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가 1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최저임금 약인가 독인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패널로 참가한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현 최저임금으로 알바생이 김밥한줄과 라면한그릇도 못사먹는가라고 반문했다. 하루 4만5000만원 벌면 라면에 김밥도 사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일부에서 지나치게 알바생의 최저임금 문제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허교수는 <최저임금, 중소기업의 현장부터 알고얘기하자>는 주제로 발표했다. 중소기업 현장의 실제사례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가져올 부작용을 강조한 것. 허교수는 정부와 정치권의 무분별한 최저임금 인상론이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며 강조했다. 그는 최근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가 투자와 일자리창출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 유보금에 대한 징벌적인 과세는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근시안적 정책이라고 했다. 그는 "최저임금제 인상주장은 소상공인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가격경쟁력과 투자의욕을 심각히 훼손하는 역효과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결국 임금 인상문제는 현실을 감안해서 시장의 가격결정기능에 맡겨야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다. 노사대립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도 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의 발표문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현재의 최저임금 5580원으로는 김밥가게 알바생이 라면에 김밥 한 줄도 못 사먹는 가격이라고. 생계를 위한 일상노동으로 점철된 미생(未生)들이 차고 넘치는 현실에서 비인간적 노동의 값싼 대가는 노동소외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고용불안을 안고 있는 현실에서 설득력이 있는 주장들이 난무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동의 대가로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임금을 올려서 근로자에게 더 많은 소득을 챙겨주고 소비를 늘여서 침체된 내수경기를 활성화하자는 정책이 논의 중이다. 심화되는 양극화 문제를 소득의 분배로 해결하고, 경기를 부양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인 셈이다. 그래서 정부와 정치권이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
이 대목에서 몇 가지 집어볼 사실들이 있다. 정책의 오류와 포퓰리즘이 가져올 거짓약속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 기준으로 계산하면 대략 하루에 4만 5천원을 번다. 최저임금으로는 김밥 한 줄과 라면을 못 사먹는다는 표현은 지나친 호소다. 영업이 어려운 경우라면, 이 정도 임금수준은 알바를 고용한 가계 주인에게는 이미 부담일 수 있다.
문제는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고용불안을 해결하는 열쇠가 최저임금의 인상이 될 수 있는가 여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히려 그 반대에 더 가까울 듯하다. 임금을 늘임으로써 종업원의 복지를 개선하려면, 월급을 주는 사장의 호주머니부터 살펴야 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현실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다. 임금이 올라 가격경쟁력이 낮아지고 영업에 지장이 된다면, 기업은 고용을 줄이거나 아예 사업을 접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최저임금의 인상은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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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최저임금으로 알바생이 라면과 김밥 한줄도 못사먹는다는 악성루머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하루 4만5000원으로 라면에다 김밥도 사먹을 수 있는 돈이다. 최저임금은 중소기업들의 현장을 감안해서 결정돼야 한다. 현장을 무시한 포퓰리즘적 정책은 탁상공론이 될 수밖에 없다. /알바몬 동영상 캡처 |
더구나 이번 최저임금제 인상에는 자의적으로 월급을 결정하는 기업의 사장님과 생계를 위해 맹목적 고용으로 점철된 근로자들의 보이지 않는 대립구조가 느껴진다. 대중과 여론을 먹고 사는 정치현장에서 흔히 보는 노사대립의 프레임인 것이다. 시장경제의 틀에서 진정한 상생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최저임금 인상에 앞서 산업계의 현장을 먼저 공부해야 할 것이다. 탁상공론이 우려되어 중소기업의 현장에서 접한 사례를 소개한다.
♯ 사례 1
경기북부지역에 식품을 제조·판매하는 B기업. 전국의 대형마트에서 매장을 직영하면서 연간 매출액이 약 400억 원에 이를 만큼 지난 20년간 비교적 성공적인 성장을 했다. 모범적인 중소기업으로서 대그룹의 윤리경영 대상을 받았고, 국세청으로부터는 몇 번씩 모범납세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작년도의 적자경영을 만회하기 위해 비상경영에 들어간 이 기업의 사장은 요즘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무척 민감하다. 직원들 평균임금이 대략 150만원. 정부가 검토하는 최저임금과는 거리가 있는 임금수준인데도 사장은 걱정이 많다. “더 이상 임금이 오른다면, 당장 매장부터 철수할 겁니다.” 이윤이 나지 않는 영업점의 철수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 기업은 신입직원의 급여를 늘 최저임금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중소기업이 그러하듯이 인턴수습과정이 끝나면서 해마다 호봉을 적용해서 월급을 올려주는 방식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해당 직원에 대한 인건비 인상에만 해당 되지 않는다. 1년차, 2년차 직원 등에 대해 줄줄이 인건비를 조정한 결과, 지금 이 기업의 450명 직원에 대한 인건비는 금년 1월부터 매월 약 4천만의 추가부담을 안고 있다.
언제까지 버틸지는 모르지만 임금인상은 제품가격에 반영되어 결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결국, 인건비 인상 → 제품가격 인상 → 소비자 부담 이라는 전형적인 거시경제의 악순환이 우려되는 경우다.
♯ 사례 2
국내 공기업과 일본 등 외국기업에 비철 부품을 생산·판매하는 S기업. 시설투자가 많은 장치산업이라 늘 자금압박이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를 포함하여 종업원 약 4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이 기업은 경기북부지역에서 제조기업의 전형으로 손꼽힌다.
창업 16년차인 이 기업의 사장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우려가 더 깊고 심각하다. “외국인 고용조차도 어렵게 될 겁니다. 처음에는 60만원에서 시작했는데, 최저임금이 해마다 올라서 지금은 시간 외 수당을 포함하면 평균 170만 원 정도를 지급합니다.”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에 맞추어 직원 초임을 결정하고 놓지만, 실제로 평균적인 인건비 부담액은 이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인건비 인상으로 약화되는 가격경쟁력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가격에 반영하거나 이게 어려우면 해외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거나 국내 일자리 상실로 나타날 것이다. 인건비 인상 → 가격경쟁력 약화 → 일자리 상실로 나타날 수 있는 사례다.
노사대립의 프레임 벗어나서 보자
경기부양은 난제(難題)다. 특히 정책수단이 작동될 때 경제주체들이 시장에서 보이게 될 반응을 예측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요체이고 실제로 어렵다. 그래서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기부양에 부심하는 현 정부는 작년부터 전(全)방위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순기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투자여력이 있는 기업들이 내부에 쌓아놓은 유보금에 대한 징벌적인 과세제도는 대기업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근시안적 정책이다. 이번에 검토되는 최저임금제 인상은 소상공인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심각한 가격경쟁력과 투자의욕을 심각히 훼손하는 역효과가 더 클 것이다. 재개의 목소리를 노동계의 반대쪽으로만 들어서는 안 된다. 노사대립의 프레임을 경계해야 한다.
시장의 가격결정기능 존중해야
성매매금지법 제정 당시(2004년) 국회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없었다.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온 국민의 지지를 받는 법안에 반대할 명분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때부터 시장은 조용히 반응했다. 성매매는 지하로 파고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성매매시장은 더 커졌고 방법은 더 진화했다.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만큼의 최소한의 임금을 조금 올리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임금인상에 대한 호소와 관계없이 시장은 냉정하게 작동할 것이다. 정부는 구인난에 늘 고심하는 기업인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다 보면, 고용주와 종업원의 관계가 늘 갑을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산업현장의 임금은 수요와 공급이 합의하는 선에서 결정되도록 여건을 조성하면 된다. 임금시장의 가격결정기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제도적 지원이 많이 확충되기는 했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다. 이번 기회에 임금인상분에 대한 법인세 감면제도의 도입방안을 일본사례를 연구하여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기회에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소기업의 현장부터 찾아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올 수 있는 파급효과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