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백지현 기자] "'회색 코뿔소'가 다가오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경제·금융 전문가 간담회'에서 '회색 코뿔소'로 비유되던 잠재 위험들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회색 코뿔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기 쉬운 잠재 리스크를 의미하는 경제 용어다. 코뿔소는 몸집이 커 멀리 있어도 눈에 잘 띄지만, 평소 대비하지 않으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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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경제·금융 전문가 간담회'에서 '회색 코뿔소'로 비유되던 잠재 위험들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금융위 제공. |
고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 가속화와 코로나 상황, 중국 경기 둔화, 미·중 갈등 이슈가 올해 한국 경제와 금융 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등 주요국의 경제상황도 녹록치 않다.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뉴욕증시는 18일(현지시간) 미국의 시장금리 급증 여파에 주요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경제 전문가들은 회색 코뿔소로 갈수록 커지는 '부채 리스크'를 우선 지목하고, 선제적인 대응이 절실하다고 경고한다.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지목된 가계부채는 현재 1840조원을 넘어서 사상 최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정부부채와 민간부채가 누적됐고, 양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부채 규모는 전례 없는 수준까지 급증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채 비율과 빠른 증가속도를 보이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 영향으로 지난해 8월부터 가계부채 증가세는 점차 둔화되기 시작했지만, 연간 가계대출 증가액은 71조8000억원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세 번째로 높은 규모다.
코로나19 이후 불어난 가계부채와 자산가격 상승이 금융불균형을 확대된 가운데 앞으로 예고된 금리인상은 리스크 발생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특히 금리인상에 따른 취약차주의 늘어난 부채는 무시할 수 없는 위험 요소다. 금리변동에 따른 이자상환 부담은 갈수록 늘어나는 반면 소득은 한정돼 빚을 갚지 못할 경우 금융기관 등으로 리스크가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취약차주의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76%에 달한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지난달(0.75%→1.0%)에 이어 이달(1.0%→1.25%)에도 추가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코로나19 직전 수준까지 도달했다. 한은은 현재의 실물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는 "아직도 완화적 수준"이라고 밝히며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시장에선 연내 2차례 더 기준금리가 오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지난해 8월과 11월에 이어 이번에 오른 기준금리 0.75% 포인트 인상을 고려하면 가계의 이자부담은 금리인상 전인 57조7000억원에서 67조3000억원으로 9조6000억원 증가한다. 이 경우 차주 1명당 이자부담액은 289만6000원에서 337만9000원으로 48만3000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현 상황에서 가계부채 부실화를 촉발할 수 있는 잠재적 요인으로 "주택 등 자산가격 급락과 경기국면의 침체 전환으로 인한 가계소득 감소,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 금융정책 기조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을 꼽으며 "전반적 국내외 경제·금융 환경을 고려하면 금리변동에 따른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가계부채 규모가 급증한 상황에서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 국내 가계부문과 자산시장에서의 충격이 불가피하다"면서 "특히 주택가격, 주가 등 자산가격이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는 상황에선 충격의 민감도 역시 상응하는 수준으로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향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이 진행되면 신흥국뿐 아니라 일부 선진국에서도 긴축발작 및 위기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내에서도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이 우려되며, 이 과정에서 국내 경제의 약한 고리인 가계부채 및 자산시장에서의 타격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부채의 질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점, 자산가격과 가계부채 간의 높은 인과관계를 고려하면 가계부채의 총량‧속도‧질적 관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며 "가계부채 관리 대책은 가계 부실과 자산가격 리스크가 경제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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