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관련 부품 수출에도 영향…현지 생산 직격탄 우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작년 러 반도체 수출액 885억원
[미디어펜=김태우 기자]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미국이 24일(현지시간) 반도체 등 하이테크 제품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는 포괄적인 제재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국내 기업들 역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됐다. 특히 미국은 중국 화웨이에 적용했던 경제 제재 방식(해외직접생산품규칙)을 대 러시아 제재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전자제품 수출 및 현지 생산 전반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미국이 적용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은 제3국에서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사용됐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강력한 조치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자동차 러시아 공장 전경. /사진=현대차 제공
이에 따라 대 러시아 수출 품목 가운데 수출 비중이 큰 자동차(25.5%)와 자동차 부품(15.1%)의 수출에도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자동차 업체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경우 오랜 기간 러시아 시장에서 유대 관계를 이어온 바 있다. 지리적으로 물리적인 타격은 없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향후 생산 차질 등으로 인한 피해는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경우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일본 르네사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5개 업체가 주로 공급한다. 이에 자동차의 수출에도 일부 제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강제 합병 때도 서방의 제재 여파로 한국의 러시아 승용차 수출은 이듬해 62.1% 급감했고 타이어도 55.7% 줄어든 바 있다. 다만 당시에는 글로벌 경기가 나쁘지 않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와 반도체 수급 문제 등으로 생산 차질까지 이어지고 있어 실적 부진에도 영향을 입힐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경제 제재가 장기화 되면 현대차와 기아에게도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더욱이 올해 현대차와 기아는 러시아권역 판매 목표를 45만 5000대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해 43만대에서 5.8% 증가한 규모다.

러시아권역은 현대차‧기아에게 있어 북미, 유럽, 중국, 인도에 이어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러시아권역 판매에 차질이 생긴다면 올해 전세계 시장에서 전년 대비 12.1% 증가한 747만 3000대를 판매하겠다는 현대차‧기아의 목표 달성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클린룸./사진=삼성전자 제공
현대차‧기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연간 23만대의 생산 능력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GM 러시아 공장까지 인수해 러시아 내 생산 능력은 총 33만대에 달한다.

여기에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러시아로 수출하는 물량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현대차가 3만 8161대, 기아가 5만 1869대를 러시아에 수출했다.

러시아에 인접한 현대차 체코 공장과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량도 일부 러시아로 판매된다. 하지만 이번 경제 제재로 이 물량 수출을 못할 수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 수출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러시아로 수출하는 부품의 90% 이상은 현대차와 기아 러시아 공장으로 납품되고 있는데 이번 제재로 수출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현대차·기아의 생산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러시아에 수출한 자동차 부품은 약 15억 달러 규모로, 국내 부품업체들에 있어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라며 "대러 수출 제재가 발동될 경우 완성차 업체는 수출 물량을 다른 시장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부품업계는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를 포함해 모든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네온(Ne)과 크립톤(Kr) 등 희귀가스 공급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50%가량 점유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반도체 식각 공정에 사용되는 크립톤은 지난해 전체 수입 물량의 48.2%가 우크라이나(30.7%)와 러시아(17.5%)에서 수입됐고, 노광 공정에 쓰이는 네온 중 28.3%가 우크라이나(23.0%)와 러시아(5.3%)에서 들어왔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이미 전 세계 완성차 기업들이 생산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희귀가스 공급 차질에 따라 수급난이 더 심화할 경우 국내 완성차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제재에 따른 러시아 시장 위축으로 자동차 산업을 제외한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각각 생산 중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에서 세탁기, 냉장고 등 주요 가전 분야 1위를 차지하고 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자동차 러시아 공장 생산라인. /사진=현대차 제공
전자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러시아 내수와 독립국가연합(CIS) 일부에만 공급되고 있어 전체 공급망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적을 것"이라면서도 "현지 시장 위축으로 인한 타격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제재 기술 대상에는 반도체, 통신, 정보보안 장비, 레이저, 센서 등이 포함됐다.

모든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생산에는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대부분 들어가는 만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생산하는 반도체 제품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내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 자체가 미국에서 시작된 만큼 사실상 시장에 있는 모든 반도체 제품에 미국의 기초 설계 기술이 적용돼 있고 이는 현재 최고 기술력을 보이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같은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 러시아 반도체 수출액은 7400만 달러(885억 원)로, 전체 반도체 수출의 0.06% 수준이어서 수출 금액 자체는 많지 않다.

미국의 반도체 설계 기술이 적용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들어가는 스마트폰 수출도 타격이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약 30%로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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