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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우 기자 |
비로소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소속 수사관 8명은 11일 오전 10시 반부터 서울 종로에 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사무실로 향했다. 압수수색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시향 사무실 및 전산업체의 컴퓨터와 USB, 이메일 계정 정보 등이 경찰로 넘어갔다. 경찰 측은 “지금까지는 진정인(박현정 전 대표)에 대한 조사만 실시했으며 이번 압수수색은 ‘누구’를 조사할 것인지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그렇다. 관건은 ‘누구’다.
작년 12월 서울시향 박현정 당시 대표의 ‘성희롱‧폭언 사건’이 화제가 됐을 때 사람들이 반응한 것은 이 사건의 기묘한 ‘구도’였다. 역사적으로 약자의 지위를 좀 더 많이 감당해야 했던 여성이 강자(强者)로서 남자 직원들을 성희롱했다는 독특한 시나리오가 대중의 공분을 촉발했던 것이다.
정신없는 와중에 모두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박현정 대표를 규탄하는 서울시향 직원들 17인이 작성했다는 그 문서의 ‘원작자’가 누구인지를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문서는 익명으로 작성됐다. 그런데도 각 언론사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일제히 발송돼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놨다. 이 속도엔 대체 어떤 ‘비결’이 있었던 걸까.
이제 경찰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조현아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 ‘국민마녀’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박현정 전 대표는 “자신의 퇴진을 위한 호소문을 작성한 서울시향 직원 17명이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며 진정서를 냈다. 이번 압수수색도 박 전 대표의 의뢰에 따라 시작된 수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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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소속 수사관 8명은 11일 오전 10시 반부터 서울 종로에 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캡처 |
대표직에서 사퇴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박현정 전 대표를 만났었다. 이유? 솔직히 말하면 궁금증 때문이었다. 온 국민이 비난하는 대상이 되었던 사람의 심리, 가능하다면 변명도 들어보고 싶었다. 한때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화제성이 무색하게도 접촉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녀는 이미 철저하게 소외돼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박현정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던 시점이었다.
50일 이상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박현정 전 대표는 서울시향의 업무 스타일에 여전히 아쉬움이 많아 보였다. 정명훈 예술감독과 박현정 대표의 관계 또한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상태였던 것 같다.
‘마에스트로’와 척을 지고 만 박현정 전 대표가 성희롱을 한 것이 맞다고 확인해 준 기관은 서울시 인권센터다. 작년 12월 하순 인권센터는 “박 대표가 직원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하고, 직장 내 위계관계를 이용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언어폭력과 욕설, 고성 등으로 정신적 괴롭힘을 줬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박현정 전 대표는 할 말이 많아보였다. 대질(對質) 없이 진행된 일련의 수사과정에서 말이 말을 낳고 ‘다수의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번에 그녀가 제출한 진정서는 이러한 상황을 얼마나 반전시킬 수 있을까.
이 사건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작은 주사위 하나가 새롭게 던져졌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다. 작년처럼 엄청난 화제가 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몇 개의 눈이 나오느냐가 대단히 중요해졌을 것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