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혈세투입에도 감성팔이 급급…국익 위한 결단 필요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
세월호 유가족들이 삭발을 하고 정부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선체 인양을 통한 실종자 완전 수습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열흘 후면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지 1주기가 된다"며 "그동안 아픈 가슴을 안고 사신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사고 1주기에 즈음한 유가족에 대한 이러한 위로의 담화에 그치지 않고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세월호)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면 실종자 가족과 전문가들의 의견과 여론을 수렴해서 선체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세월호 인양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겠다”고 하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세월호 인양은 국내 기술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세월호는 인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 다음날 중앙일간지들은 “세월호 인양키로… ‘1년 갈등’ 씻는다”, “세월호 1주기 앞두고 유족 보듬기… 국론분열 차단 나서” 등의 헤드라인과 함께 “박 대통령 스스로 인양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중앙일간지들이 1면부터 3~4면에 걸쳐 “재보선 앞둔 여야 모두 인양 찬성”이라는 논조로 아무런 문제 의식이나 비판적 시각 없이 세월호 인양을 기정사실화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 여야를 통틀어 유일하게 세월호 인양 반대 의사를 밝힌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선체 원형보존의 어려움, 막대한 비용, 추가 희생 우려 등을 반대 이유로 제시했다.
불과 5개월 전인 작년 10월 중앙일간지들은 “세월호 인양 4(찬성)대5(반대)로 否決”이라는 내용의 헤드라인을 썼다. 국회나 정부의 표결 결과도 아니고 세월호 실종자 가족대표 9명이 자체로 실시한 투표 결과였다.

당시 언론들은 “부결 소식에 현장팀은 낙담”, “’인양안 부결'이 발표되자 범정부대책본부 관계자 10여명이 무거운 표정으로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며 강당을 떠났다”는 등의 감상적인 해설 기사를 썼다. 세월호 인양 반대를 결정했던 사람들이 5개월 만에 다시 “세월호 인양”을 주장하고, 인양 부결 결정을 1면 톱기사로 썼던 사람들이 박 대통령의 발언 후 세월호 인양이 마치 국론 통일의 수단인양 나서고 있지 않은가?

이런 가운데 여야를 통틀어 유일하게 인양 반대 의사를 밝힌 사람이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 5일 “세월호 인양, 이래서 반대한다”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선체 원형보존의 어려움, 막대한 비용, 추가 희생 우려 등을 반대 이유로 제시했다.

김 의원은 이어 “대신 사고 해역을 추념 공원으로 만듭시다.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실종자 유가족들이 세얼호 인양 부결을 결정한 당시 세월호 선체 인양 문제에 대해 아래와 같은 우려의 칼럼을 쓴 바 있다.

“(앞 부분 생략) 세월호특별법 제정 문제도 마찬가지이지만 대형사고에서 이해 당사자 또는 피해자 가족들의 주장에 이끌려 법을 만들고 국고를 무한정 써대는 것이 제대로 된 정부가 할 일인가? 실종자들이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천금만금을 써서라도 생환시켜야 마땅하지만 말이다. 이제는 실종자들에 대해 ‘인정사망’ 조치를 취하도록 정부와 실종자 가족들이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아울러, 수천억 원을 들여 선체를 인양해야 할 것인지도 냉정하게 검토해야 할 일 아닐까? 세월호 선체에서 기름 등 해양오염 요인들을 기술적으로 제거한 후 선체는 인공어초로 남겨두고 사고 해상에 부유등대(부이: bouy)와 추모비를 설치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된다면, “팽목항과 섬들을 연결하는 해상대교를 건설하고 팽목항에 추모도시”를 짓겠다는 등의 황당한 주장이나 요구들도 잠재우고 엄청난 국가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2014-11-7]”

   
▲ 세월호 인양 후 시신의 온전한 수습이 불가할 경우에는 1년에 걸친 갈등의 끝이 아니라 수천억 원의 혈세를 들여가며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지피는 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진=미디어펜
선체 인양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우선 이 문제가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사안인지가 의문이다. 과거 항공기 해상 추락 사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등처럼 지상사고들에서조차 실종자 수색을 마감하고 ‘인정사망’ 결정을 한 일이 있었지만, 이런 문제들에 대해 대통령이 이래라 저래라 지시한 사례가 있는가? 세월호사고의 경우 선박회사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대통령이 나서서 정부가 통째로 뒤집어 쓰고 해경까지 해체해버리며 엄청난 혈세를 퍼붓더니 이제는 또 선체인양 문제까지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는 형국 아닌가?

서울시가 설치해 준 시위텐트 속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외치던 사람들은 이제는 “세월호 속에 아직 9명이 남아있다”면서 “선체 완전인양으로 사고원인 규명”, “사고 배후에 대한 의혹” 등을 외치고 있다. 정부가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떠맡고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니까 "배후설"까지 나도는 것이 아닐까?

세월호 인양문제를 빌미로 반정부투쟁의 새로운 불씨를 지피려는 좌파들의 사주가 아니라면 불과 5개월 전에 스스로 세월호 선체 인양 반대 결의를 했던 유족들이 정부의 배·보상금 결정 발표가 나자 돌연 삭발하고 선체인양을 외쳐대는 속셈은 무엇인가? 대다수 국민의 무책임과 무관심 속에 나라 곳곳에서 좌파의 뿌리가 지표 위로 터져 나오고 있는데도 ‘통일 대박‘ 타령만 하는 것이 대통령의 리더십이며 국민의 팔로워십일까?

세월호 인양은 우리 기술이 미흡하다면 외국 기술에 의존해서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꼭 인양해야만 하는가 하는 타당성 여부와 인양에 따른 엄청난 혈세의 투입이다. 대통령의 “실종자 가족과 전문가들의 의견과 여론을 수렴해서”라는 말이나 “세월호 인양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겠다”는 해양수산부 장관의 말처럼 이 중대한 결단의 문제를 유족들의 눈치를 보다 못해 국민의 눈치까지 보며 결정하려 할 것이 아니라 인양 포기가 국익을 위하는 용단이라는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만일 세월호를 인양해서도 9명의 실종자 전원에 대한 사망확인이나 시신의 온전한 수습이 불가할 경우에는 또 어떤 갈등이 생길 것인가? 다행히 시신을 수습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본인임을 육안으로 확인 할 수 없는 가족의 주검을 보는 것이 유족에게 과연 위안이 될까?

세월호 인양이 1년에 걸친 갈등의 끝이 아니라 수천억 원의 혈세를 들여가며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지피는 격이 되리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이와 같은 현실적인 우려가 아니더라도, 국가 대사에 있어서 온갖 위협과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냉정하고 신속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 국론분열을 막고 국익을 지키는 지도자의 올바른 리더십 아닌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후 그의 시신을 곧바로 바다 속에 수장하고 그 위치조차 함구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의 참뜻이 무엇이겠는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 전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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