 전진기지로 울산이 낙점됐다.
이런 정부 방침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했던 이가, 바로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鄭周永) 회장이다. 그의 진두 지휘로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자동차 등이 설립됐다.
이에 따라 울산은 명실상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업도시(工業都市)로 우뚝 섰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바뀌는 법이다.
21세기의 울산시는 이제 중화학공업과 중후장대(重厚壯大) 대기업만으로는 지역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관광에 눈을 돌리게 된다. 조선업 불황이 이런 행보를 재촉했다.
이렇게 새로 구축된 울산의 관광 인프라를 대표하는 곳이 바로 대왕암(大王岩)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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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대왕암/사진=미디어펜 |
사람들은 흔히 ‘대왕암’이라고 하면, 경북 경주에 있는 문무대왕(文武大王)의 해중릉을 떠올린다. 그래서 울산의 대왕암이라고 하면 처음엔 헷갈리게 마련이다. 필자 역시 그랬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울산의 대왕암은 경주 대왕암의 ‘스토리텔링’을 차용한 것이었다.
울산시에 따르면, 대왕암공원에는 신라시대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문무대왕에 이어, 왕비도 그 뒤를 따라 죽은 후 호국룡(護國龍)이 되어 울산 동구의 대왕암 밑으로 잠겼다는, 신비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뒤 사람들은 이 곳 등대산 끝 용추암 일대를 대왕암(대왕바위)라 부르고, 그 아래에는 ‘용굴’이 있으며, 용이 잠긴 바위 밑에는 해초(海草)도 자리지 않는다는 것.
이런 기본 이야기구조 아래, 대왕암을 중심으로 북서쪽 ‘일산해수욕장’에서 남서쪽 ‘슬도’에 이르는 반도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했다.
인근에 있는 동해안의 주요 어항인 방어진(方魚津) 입구의 작은 무인도인 슬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울기등대’가 관광자원으로 힘을 보태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1만 5000여 그루의 해송, 바닷가를 따라 조화를 이루는 기암괴석도 가세했다.
최근에는 국내 최장(最長)이라는 해변 ‘출렁다리’가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울산관광의 새 중심인 이 곳을 찾았다.
대왕암공원을 가려면, KTX ‘울산역’에서 5002번 버스를 타고 일산해수욕장 하차 후 걸어서 10분이면 된다. ‘태화강역’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124번을 타면, 공원 입구로 직행이다.
공원이 있는 울산 동구로 들어가는 길목 울산대교에서 보면, 오른쪽에 석유화학단지(石油化學團地)가 보인다. 1962년 국내 최초 정유공장으로 설립, 국내 정유산업을 주도해 온 ‘SK에너지’를 중심으로, 다수의 관련 기업들이 모여 있다.
다리 건너편에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거대 조선소가 해변을 차지하고 있다. 왼쪽은 한국 자동차산업의 ‘메카’ 현대자동차(現代自動車)다. 출하 및 수출 선적을 기다리는 수만 대의 자동차들이 도로변에 모여 있다. 이 거대한 공장들은 그것 만으로도 일대 장관이다.
울산대교로 가는 도로 역시 현대차가 건설한 것으로, 고 정주영 회장의 뜻을 기려 아산로(峨山路)로 명명됐다.
대왕암으로 가기 전, 공원 남쪽 끝에 있는 슬도 먼저 들렀다.
슬도(瑟島)는 방어진 항 외곽에서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으로,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하여 슬도라 불린다. 바다에서 보면 모양이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시루섬’, 또는 섬 전체가 곰보 돌로 덮여 있어 ‘곰보섬’이라고도 한다.
2010년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의 촬영지였다.
슬도에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를 일컫는 슬도명파(瑟島鳴波)는 ‘방어진 12경’ 중 하나다.
슬도 입구 해변엔 검은색 안내 표지석과 함께, 영문 대문자로 ‘SEULDO’라 쓰인 조형물, 대형 나팔 등이 방문객을 맞아, 사진명소가 돼 준다.
그 뒤편 언덕 위에 있는 ‘소리체험관’은 ‘여음(餘音:소리가 사라지고 난 뒤의 잔향)의 풍경’을 컨셉으로, 동구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소리9경’을 들려주는 곳이다.
소리9경은 동축사 새벽종소리(축암효종), 마골산 숲 사이 흐르는 바람소리, 옥류천 계곡 물소리(옥동청류), 현대중공업 엔진소리, 출항 뱃고동 소리, 울기등대 무산소리(바닷가 안개를 뚫고 퍼지는 등대 경적소리), 대왕암 몽돌 물 흐르는 소리, 슬도명파, 주전해변 몽돌 파도소리다.
해변과 슬도 사이는 방파제(防波堤) 길로 연결돼 있다.
방어진의 상징인 고래를 표현한 부조들이 방파제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그 끝, 슬도 시작지점에는 머리에 큰 구멍이 뚫린 ‘귀신고래’ 조각상이 길손들을 기다린다. 귀신고래 옆을 지나면, 낮은 언덕 위에 흰 등대가 솟았다. 슬도명파와 바닷길투어 안내판도 그 밑에 보인다.
슬도에는 이 가을 특히 해국(海菊)이 만발, 눈길을 사로잡는다. 쉽게 보기 어려운 꽃이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2층 구조로, 아래층은 낚시꾼들 차지다. 다양한 어종들이 서식하는 이 바다는 강태공(姜太公)들로 항상 붐빈다.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간단한 먹거리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 끝에는 이 섬의 ‘랜드마크’ 격인, 1950년대 말에 세워진 빨간색 무인등대(無人燈臺)가 홀로 슬도를 지키면서,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는다.
이제 슬도를 빠져나와, 대왕암공원으로 갈 차례다.
소리체험관 뒤로 해변을 따라가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는데, ‘고동섬전망대’와 ‘용디이목전망대’를 거쳐 대왕암까지 약 40분 남짓 걸린다. 하지만 시간관계상, 대왕암캠핑장 옆 대나무 숲 옆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바로 향했다.
가는 길 왼쪽에는 ‘미로원’, ‘등용사’ 등의 볼거리가 있고, 오른쪽은 잔디광장이다.
대왕암공원 주차장 건너편 부지에 2013년 9월 완공된 ‘미르놀이터’는 문무대왕의 왕비가 호국룡이 되어 잠겼다는 전설을 모티브로, 용(龍)을 형상화한 것이다. 미끄럼틀과 흔들의자 등 각종 놀이기구를 갖추고 있으며, 특히 7m 높이의 거대한 용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 입구에는 ‘울산 낙화암(落花岩)이 버티고 섰는데, 울산 동구의 향토문화재 제6호란다.
원래 미포만 해안에 우뚝 솟아 있던 것으로, 예로부터 기암절경의 명승지로 알려져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지금은 여기로 옮겨 놓은 ‘쌍 바위’와 암각석에 각각 한시(漢詩)가 새겨져 있다. 낙화암에 서린, 옛 어린 기생의 절절한 이야기가 들릴 듯하다.
관리사무소와 상가 앞을 지나면, 왼쪽에 울창한 곰솔 숲이 기다린다. 숲 사이 멋진 산책로가 이어지고, ‘꽃무릇’이 화려하게 피는 이 숲을 보는 것 만으로도, 찾는 이들은 행복(行福)하다.
그런데 솔 숲 앞으로 긴 줄이 늘어섰다. 사람들은 숲보다 다른 곳에 관심이 쏠려있다. 바로 출렁다리 가는 입구다.
대왕암공원 출렁다리는 2021년 6월 준공됐다. 무주탑 현수교(懸垂橋)인데, 길이 303m로 국내 최장 출렁다리라고 한다. 폭 1.5m로 ‘일방통행’이고, 높이는 42.55m(가운데 27.55m)다.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면서 방문객이 몰려, 주말이면 20~30분 씩 줄을 서 기다려야 한다.
흔들거리는 다리 위에 서면, 아찔하고 짜릿하다.
출렁다리 가운데 부분은 해수면에서 그리 멀지 않고, 아무것도 잡지 않고는 잠깐 서있기도 힘들다. 바다 건너 현대중공업(現代重工業) 조선소가 지척이고, 오른쪽은 해안 절벽이다. 다 건넌 후 되돌아봐도 장관이다.
해변 바위 위에 올라서니, 건너편 울산 시내와 항구가 손짓한다.
이 바위는 ‘수루방’이라 불린다. 대왕암공원 북쪽의 가장 높은 벼랑바위로, 수루방은 ‘수리바위’의 음전이란다. 옛날 망루(望樓)를 설치하고, 숭어잡이를 할 때 망을 보던 자리라고...
그 아래쪽에는 ‘용굴’이 있어 바닷물이 드나드는데, 사각이라 실제 굴은 볼 수 없다.
해안을 따라가는 길은 기암절벽(奇巖絶壁)의 연속이다. ‘부부 소나무’, ‘할미바위(남근암)’, ‘넙디기’, 옛날 갓 안에 받쳐 쓰던 탕건(宕巾)을 닮은 ‘탕건암’, ‘고이’, ‘디릿돌’ 등 이름도 기기묘묘한 절경들이 계속된다.
대왕암은 동쪽 끝에 있는 거대한 바위 군(群)이다. ‘대왕교’를 건너야, 그 곳에 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 과연 울산 최고의 명소답다. 대왕교 밑은 해수가 관통하는 용추수로(龍湫水路)이고, 그 앞 바위는 ‘용등’이다.
잠시 넋을 잃고 풍경에 취해본다. 바다 건너, 슬도가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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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기등대/사진=미디어펜 |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조금 너른 광장이 있는 이 곳은 ‘용디이목’이다. 역시 음전인 듯하다. 그 뒤 언덕 위에 울기등대가 우뚝 서 있다.
등록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된 울기등대(蔚氣燈臺)는 울산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등대다.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해상권 장악을 위해 남.동해안 곳곳에 등대를 설치했다. 여기는 1906년 등대를 설치하면서 ‘울산의 끝’ 이라는 뜻을 그대로 옮겨, 울기(蔚埼)라고 불렀다.
그 후, 울기라는 명칭이 ‘일제 잔재’라는 비판이 제기돼, 2006년 ‘등대건립 100주년’을 맞아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 울기(蔚氣)로 변경됐다.
등대 주변의 해송들이 자라나서 더 이상 등대불이 보이지 않게 되자, 1987년 기존 위치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에 훨씬 높은 새 등대를 따로 건립하고, 기존 구 등대는 ‘등대문화유산 제9호’ 및 등록문화재(登錄文化財)로 보존 중이다.
등대 건너편에는 미국의 대문호(大文豪)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걸작 ≪노인과 바다≫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노인과 초대형 물고기의 상이 조금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 그 너머엔 수도꼭지를 본떠 만든 ‘트릭등대’ 분수대도 보이는데, 수도꼭지가 등대 모양이다.
다시 솔 숲 길을 걸어 나와,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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