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지난 주말 축구팬들은 모처럼 가슴 뻥 뚫리는 한국대표팀 경기를 봤다. 터키 전지훈련 중인 대표팀이 15일 현지에서 아이슬란드와 평가전을 치러 5-1로 화끈한 대승을 거뒀다.

2022년 벤투호의 새해 첫 A매치는 실로 놀라운 결과를 냈다. FIFA 랭킹에서 아이슬란드(62위)가 한국(33위)보다 낮기는 하지만 결코 만만한 팀은 아니었다. 2016유로 8강 돌풍을 일으키고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도 진출했던 유럽의 복병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전지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대표선수들은 27명 가운데 김승규(가시와 레이솔), 권경원(감바 오사카)를 제외하면 25명이 전원 K리그에서 뛰는 국내파들이다. 유럽 및 중동에서 뛰는 해외파들은 모두 빠졌다.

K리거들로만 나선 아이슬란드전에서 예상밖으로 5골이나 넣으며 이겼으니 월드컵의 해(2022 카타르 월드컵) 대표팀의 첫 걸음은 힘찼고 희망적이었다.

   
▲ 아이슬란드전에서 조규성이 한국의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파울루 벤투 감독이 어떤 마법을 부렸기에 해외파가 다 빠지고도 대표팀은 최고의 경기력으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우선 아이슬란드가 생각했던 것보다 약한 전력이기는 했다. 카타르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탈락한 아이슬란드는 대표팀 세대교체를 진행 중이고, 이번 한국과 평가전은 확실한 동기부여도 없었다. 선수들은 몸싸움 등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았고, 근래 A매치에서는 보기 드물게 압박도 별로 없었다.

상대가 느슨하게 나왔다고 해서 한국의 5골과 대승을 저평가할 수는 없다. 골을 넣을 수 있게 슛 찬스를 만들어가는 과정, 찬스에서 골을 넣는 장면 등이 모두 그동안 대표팀에 바라던 바 그대로였다.

아이슬란드전에서 한국은 조규성, 권창훈(이상 김천 상무), 백승호(전북 현대), 김진규(부산 아이파크), 엄지성(광주FC)이 골을 넣었다. 권창훈을 제외하면 나머지 4명은 모두 A매치 데뷔골을 맛봤다. 김진규와 엄지성은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신고해 더욱 인상적이었다.

최전방을 맡은 조규성이 황의조(보르도)와 경쟁력을 보일 정도로 스트라이커로서 자질을 입증한 점, 백승호가 공수 조율을 해가며 대포알 중거리슛에 의한 골로 킥력을 과시한 점, 1골 1도움을 올린 김진규가 중원의 새로운 보석으로 떠오른 점, 20세 막내 엄지성이 미래의 희망을 밝힌 점 등 대표팀은 '희망가'를 합창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김진규가 데뷔골을 신고하고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벤투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후 일관되게 추구해온 빌드업 축구는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에게 착실하게 녹아든 듯했다. 월드컵 최종예선과 본선을 앞두고 월드컵 출전 열망을 품은 K리거들이 그동안 기량 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도 엿보였다.

벤투 감독은 아이슬란드전 후 경기 내용에 대단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한국이 유럽팀을 상대로 5골이나 넣으며 이긴 것이 사상 처음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이제 벤투 감독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당장 이번 전지훈련을 마무리할 때면 해외파 합류를 전제로 최종예선 2연전(27일 레바논, 2월1일 시리아전)에 나설 대표팀 엔트리를 추려야 한다. 부상 중인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울버햄튼)의 합류 불발을 대비해 대체선수로 누구를 기용할 것인지 해결책도 마련해둬야 한다.

아이슬란드전처럼만 선수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기량 발휘를 해준다면 벤투 감독의 고민은 그야말로 '행복한 고민'이 될 것이다.

대표팀은 오는 21일 몰도바와 한 차례 더 평가전을 갖는다. 이 경기를 통해 최종예선 엔트리 구성을 위한 옥석가리기가 마무리된다. 팬들은 또 한 번 화끈한 경기를 기대하며 몰도바전을 기다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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