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곳곳에서 에너지 믹스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역 분쟁 고조로 연료 수급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글로벌 경기 회복 및 전기차 보급 확대 등으로 전력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동 60년이 넘은 발전소의 수명이 연장되고, 유럽연합(EU)이 그린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키는 등 원자력이 다시금 조명 받고 있다. 태양광·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린 국가들의 전기요금이 급등하고, 정전으로 공장·난방시설이 멈추는 등 어려움이 발생한 것도 원전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미디어펜은 글로벌 시장과 국내 산업 전망 등 원자력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 글 싣는 순서는 ①EU 택소노미 개정, 에너지 시장 변화 신호탄 ②K-원전, 동유럽·중동서 '권토중래' 가능? ③탈원전 폐기, 산업경쟁력·국민경제 활성화 첨병 이다. <편집자 주>
[원전 르네상스②]②K-원전, 동유럽·중동서 '권토중래' 가능?
[미디어펜=나광호 기자]정부와 발전공기업 및 두산중공업 등 민·관이 해외 수주를 통한 원전산업 생태계 유지·발전을 모색하고 있으나, 탈원전 정책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국내 원전의 경쟁력 및 동유럽 사업 추진 동향 등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이 유럽사업자요건(EUR)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 인증을 획득하는 등 높은 안전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
|
|
▲ 바라카 원전 1~4호기/사진=한국전력공사 |
건설단가가 1kW당 3571달러(약 428만원)로, 중국(4174달러)·미국(5833달러)·러시아(6250달러)·프랑스(7931달러) 보다 낮다는 점도 언급됐다. 계획된 일정·예산으로 발전소를 지은 것도 언급됐다. 실제로 2008년 공사가 시작된 신고리 3호기는 8년여만에 발전소 완공된 반면, 핀란드에서 2005년 착공한 올킬루오토 원전은 당초 계획 보다 10년 가량 지연되는 과정에서 사업비도 1.7배 증가했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두산중공업·현대건설·삼성물산 등이 아랍에미리트(UAE)에 건설하고 있는 바라카 원전의 경우 APR1400 모델로, 1호기가 지난해 4월 상업운전에 돌입한 데 이어 2호기도 송전망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현재 3~4호기도 발전을 위한 절차가 진행되는 중으로, 이들 발전소가 모두 가동될 경우 현지 전력수요의 25% 가량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같은 강점을 앞세워 수출을 타진하고 있으며, 한국전력공사 등으로 구성된 '팀코리아'가 사우디 원전 수주를 노리고 있다. 사우디는 2017년 1200M~1600MW급 신규 원전 2기 도입을 위한 입찰과정을 시작했고, 2025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전은 2018년 프랑스·중국·러시아 업체들과 예비사업자로 선정된 바 있으며, 가장 강력한 경쟁국은 미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체코도 두코바니·테멜린 지역에 1200MW급 원전 2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체코는 에너지믹스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30%대에서 2040년 6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으로, 내년을 전후해 두코바니 원전 우선협상자를 선정할 전망이다. 한국은 미국·프랑스와 경쟁을 벌이는 상황으로, 주한체코대사가 국내 기자들을 만나 K-원전의 경쟁력과 수주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이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녹색 분류체계)에 포함시키기로 한 것도 호재로 꼽힌다. 이는 2045년 이전 건설허가를 취득하는 신규 원전에 대한 투자를 대상으로 혜택을 부여하는 것으로, 동유럽 국가들의 비용 부담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원전 도입 의사를 표명했으나, 44조원을 들여 2040년까지 6기 가량의 원전을 건설한다는 목표를 밝힌 폴란드의 경우 미국이 우세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수원은 루마니아 체르나보다원전 기동용 변압기를 공급하기로 하는 등 다각적인 비즈니스를 모색하는 중이다. 최근 K-9A1 자주포 패키지 도입 등으로 협력이 증진되고 있는 이집트에서도 3조원 이상의 수주가 이뤄졌다. 러시아 로사톰이 건설하는 엘다바 원전 터빈 건물·옥외시설물을 비롯한 2차사업에 참여한 것이다.
|
|
|
▲ 경북 울주군 서생면에서 진행된 신고리 원전 6호기 원자로 설치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사진=한국수력원자력 |
그러나 탈원전 정책을 뒤집지 못하면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에서 고배를 마신 것처럼 향후 수주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브랜드 파워가 하락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해 원전 건설을 멈췄던 국가에서 나타난 밸류체인 붕괴 등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업계는 문재인 정부가 천지·대진을 비롯한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한 탓에 창원 지역 업체들이 인력을 줄이거나 도산하는 등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해외 원전 수주에 성공한다고 해도 하청업체들이 '낙수효과'를 받기 위해서는 3~4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때까지 버티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국내 기자재 공급망은 2~3년 주기로 발주되는 원전 건설에 맞춰져 있어 수출을 통한 밸류체인 유지가 가능할 때까지 신규 발전소 건설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바 있으며,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지난 국정감사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촉구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프랑스가 EU 택소노미를 등에 업고 글로벌 시장 내 입지 강화를 노리는 가운데 환경부가 K-택소노미에서 원자력을 제외한 것도 문제"라며 "지금도 경쟁국 대비 파이낸싱 역량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국책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 조달도 원활하지 않으면 수주경쟁력을 끌어올리기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