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대우조선 이어 KDB생명도 매각 무산…금융공기관 일원화 제안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KDB산업은행이 계열사인 KDB생명 매각에 실패하면서 과거 구조조정 실패사례에 대한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부임 후 쌍용차, 대우조선해양, 아시아나항공 등의 구조조정에 연거푸 실패한 가운데 KDB생명까지 매각이 물건너가면서 구조조정의 책임이 있는 산은이 마땅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동걸호'의 산은이 산업계에 대한 이해 없이 엄격한 재무적 기준을 일괄적으로 내세우면서 기업들의 정상화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산은 부산이전을 비롯해 개혁적인 목소리를 연일 내놓는 가운데, 산은 민영화 및 개편론이 한동안 금융권을 강타할 전망이다.

   
▲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정책금융의 문제점과 혁신과제: 산업은행의 역할 재편을 중심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윤창현 의원실 제공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은 자회사인 KDB생명의 매각을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산은은 "KDB칸서스밸류PEF(KCV PEF)는 지난 20일자로 JC파트너스(JC)와 체결했던 KDB생명 주식매매계약(SPA)의 해제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KCV PEF는 2010년 금호그룹 구조조정 당시 KDB생명을 인수하기 위해 산은과 칸서스자산운용이 공동으로 설립한 사모펀드(PEF)다. JC와는 지난 2020년 12월 31일 SPA를 체결했다.

산은은 "JC파트너스는 2021년 6월 금융당국 앞 KDB생명 대주주변경승인을 신청했으나, SPA상 거래종결 기한인 지난 1월 31일 안에 대주주 변경 승인을 득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JC가 보유한 MG손해보험이 최근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되자 요건 불충족으로 매각이 무산된 것이다. 앞서 산은은 세 차례 KDB생명 매각을 시도했지만 연거푸 실패했다.

산은이 KDB생명 매각에 실패하면서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책임론도 커지는 모습이다. 전날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치러진 '정책금융의 문제점과 혁신과제: 산업은행의 역할 재편을 중심으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산은이 산업지형 변화에 대한 둔감한 대응, 기업 구조조정 실패, 시중은행과의 업무 중복 등을 언급하며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윤 의원은 개회사에서 "지난 5년 산업은행에 대한 평가는 '안 된 것도 없고 된 것도 없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며 "문재인 정부 하에서 산업은행이 주도했던 쌍용차, 대우조선해양, 아시아나항공과 KDB생명까지 굵직한 매각이 번번이 실패하고 있고, 수조원을 투입해도 기업정상화는 요원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자금투입 회수율도 20~30%에 불과해 산업은행이 되려 정부 지원 부담만 늘리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현 정부 이후 산은이 M&A 구조조정 방식을 고수하면서 산은의 딜 실패가 결국 미래의 부담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책금융 기관은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며 "시중은행 영역에서 역할을 줄이고 기존 산업에 대한 선제적 사업재편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산은의 사후적 구조조정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평가다. 구 선임연구위원은 "정책금융기관이 대주주, 주채권은행으로서 대기업에 대한 사후적 구조조정을 담당할 경우 해당 기업의 공기업화로 적극적인 사업구조조정이 어렵다"고 평가했다. 

KDB생명 외에도 사실상 공기업이 된 대우조선 등이 대표적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이 거래되는 민간기업이지만, 사장 인선 등 경영문제는 채권단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만호 EY한영 경영자문위원회장(전 산은금융지주 사장)은 "새 정부 5년은 경기 불확실성과 산업혁신으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크게 늘 것"이라며 "사전 컨설팅, 인수합병(M&A) 강화로 구조조정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국내 정책금융기관의 단일화를 주장했다. 금융공기관이 18개에 달하고 역할이 과도해지면서 중복되는 업무도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산업은행 중소기업 지원 파트, 신용보증기금, 한국벤처투자 등을 한 데 모아 지주사 형태의 '중소기업 정책금융공사'를 설립하자는 게 박 실장의 제안이다. 

그는 "정책금융은 특정 산업 지원을 목적으로 선별 공급돼야 하지만 책무성을 담보할 장치가 미흡해 중소기업 정책금융에 대수술이 필요하다"며 "지배구조를 바꿔 자금 총량 규모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파트는 정책금융공사로 이전시키고, 중장기적으로 상업금융에서도 손을 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불가피한 사유로 산은에게 자금을 지원받는 일부 산업계에서도 산은의 역할에 회의적 시각을 보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산은이 코로나19에 대응해 기간산업의 안정화를 명분으로 마련한 '기간산업안정기금'도 이용 실적이 부진한 이유로 '높은 금리'와 '채권단의 경영간섭' 등이 꼽힌다.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유동성 위기를 겪는 국가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금을 조성했지만, 기금액 40조원(올해 10조원으로 축소) 중 실제 집행된 금액은 지난해 약 8000억원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에 따른 피해실적을 입증하기 어려운 데다, 수혜자격이 지나치게 엄격한 까닭이다. 

특히 국내선 탑승객 수 1위를 달리는 저비용항공사(LCC) 제주항공은 지난해 12월 기안기금으로부터 대출과 영구 전환사채(CB) 발행 등으로 1500억원을 빌렸지만 운항 정상화가 늦어지면서 올해 1분기에도 적자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안기금이라도 지원 받으려는 경쟁사들로선 부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지만, 높은 금리가 족쇄로 작용하는 만큼, 섣불리 수혜를 누린다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 학계 관계자는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재무적으로 부실화된 좀비기업들을 떠맡다보니 성과가 부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도 "간판은 국책은행이지만, 자금을 빌려주는 대가(금리조건 등)는 시중은행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은은 수년간 적자를 기록하다 업황 호재로 겨우 이익이 발생한 기업들의 자금도 곧장 받아간다. 사실상 고리대금업체와 무엇이 다르냐"며 "영구채 등으로 빌려주는 자금의 금리구조를 살펴 보면 기업 정상화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한편 최근 '알박기 인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우조선해양 사장 인선 문제도 언급됐다. 새 대통령이 집권하거나 임기가 만료돼 공석이 된 국책은행장 및 공기업 수장 자리에 정권코드형 낙하산인사가 늘 자리했기 때문이다. 

윤 의원은 "산업은행이 직면한 또 하나의 과제는 정권과 독립성"이라며 "지난 3월 대우조선해양 알박기 논란을 비롯해 현 정부 들어 산업은행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꾸준히 제기됐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윤 의원은 산은법 상 비어있는 정치적 중립의무 조항을 명시하고 산은이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도를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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