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도서관, 공공도서관도 이제 '정치 시장'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 지역의 정치인이 지역민을 생각하는 공심이 높아서 지은 것이 아니다. 자기 재선을 위해서, 선출되기 위한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그러한 행위가 나쁜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에게도 좋다. 정치인이라면 과감하게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공약, 공공도서관 공약을 내라는 말이다."
현진권 국회도서관장의 말은 직설적이면서도 명쾌했다. 11월 29일 국회도서관 관장실에서 열린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진권 관장은 '도서관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용어에 대한 철학을 피력했다.
현 관장은 지난 9월 '도서관 민주주의'라는 책을 펴냈다. '도서관을 모르면 정치도 못한다! 정치와 민주주의, 경제의 시각으로 도서관의 놀라운 진화를 집중 분석해본다'는 취지였다.
우리 삶의 핵심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도서관. 대의민주제 정치의 치열한 경쟁이 꽃 피워내는 도서관의 다양성과 눈부신 진화 이야기를 현 관장으로부터 들어보았다.
|
|
|
▲ 현진권 국회 도서관장./사진=김상문 기자 |
현 관장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도서관'과 '민주주의'라는 용어의 결합에 대해 "도서관은 하나의 장소이고 하나의 재화"라며 "이 도서관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공 시설이다. 그런데 항상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 입장에서 이 시대에 가장 좋은 상품이 도서관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지역에 보면 좋은 도서관이 있고 어떤 지역엔 별로 없다. 그 지역에 있는 좋은 정치인이 있는 곳에선 좋은 도서관이 있다"며 "그 지역 도서관 수준을 알려면, 그 정치인 수준과 비례한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현 관장은 "정치와 별개인 것으로 생각하는 이 사고에서 벗어나서 정치 시장, 정치 구조 내에서 도서관을 보아야 현실에서의 다양한 형태가 이해된다"며 "도서관도 이제 정치 시장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관장은 유권자들을 향해 "거꾸로 어떤 지역에, 왜 우리 지역에 좋은 도서관이 없나 실망하지 말고 모든 정치인에게 소리를 내고 질문하라"며 "유권자에겐 힘이 있다, 유권자의 당당한 목소리에 반응하는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수요와 공급 양측에서 작동해야 좋은 도서관이 탄생한다. 특히 광역단체 시도 보다 시군구 지역민에게 더 와닿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공짜 우유보다 도서관이 낫다'는 영국 수상 마거릿 대처의 격언에 대해 기자가 묻자 "사람들이 책을 많이 보고 지식이 생기면 개인이 형성되고, 개인이 형성되어야 민주주의가 잘 된다"며 "도서관이 민주주의의 잣대가 된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선 도서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
|
|
▲ 현진권 국회 도서관장./사진=김상문 기자 |
현 관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부동층의 존재와 국민의 정치 무관심, 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묻자 "국민들은 살기 바쁘다. 정치만 하더라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려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 살기 힘들면 그 지역 의원 구청장 시장에 관심이 없다. 결국 인간은 경제적 문제로 움직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학적으로 보면 공공선택학계에서는 합리적 무관심이라는 것이 있다. 무관심한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라며 "뭘 살 때 잘못 뽑는다 하더라도 모든 책임은 자기에게 오지만, 서울시장을 잘못 뽑더라도 그 책임은 천만분의 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국민은) 살기 힘든 것이다. 자기 삶이 중요한 것이다. 합리적 무지 계층은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라며 "정치인 입장에서는 이 '합리적 무관심' 국민들을 어떻게 자기 영역으로 끌어들이느냐가 선거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 선거 전략을 어떻게 펴느냐에 따라 정치인이 재선될 수 있고 안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가장 정치시장에서 인기 있는 정치상품이 막걸리고, 고무신이었지만 1980년대 들어오면서 다리 놔주겠다는 토목 인프라가 대세였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도서관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실제로 제가 발로 뛰어다녀서 확인해본 결과, 제가 꼽은 10개의 도서관이 최근 2~3년 사이에 다 지어진 것이다. 도서관을 통해서 정치 경쟁이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실질적으로 많은 공공도서관을 다니면서 얻은 결론은 좋은 도서관에 좋은 정치인이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
|
|
▲ 현진권 국회 도서관장./사진=김상문 기자 |
한편 현 관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좋은 도서관의 공통점'에 대해 "도서관에 얼마나 시설이 좋으냐, 크기가 크냐로 볼 수 있지만 혁신적인 도서관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라고 답했다.
특히 그는 "(도서관을) 어떤 식으로 운영하느냐에 달려있다. 일반적으로 독서실이라는 개념이 파괴되면서 책 없는 도서관, 그림 그리는 도서관 등으로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에서 유명한 빵집을 도서관에 갖다놓는다면? 도서관 하면 독서실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서관이 빵집이 되고 미술관이 되고 박물관 등 온갖 기능이 흡입되면 어떻게 될까"라며 "이젠 도서관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힙합을 할 수 있는 장소까지 제공한다. 동영상 편집 스튜디오 공간도 제공한다. 도서관에 대한 생각이 파괴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 관장은 이에 대해 "다시 말하면 어차피 경쟁이다. 정치 시장에서도 정치 경쟁하는데, 정치적인 상품이 공공도서관인 것"이라며 "도서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유권자도 좋고 정치인도 좋다. 둘다 윈윈이다. 그래서 이제 정치인들도 고민할 필요 없다. 그 지역에서 가장 좋은, 합당한, 공공도서관을 디자인해봐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다만 그는 "이건 대형 도서관에 답을 주는게 아니라 일종의 주관식"이라며 "그 지역에 딱 맞는 도서관은 그 지역 정치인만이 알 수 있다. 제가 이번 저서를 통해 10개를 추려냈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 관장은 저서 '도서관 민주주의'에서 '좋은 도서관의 공통 코드: 철학과 개성'이라는 챕터를 통해 우리나라의 좋은 도서관 10곳을 꼽았다. 남양주시 정약용 도서관, 의정부시 음악도서관, 수원시 광교푸른숲 도서관, 파주시 가람도서관, 충남도서관 등이 그 주인공이다.
마지막으로 현 관장은 공공도서관이 아닌, 민간 사립도서관에 대해 기업과 개인의 기부제를 적극 권장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1100여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는데, 미국과 영국에 카네기재단이 만든 곳이 2500여개 도서관에 달한다"며 "미국의 공공도서관은 대부분 기부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단 한 명의 거인이 만든 도서관 유산을 보면, 기업과 개인에게 자본주의 시장경제 나름대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분출구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
|
|
▲ 현진권 국회 도서관장./사진=김상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