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의 9월 종전선언 제안 이후 한미 간 전례 없는 접촉을 이어갔지만 북미대화에 대한 전망은 어두워 보인다.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 조율까지 들어간 상태이지만 또 다른 당사자인 북한이 진전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향후 북한이 언제라도 종전선언 논의에 참여할 경우를 대비해서 한미의 입장을 조율한 문안을 먼저 만들어놓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정부는 종전선언 논의를 위해서라도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오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종전선언이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외교적 관여를 해야 하는 입장이니 한국과 종전선언 협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북한은 유엔에서 거듭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주장하고 나서 미국의 우려를 더하는 형국이다. 김인철 주 유엔 북한대표부 서기관이 4일 유엔총회 제6위원회에서 “유엔사는 미군사에 불과하다. 즉각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7일에도 김성 주 유엔 북한대사가 유엔총회 제4위원회에서 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북한은 2019년 이후 언급하지 않았던 ‘유엔사 해체’를 한국의 종전선언 제안 이후 일주일 간격으로 거듭 주장하고 나섰다.
이같이 북미 간 입장이 팽팽하게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은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직접 언급한 ‘적대시 철회’ 등 대화의 조건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총비서는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어야 한다. 편견과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부터 철회되어야 하는 것이 변함없는 우리의 요구”라고 밝혔다.
|
|
|
▲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워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청와대·뉴스1·백악관 |
한국정부는 이 발언에 대해 ‘김정은의 종전선언 관련 첫 대외 언급’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종전선언에 대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이틀에 걸쳐 담화를 냈고 김 총비서까지 직접 언급했으니 북한의 관심이 엿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 총비서는 종전선언 논의에도 미국의 적극적인 카드 제시를 주문한 것이고, 이는 대북제재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28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밝힌 북한의 종전선언 선결조건인 대북제재 해제 요구는 최근 남북 간 물밑 소통에서 나온 결론이라기보다 그동안 북한이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때 제시한 조건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북한은 우선 광물 수출 및 석유 수입 허용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적대시 정책과 이중잣대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핵실험 및 미사일 개발을 정당화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미의 종전선언 협의에 이은 문 대통령의 프란치스교 교황 방북 요청으로 북한에 공이 넘어갔다는 시각이 있지만 반면, 여전히 미국이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견해가 공존하는 셈이다. 사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목표에 ‘단계적 접근’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한은 대화 재개부터 ‘동시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북한의 요구를 반영하듯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달 말 대북제재 일부 완화를 주장하는 결의안 초안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했다. 하지만 미국은 대북제재 체제에 계속 전념할 것이란 입장을 4일 밝혔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모든 유엔 회원국이 기존의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이행) 의무를 충족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대북제재를 유지한 상태에서 북한이 협상에 나오면 제재완화를 포함한 모든 이슈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5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한반도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종전선언은 북한에 대한 양보가 아니며, 오히려 전쟁 상태는 핵 문제 진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일본정부가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고, 한반도 문제에서도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고 있는 바이든 정부가 떨어지는 지지율 속에서 종전선언을 어떻게 다룰지 주목된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