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이승혜 인턴기자] 날이 한층 풀렸다고는 하지만, 아침은 여전히 쌀쌀하기만 한 오전 서울역 환승센터. 출근길 직장인들은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일제히 거대한 빌딩 숲으로 사라졌다. 이름만 대도 전 국민이 다 하는 기업들의 빌딩 숲 건너편, 아무도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 수십년된 벽돌 건물로 얽히고설킨 작은 마을은 고립된 외딴 섬처럼 다가왔다.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동자동 쪽방촌. 고작해봐야 20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만 1100명이 넘는다. 지난겨울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주민은 4명, 이중 3명은 무연고자로 분류돼 서울시의 일괄화장처리를 기다리는 중이다.

   
▲ 미디어펜=한기호 인턴기자

잿빛 쪽방촌, “온기가 그리워 사람을 찾는다”

이들의 하루살이만큼이나 동자동의 건물은 회색빛을 띈다. 수십개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과 그 사이마저 갈라놓은 균열, 마음대로 뻗은 골목길까지 서울의 교두보인 서울역 앞 모습이라기에는 너무나 투박하고 볼품없다.

골목에 들어서니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가 눈에 띈다. 그 옆에 바삐 움직이는 남자는 끌고 다니던 캐리어에 폐품을 황급히 집어넣고 사라진다. 골목에 쓰레기봉투는 널려있어도 폐지나 캔 따위를 보기는 힘들다. 주민들은 이곳을 서울역에 빗대 “여기 사는 사람들은 서울역이라고 안해요. 서울역이 아니라 종착역이지, 종착역”이라고 말했다.

작은 공원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 명의 주민들이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 일용직을 전전하는 중년 남성, 기초수급대상자, 장애가 있는 두 딸을 공부방(?)에 보내고 둘이 생활한다는 노부부 등이었다. 마실 것 없이 자원봉사단체가 돌린 떡을 먹고 있는 이들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고마워하면서도 쉽게 경계를 풀지 않았다.

주민들은 난방조차 들어오지 않는 쪽방을 피해 그나마 사람의 온기가 있는 공원으로 모인다. 바로 앞 희망나눔센터에서 주민에게 커피를 1000원에 팔지만, 이들은 “차라리 1200원하는 막걸리 한 병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흐르는 시간과 허기를 잊기 위해 술로 하루를 보내다 알코올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된 이들도 부지기수다.

자원봉사단체들은 때때로 도시락과 지원물품을 들고 주민들을 찾는다. 이날 만난 김지연 카톨릭중독상담센터실장은 “월요일에 한번씩 120여 가구에 도시락을 배달한다. 한 달쯤 됐다”며 “일주일 만에 방문하면 돌아가시거나 병원에 실려 가신 분들이 많다. 돕고 싶어도 쪽방촌 주민들이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도시락을 드리려는데 오히려 문을 잠가버리시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에서는 외부의 후원으로 동네 주민에게 500원짜리 도시락을 판매한다. 자체 통장도 만들어 주민들이 5천원, 만원씩 모은 돈으로 저금리 대출도 하고 있었다. 관계자는 “작은 노력이지만 주민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 미디어펜=한기호 인턴기자

주민들 “필요없는 지원물품 되판다... 당장 생활비 필요해”

그러나 이들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제 정치인과 유명인사의 방문을 하나의 이벤트쯤으로 여긴다. 당장 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지원품은 다시 내다 팔아 생활비에 보탠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공원에서 만난 김 모 씨는 “전체적으로(기초수급대상자) 부정수급자를 다 없애고,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줘야한다. 생산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주고”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최 모 씨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도와줘도 열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카드나 쌀 같은 지원물품은 당장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되판다”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자존심, 그거 하나 남은 사람들이다. 500원짜리 식사도 기분 나쁘고 보여주기 식 도움도 저들 잇속 챙기기에 이용당하는 것 같아 싫다”고 말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아랫니가 없는 조 모 씨는 “자활이랍시고 최저시급 받고 일하는 거나 기초수급비 받는 거나 차이도 없다. 방세나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 모 씨는 “사는 정말 때우는 것뿐이다. 식사보다 살 곳이 문제다. 퇴거라니 막막할 따름이다. 떠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떠날 수도 없다”며 씁쓸해했다.

현재 쪽방촌 내 기초수습대상자들은 월 평균 48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15~25만원의 월세와 별도의 관리비를 내고 남은 20만원 남짓의 돈으로 한 달을 생활한다. 서울역 노숙자 무료급식과 동자동 공동주방 ‘식도락’에서 500원에 제공하는 한 끼 식사가 그나마 모자란 생활비를 아껴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최근 4000원대로 껑충 뛴 담뱃값의 직접적인 피해자도 그들이다. 이제 흡연은 사치나 다름없다. 최 모 씨는 “담배는 우리 삶의 눈물이야. 끊을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담배를 끊을 수 없는 이들은 이제 필터가 보일 때까지 최대한 담배를 아껴 피운다. 담배 한 갑이 이제는 3일치 식사와 맞먹기 때문이다.

   
▲ 미디어펜=한기호 인턴기자

단순 지원으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 본질적인 대책 시급

지난해 KT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동자동 희망나눔센터’에는 25명 가량의 주민이 고용돼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주민을 위해 빨래방, 공동샤워시설을 개방하고, 자활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1층 카페베네에서 지원받아 운영 중인 마을 카페에서는 시중보다 훨씬 저렴한 천원에 커피를 살 수 있지만, 주변 빌딩숲에서 건너온 직장인들만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센터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한 사회복지사는 “상시근무자 5명으로는 천명이 넘는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 관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자동 사랑방’ 관계자는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을 통한 저리대출 및 ‘식도락’의 저가 식사 운영을 통한 복지정책의 효용성을 강조했다. 모두 다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혼란스러웠다.

동자동 쪽방촌을 벗어나 돌아오는 길, 눈에 띈 식당가에 메뉴표에 적힌 6000원대의 가격표는 분명 현실과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햇살은 분명한 봄이었다. 그러나 바람이 유독 싸늘했던 이날의 동자동은 춥고 또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