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적법성 강조 위해 상법·미국 판례·전문가 논문 소개까지
“최 회장이 SK에 지시했다는 ‘증거’ 없어, 검찰 고발은 안해”
SK “진술 및 자료 반영 없이, 기존 심사보고서 반복... 전원회의 왜 했나”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최태원 SK회장의 ‘사업기회 유용여부’를 놓고, 재계가 “사업기회가 아닌 책임경영”이라며 ‘무혐의’를 주장하고 나섰음에도 불구, 결국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이를 두고 “직접적인 증거 없이 3년간 무리한 조사를 진행해 온 공정위의 자존심 내세우기가 아니냐”는 목소리와 함께 ‘상법과 공정거래법의 이중규제’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 출석을 위해 관련 자료를 들고 차에서 내리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공정위는 22일 기업집단 에스케이(이하 에스케이) 소속 ㈜SK가 특수관계인 최태원에 대해 사업기회를 제공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총 16억 원(최태원 8억 원, SK 8억 원)을 부과키로 결정했으며, 검찰 고발조치는 없었다.

이번 제재는 사업기회 제공행위와 사실상 동일한 행위를 규제하고 있는 상법 상 ‘회사기회 유용금지’ 규정이 도입된 지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해당 규정을 적용한 소송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그간 공정위가 제재한 사익편취 행위와 달리 동일인에 대한 직접적인 부당한 이익제공행위를 제재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공정위는 SK가 구LG실트론(이하 실트론)의 주식 70.6%를 직·간접적으로 취득한 후, 잔여주식 29.4%를 자신이 취득할 경우 상당한 이익이 예상됐음에도 불구, 최 회장의 잔여주식 취득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 자신의 사업기회를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제재 근거를 댔다.

또한 SK는 앞선 51% 및 19.6%의 주식취득 과정에서 잔여주식 29.4% 인수는 ‘추후 결정’하기로 내부검토 했는데, 이후 최 회장이 인수 의사를 피력하자 이사회의 심의를 통한 합리적 검토 없이 대표이사 장동현이 SK의 입찰 참여를 포기한 것이 조사결과 드러났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 사건 사업기회 제공행위를 통해 최 회장에게 부당한 이익이 귀속됐다고 판단했다.

   
▲ 육성권 기업집단 국장이 22일 세종정부청사에서 SK 최태원 회장의 사업기회 유용혐의에 대한 제재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육성권 기업집단국장은 이날 세종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이는 해당 이익이 사업기회의 정당한 귀속자인 SK에게 귀속돼야 함에도 불구, 최 회장이 회사의 동의(이사회의 승인)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이를 위법하게 이용해 자신에게 귀속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한 과정에서 최 회장이 에스케이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SK가 사업기회를 포기하고 대신 이를 자신이 취득하는데 관여하면서 SK로 하여금 자신의 사업기회 취득 실현을 위한 행위를 하게 한 점, 그러한 결정 과정에 사업기회의 정당한 귀속자인 SK는 사실상 배제됐고, 최 회장에게 귀속된 이익의 규모가 상당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익의 부당성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상증세법에 따를 경우, 최 회장이 취득한 주식 가치는 2017년 대비 2020년 말 기준 약 1967억 원이 상승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인정한 약 2000억 원의 부당이득에 비해, 최 회장과 SK에 각각 8억 원이라는 과징금 부과는 미미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두고 재계 한 인사는 “최 회장이 SK에 주식취득을 위한 지원을 종용한 명확한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무리하게 제재를 가하려다 보니 이 같은 과징금이 나온 것 아니겠냐”고 반문하며 “결국 경제개혁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조사요청에 따라, 2018년부터 무리한 조사를 이어온 공정위의 자존심 세우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주식취득 과정에서 최 회장이 자금조달 방법, 입찰가격 등에 대해 보고받는 등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답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는 전날 개최된 ‘기업경영의 자유와 총수의 책임경영’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SK실트론 사건은 사업기회가 아닌 책임경영”이라며 “최 회장의 지분 인수는 공정거래법상 어떠한 위법성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정거래법 적용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즉시 기각됐어야 할 사건을 3년간이나 조사한 것은 무리한 법률 적용”이라며 “또한 사업기회와 관련된 규정이 상법에도 존재해 중복규제가 될 수 있고, 사업기회 제공문제는 전통적으로 회사법에서 다루는 문제”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견해에 공정위는 ‘공정거래 법령에 사업기회의 범위를 경영권 취득과 연관되는 것으로 국한하는 규정이 없는 점’과 ‘다수의 논문 등에서 지배주주의 소수 지분 취득도 상법상 사업기회에 해당한다’는 등 다소 불명확한 근거를 대며 반박했다.

또한 “사업기회를 직접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작위의무가 있는 자가 ‘사업기회를 포기해 제공객체가 이를 이용토록 하는 ‘소극적 방식의 사업기회 제공행위’를 처음으로 제재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 제재 적법성을 강조하고 있는 육 국장./사진=미디어펜


이례적으로 이날 브리핑은 관련 전문가 및 논문 내용을 소개하는 등, 그 여느 때보다 ‘적법한 제재’를 강조하기 위한 긴 설명이 이어졌다.

이날 공정위는 ‘29.4%의 소수지분 투자가 경영권과 무관하므로 공정거래법상 사업기회로 볼수 없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주주제안권이 3%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 인정하고 있다는 상법 상 근거를 댔다.

또한 주요 쟁점이었던 SK의 사업기회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SK가 실트론의 주식 51%를 취득한 후 잔여지분 취득 여부를 검토한 점을 고려할 때 SK가 ‘수행할’ 사업에 해당한다며, 미국 판례법상의 ‘사업범위 기준(Line of Business Test)’을 근거로 댔다.

육 국장은 과징금 산정 기준에 대해 묻자 “당시 최 회장에게 제공한 이 사건 사업 기회의 가치가 얼마인지 매길 수 없었다”며 “이후에 실트론의 주식 가치가 상승됨에 따라, 매각하지 않은 미실현 이익 상태를 정확하게 산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정액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답했다.

이어 검찰 미고발에 대해서는 “이번 사건은 상법이 요구하는 이사회 승인절차 흠결 등 절차 위반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위반행위의 정도가 ‘중대·명백’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최 회장이 SK에게 사업 기회를 제공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배주주의 소수지분 취득행위를 공정거래법상 사업 기회의 제공이나 상법상 회사기회 이용으로 판단한 법원과 공정위의 선례가 없고, 명확한 법 위반 인식을 갖고 행해진 행위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하며 검찰 미고발의 이유를 댔다.

이날 공정위 결정에 대해 SK측은 “그동안 SK실트론 사건에 대해 충실하게 소명했음에도 불구, 납득하기 어려운 제재 결정이 내려진 데 대해 유감”이라며 “지난 15일 전원회의 당시 SK가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하는 충분한 지분을 확보한 상태에서 SK실트론 잔여 지분을 추가로 인수하지 않은 것은 ‘사업기회 제공’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 등이 이번 결정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이어 “또한 잔여 지분 매각을 위한 공개경쟁입찰은 해외 기업까지 참여한 가운데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했다고 밝힌 참고인 진술과 관련 증빙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SK측은 “특히, 공정위의 결정은 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관계와 법리판단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기존 심사보고서에 있는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반복한 것”이라며 “세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탄소중립선언 1주년인 10일 오후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탄소중립 선도기업 초청 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한편 실트론은 반도체 핵심 재료 중 하나인 웨이퍼 제조·판매사업자로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는 국내 유일의 사업자로 세계 웨이퍼시장 5위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최 회장은 정부의 ‘K-반도체’ 전략 등에 따라, 2025년까지 구사업 조정 16조 원, 투자 사업 처분 20조 원, 전략적 투자 유치 10조 원 등 총 46조원을 마련해 첨단 소재·바이오·그린·디지털 분야에 대한 포트폴리오 확대 작업을 꾸준히 추진할 계획을 밝히며 글로벌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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