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이 26일 오전 10시 '특권추구지수'를 발표했다. 특권추구지수는 정치·정부·사회·경제·개방 등 5개 분야에서 발생하는 지대추구행위(rent seeking)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측정하고 평가하기 위해 고안된 지수다.
한국의 특권추구 상황은 134개국 가운데 45위(OECD 34개국 가운데 28위)에 머물렀는데, 정치(24위), 사회(45위), 경제(52위)는 상위권에 속해 양호한 반면, 정부(93위), 개방(125위)은 하위권에 속해 특권추구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 비대한 정부 권력 및 비개방성이 특권 유발의 주요인임이 밝혀졌다.
한편 특권추구지수에서 1위를 차지한 국가는 싱가포르였다. 결과 발표 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타계함에 따라 특권추구지수 결과는 더욱 큰 관심을 받게 됐다.
이 날 발표회에 참석한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은 싱가포르의 현실과 한국의 상황을 대비시킨 원고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특권추구지수라는 개념과 함께 싱가포르, 김영란법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아래는 김이석 소장의 발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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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
흥미롭게도 최승노부원장이 싱가포르를 특권추구지수로 1위로, 즉 가장 특권추구가 없는 나라로 평가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23일 30여년 싱가포르를 이끈 이광요 전 총리가 타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으로 전직 해외정상의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흔히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한국과 싱가포르가 함께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특권추구지수에서 싱가포르는 빛나는 1위지만 한국은 여기에 한참 못 미치는 45위이다.
이런 차이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1인당 국민소득에서도 싱가포르는 지난 해 5만 6,000달러로 우리나라의 약 2배에 이르며 아시아 1위, 세계 8위의 부국이다. 흔히 알려져 있듯이 그는 공무원들에게 높은 임금을 주는 대신 총리직속 조사국을 만들어 부패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응징했다고 한다.
미국 국적의 외국인에게도 태형을 가해 국제적으로 원성이 높았지만, 또 그런 점에서 싱가포르는 ‘법의 지배’나 서구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특권추구는 용납되지 않는 사회였던 것 같다.
‘특권지수’로 이름을 붙여 계산을 시도한 것은 공공선택이론에서 말하는 지대추구행위의 정도를 국가별로 개략적이나마 추산해보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국가 단위로 어림산을 시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이론적 전제들과 가정들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시도는 한편으로는 대담한 것(bold conjecture)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별 순위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정교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런 유형의 측정치가 가지는 한계를 의식하고 이의 과잉해석에 유의하는 사회과학 방법론을 따르는 논평자로서는 이 계산방법의 유효성과 관련된 논의는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해석과 관련해서 유의해야 할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정치와 정부의 특권추구와의 연관성에 대한 해석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특권추구 순위와 점수가 평균점수에 대비되어 있는 것이 <표 4> ‘2013년 한국의 지대 추구비용지수와 국제비교’이다.
이 표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부분의 순위는 24위로 우리나라 전체적인 순위 45위보다 앞서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는 부문별로 볼 때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특권추구를 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정부는 93위로 전체 순위 45위에 비해 매우 뒤쳐져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부문에서 특권추구가 심하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표1>의 항목별 변수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부문에 들어있는 변수들을 보면, 조세부담, 재정건전성, 정부보조 등이다. 정치권에서 특권추구형 법률들을 제정하고 포퓰리즘적 정책을 추구할수록, 조세부담이 높아지거나 국채가 많이 발행되어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는 점에서, 비록 정부에 해당하는 변수들이지만 정부(관료)가 추구하는 특권추구로만 이해할 수 없다.
정치 쪽 변수들이 반드시 정치권의 특권추구의 정도를 반영하는 건 아니며, 정부 쪽 변수들에도 정치권의 특권추구 행위가 반영될 수 있다.
둘째, <표 4>에서 우리나라 개방과 관련된 순위가 매우 낮다. 무려 125위이다. 우리나라는 FTA도 많이 한 국가인데, 이 정도로 개방 쪽에서 왜 이렇게 특권추구가 심하게 나오고 또 이렇게 특권추가가 심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이 되었으면 좋겠다.
셋째, 발제자가 밝혔듯이, 중국과 스위스의 특권추구의 국가별 순위가 예상밖으로 중국이 스위스에 비해 특권추구를 하지 않는 국가로 평가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어렵다.
저개발국가들은 산업의 발전 자체가 낮은 단계이므로 특권추구의 정도가 높지 않을 수 있다. 산업발전이 어느 정도 되고 있는 개도국이면서 국가권력에 대한 제한(법치)이 갖춰지지 못한 국가에서 특권추구가 저개발국에 비해 더 심할 수 있다. 이는 김우택교수가 평소 주장하듯이, 마치 화폐경제가 발달되기 이전의 국가에서는 국민들로부터 탈취해갈 것들이 별로 없고 또 계산해내기도 어려워 특권추구활동이 오히려 화폐경제가 발달했을 때보다 미약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중국과 같은 국가들에서의 지대 혹은 특권 추구는 저개발국에 비해 클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에 대한 제한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서방국가들에 비해서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중국이 스위스에 비해 오히려 특권추구가 약한 국가라는 추정결과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지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시진핑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거꾸로 2013년 현재 중국에 통계로 잡을 수 없는 부패문제가 심각하며, 그만큼 특권추구도 심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렇게 중국과 스위스의 결과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까닭은 보통 특권추구가 자유지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달리 말해 자유지수가 높은 국가일수록 특권추구가 제약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중국과 스위스의 자유지수도 이런 순위로 평가받을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특권추구지수가 자유지수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살펴보고, 특권지수의 추계를 재검토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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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콴유의 나라' 싱가포르는 ‘법의 지배’나 서구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특권추구는 용납되지 않는 사회였던 것 같다. /사진=연합뉴스 |
넷째, 사람들에게 특권추구지수에 따른 국가별 순위가 쉽게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특권추구지수가 자유지수에 버금가는 매우 광범위한 부분에 걸쳐 다루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특권추구를 국회를 통한 입법을 함으로써 각종 보조금과 규제들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좁혀서 정의하고 좁혀서 살펴보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특권추구지수를 따지는 것은 특권추구의 측면에서 우리의 모델이 될 만한 국가들에서는 왜 그런 특권추구가 별로 없었는지에 대해 교훈을 얻으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가 1등을 했는데 우리에게 특권추구와 관련해서 어떤 교훈을 주는지 궁금하다. 김영란법을 제정한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입법과 함께 엄벌을 하면, 우리나라도 싱가포르 같은 특권추구의 부재가 실현될 것으로 기대할 것 같은데 어떤지 모르겠다.
결론 부분에서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평등한 기회’라는 명분을 내세워 역차별적 특권이 추구될 수도 있으므로 보다 세밀한 표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무튼 특권추구지수라는 개념과 함께 싱가포르, 김영란법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