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출범 후 우후죽순, 전문성보다 선정주의·황색언론 변질

   
▲ 황근 선문대 교수
2011년 말 4개 종합편성채널이 한꺼번에 출범하면서 과연 이 채널들이 무슨 프로그램들로 시간을 채울까 관심이 많았다. 왜냐하면 다채널시대에 들어서면서 평균시청률 50-60%를 구가했던 대박프로그램은 전설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10%만 넘어도 히트작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시사평론가들을 무더기로 출연시키는 걸러지지 않은 시사토크쇼’는 종편채널들의 ‘신의 한수’가 되어 버렸다. 일단 지상파방송사들이 포기했던 낮시간에 숨어있던 1%시청자를 TV 모니터 앞에 끌어 모은 것은 분명 큰 성과다. 또한 유재석·강호동 같은 고액 출연료도 필요 없고, 편당 수억씩 들어가는 제작비도 들어가지 않는 말 그대로 ‘저비용·고효율 프로그램’인 셈이다. 자본도 부족하고 채널인지도도 낮은 신생 종편사업자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격’이다.

그러다보니 개국 초기에 잠시 선보였던 드라마·예능 프로그램들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제작진 말대로, 몇 배의 돈을 쓰고도 시사토크쇼보다 시청률 낮은 허접 드라마를 제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또 메이저 신문사들이 겸영하고 있는 종편채널들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치중하는 것은 나름 합리적인 편성전략이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용인 것이다.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진 시사평론프로그램들로 이른바 ‘시사평론가’라는 신종 직업군이 만들어졌다. 물론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주로 신문·잡지 같은 인쇄매체를 중심으로 전문적인 평론을 내놓는 소수의 전문가들이었다. 지금처럼 스튜디오에 둘러 앉아 세상만사 모든 일은 미주알고주알 만물박사처럼 말잔치를 벌이지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 지난 1월 26일 채널A '쾌도난마'에서는 서울 신림동 상가 경비원이 5년 동안 휴일수당 900여만원을 받지 못했다며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 “그런 일만으로 목숨을 끊는다면 이 동네 주변에 장사하는 사람들, 저 중소 이른바 대기업 납품하는 사람들 다 목숨 끊어야 한다” 는 수준 이하의 패널 발언을 방송했다. /사진=채널A 화면캡쳐
이들 시사평론가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일단 변호사 같은 법조인들이 가장 많고 전·현직 언론인 그리고 정치권 주위에서 활동했거나 퇴역한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이전 정부 권력핵심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어떤 성격의 교수인지 모르겠지만 교수라는 커다란 직함이 써있는 명찰을 가슴 한쪽에 붙이고 나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세상이 삭막해져서 그런지 심리전문가라는 사람들과 전직 경찰관이라는 평론가도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마치 종편채널들이 이 정부의 중점정책인 고용창출에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시사평론하는데 직업이나 전직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론할 수도 있다. 또 자기 분야와 무관하게 세상 돌아가는 일에 해박한 지식이나 혜안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방송 더구나 시사·보도프로그램들은 그 분야의 전문성과 공정성이 절대 요구된다. 그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 없이 수많은 시청자들을 상대로 세상일을 마음대로 재단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종편채널들에 출연하는 평론가들을 보면 중세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전부 만물박사들이다. 자기 전문분야에 관계없이 모르는 게 없다. 아무리 cross over나 융합이 대세라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종편 시사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으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내용이 건전한 상식에서 나오는 잡담이고 설사 틀린다 해도 ‘아니면 그만’인 식이다. 그야말로 인터넷 댓글 수준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렇게 전문성이 부족하다보면 주관적인 판단과 자기주장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또 시청률은 의식해서 그런 주장들도 아주 톤이 강해야 한다. 그래야 존재이유가 되고 출연빈도도 높아질 수 있다. 바로 전문성 없는 시사토크쇼가 ‘선정주의 언론’으로 발전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선정주의 혹은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이 그렇지 않았던 지상파방송이나 보도채널들에게도 전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종편채널들의 ‘만물박사들의 걸러지지 않은 떼 토크쇼’는 좀처럼 개선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아니 더 늘어날 것 같다. 그 이유는 1%의 채널충성심도 높은 시청자들을 확보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는 언론으로서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 폐해는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