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임 하락했지만 선복난 여전, 수출물류 위해 선박투자 강화해야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30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국적 원양선사인 HMM에 대해 산은 차원의 투자는 이미 충분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추가 투자는 선사가 자체 판단한 후 국책 선박금융공기관인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상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또 순차적인 지분 부분매각을 언급하며 민영화 시그널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채권단이자 최대 주주로서 HMM의 미래를 책임지기 보다, 잔여 영구 전환사채(CB)의 주식 전환을 통한 차익 확보와 다가올 민영화 작업을 준비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 이동걸 산업은행장 / 사진=산업은행 제공


1일 금융권과 해운물류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분 매각 계획에 대해 "별도로 진행 중인 것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원활한 인수합병(M&A) 요건을 조성하기 위해 단계적 매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현재 HMM의 지분구조는 산은 20.69%, 해진공 19.96%로 두 기관의 지분이 약 40%를 상회한다. 두 기관이 보유한 전환사채(CB) 및 채권 물량이 모두 주식으로 전환되면 정부 지분율이 사실상 71.68%에 이르는 셈이다. 

이 회장은 "산은과 해진공 지분이 70%에 달하기 때문에 매각이 쉽게 되도록 지배지주의 지분만 내놓고 시장에 내놓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이 또한 유관기관에 협의할 사항이다"고 밝혔다. 

또 해진공과의 공동경영관리를 연내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해진공이 단독으로 관리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 회장은 "해수부·금융위·해진공이 2021년에 공동관리를 끝내고 2022년부터 해진공이 전담하기로 돼 있다"며 "공동관리도 작년 말에 끝나기로 한 것을 (HMM을) 강력하게 도와주기 위해 미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우리는 손을 뗄 때가 되지 않았나. 우리가 단계적으로 손을 떼어야 하는데 정부 유관부처 등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언급한 공동관리는 기존에 산은과 해진공이 맺은 경영이행약정서 상 HMM의 경영이 어려울 때 기관으로서 관리할 내용이나 분담금 지불계획 방안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HMM에 대한 미래 경영계획 논의는 현재 양 기관과 주무부처, HMM 등이 협의 중이라는 후문이다. 

해진공 측은 "내년부터 (공동관리가 넘어오는 부분은) 해진공이 단독권으로 가는 게 맞다"고 밝혔다.

HMM 민영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 채권단으로서 추가 투자계획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회장은 "HMM에 글로벌 (선사)수준까지 지원하는 건 우리가 할 사항은 아니라 본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선복난에 따른 해상운임 폭등,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 해양 환경규제 등 신조 친환경 선박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현재의 해운 초호황을 '일시적' 현상으로 판단해 '투자'보다 '리스크관리'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 회장은 "12척을 추가 발주해서 선대규모를 (목표치까지) 갖춰주면 얼라이언스를 통해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해서 (산은도) 동의해줬다"며 "(HMM 노조와의 협상 당시를 언급하며) 운임이 정상화될 거고 (자구)노력이 필요한데 잔치를 벌리면 어떡하나. 향후 위험요인도 강조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 1차 구조조정은 성공적으로 완수됐고, 추가 발주로 선대규모도 확보됐으니 이제 어떻게 HMM이 해진공과 협의하면서 글로벌 선사로서 경쟁력을 유지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HMM은 긴장을 늦추지 말고 2단계 작업에 매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회장의 발언을 종합하면 HMM에 대한 추가 투자를 지양하고 지분을 부분매각해 조속히 손을 떼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은행업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것인데 해운업에 유독 리스크를 우려하는 경향이 짙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래부터 산은은 HMM의 20척 건조에 대해서도 협조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해운재건을 공식 선언하고 해진공이 설립되면서 억지로 팔이 비틀려 도와준 것이다"며 "HMM에 대한 지원이 애국충정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정부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도와준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산은은 투입한) 3조 4000억원을 이미 뽑아냈고, 그동안 HMM에 레이팅(rating) 후 리스크를 고려한 이자도 엄청나게 받아냈다"며 "CB 전환이슈도 있지 않나. (수익이 확실하다보니 산은이) HMM에 도와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 HMM 컨테이너선 / 사진=HMM 제공

금감원에 따르면, 산은은 HMM CB 전환권 행사에 따른 차익으로 상반기 1조 8000억원의 비이자이익을 거뒀고, 3분기에는 이익 규모가 2조 2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국내 은행들의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이 15조 5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조 3000억원 증가했는데, 산은을 제외하면 3조 1000억원 증가했다. 증가분의 상당분이 산은의 몫인 셈이다.

HMM의 고객인 물류업계는 계속되는 선복난 속에 산은이 옛 한진해운 사태를 답습하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나섰다. HMM은 정부 지원에 힘입어 2만 4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 1만 6000TEU급 8척 등 20척을 신조 발주해 동서항로의 한 축인 구주노선에 투입하고 있다. 현재 건조 중인 1만 3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은 오는 2024년께 투입될 전망으로, 미주노선이 유력해 보인다. 

하지만 미주노선의 선복난이 최근 몇 년 간 극심했던 데다, 중남미와 오세아니아 등 '남북항로'도 극심한 선복난과 체선현상으로 고운임 현상을 빚고 있다. 특히 영세한 물류업체와 수출업체들이 외국적 선사들과 거래를 맺지 못해 수출을 포기하는 실정이다. 이들로선 HMM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만큼, 산은과 해진공이 수출물류를 위해 컨테이너선을 추가 건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현재 신조된 선박들은 모두 (선박 특성상 수심이 깊은) 구주노선에만 투입되고 있는데, 미주는 너무 부족한 실정"이라며 "미 시애틀·터코마(PNW)의 경우 서비스당 4~5척씩, 8척을 투입해야 한 달 정시 서비스가 완성되는데 최근 배가 없어 월 1~2척  수준에 그친다"고 답했다. 

이어 "호주·뉴질랜드 노선은 선박이 부족하다 보니 1~2년 전 1000달러 미만에서 거래되던 운임이 최근 800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다"며 "운임이 소폭 내렸다고 하지만 계약운임으로는 외국적 선사들이 선복을 안 준다. 한국에서는 선복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또다른 물류업계 관계자는 "현재 HMM이 소속된 디얼라이언스는 (미주노선 최강자였던) 한진해운이 없다보니 선복이 매우 부족하다. HMM에 의존하는 포워더와 화주로선 사실상 죽 쑤는 꼴이 됐다"며 "해운 불황을 우려해야 하는 건 맞지만, 수출국가로서 선박이 필수적인 만큼 금융기관들이 신조발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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