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상품이나 매매수수료 올리기에 급급한 영업행태로 투자자의 신뢰를 잃었던 증권가가 너도나도 ‘고객수익률 중심 경영’을 외치고 있다. 증권가의 불황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고객수익률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평가보상제도와 영업방식 등 경영활동 전반을 고객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윤 사장은 고객 손실이 과대하거나, 잦은 매매로 고마진이 발생하거나, 특정 자산에 편중돼 투자될 경우 이런 부분은 해당 영업조직의 실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또 영업조직의 실적 평가에도 고객수익률 관련 직접 평가를 30%, 간접평가를 15% 반영한다. 윤 사장은 “고객 수익률 중심의 영업만이 어려운 증권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삼성증권이 고객수익률 중심 경영을 전방에 내세운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 1992년 삼성그룹이 국제증권을 인수해 삼성증권으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이듬해인 1993년부터 고객에게 어느 정도의 수익률을 안겨주는지의 여부를 영업직원의 인사평가에 반영하려는 시도를 했다. 신설 증권사로 기존 증권사가 개인 약정목표 달성도로 직원을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

   
▲ 황영기 현 한국금융투자협회장. 전 삼성증권 사장.

특히 황영기 현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은 2001년 삼성증권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고객에 이익을 남겨주는 정도경영을 하겠다면서 영업직원 평가를 고객수익률 중심으로 하겠다”고 공언했다. 2003년부터는 고객의 수익률에 따라 직원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를 본격 시행했고 삼성증권이 ‘자산관리 명가’라는 타이틀을 얻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황 회장 뿐 아니다. 박종수 전 금투협 회장도 2005년 우리투자증권 사장에 취임하면서 “고객들에 돈을 벌게 해주는 증권사가 되겠다”며 영업사원의 과도한 매매 회전율을 제한하고 고객수익률을 직원평가에 반영토록 했다. 이후 우리투자증권은 LG투자증권과 우리증권의 합병 당시 48조원이었던 고객자산이 100조원을 넘기는 등 자산관리 분야에서 빠르게 기틀을 잡았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2008년 주가가 폭락하면서 고객수익률 중심 경영을 외치는 증권사 수장은 자취를 감췄다. 다시 등장한 것은 2012년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 강 사장은 같은해 2월 취임직후부터 높은 고객수익률을 올린 직원에 포상하고 고객수익률을 직원 평가 항목에 추가했다.

   
▲ 지난 2012년 신한금융투자가 강대석 사장 취임이후 고객수익률로 직원을 평가한다는 점을 강조한 광고의 한 장면.

동물 다큐멘터리 형식의 광고를 통해 신한금융투자가 고객수익률로 직원을 평가한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이때 등장한 슬로건이 ‘프로들의 자산관리.’ 강 사장 취임 전인 2011년말 40조였던 신한금융투자의 고객자산 규모는 2014년말 76조로 두 배 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성과에 12일 신한금융지주는 강 사장의 두 번째 연임을 결정했다. 신한금융투자에 자극 받은 듯 신한은행도 이달부터 고객 자산의 투자수익률을 직원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김원규 NH투자증권 사장도 지난해 NH농협증권과 우리투자증권 통합 후 사장에 취임하면서 “고객수익률을 직원 평가에 연동시키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NH투자증권은 고객수익률을 직원평가에 반영하기 위한 방안을 현재 마련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증권업이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등 어려워지면서 고객의 신뢰회복이 화두로 등장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