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자금 몰려 제2거품, 규제혁파로 기업자유 늘려야

   
▲ 안재욱 교수
정부관료, 통화정책 담당자, 지식인 등 많은 사람들이 금리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경기가 조금이라도 나쁘면 금리부터 내리려고 한다. 금리를 내려 저금리를 유지해야 경기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금리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금리가 정확히 무엇이고 경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안다면 그런 주장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금리는 가격이다. 구체적으로 ‘시간’의 가격이다. 시간은 일반재화와는 달리 추상적인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추상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듯이 금리가 가격이라는 점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현실의 생산과정을 이해하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경제학이 생산을 다루는 데 시간을 무시하고 생산요소만 투입하면 재화와 서비스가 바로 생산되는 식으로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생산에는 시간이 걸린다. 다시 말하면 토지(원자재 포함)와 노동을 이용하여 자본재를 만들고, 이 자본재에 다시 토지와 노동을 더해 최종 소비재를 만들기까지에는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장시간이 소요되는 재화가 있고 단시간이 소요되는 재화도 있다. 재화의 특성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지만 시간이 들어가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시간의 측면에서 보면 토지, 노동, 자본재, 소비재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 분리된 것들이 시간이 걸리는 생산 과정을 통해 연결된다.

사람들은 미래의 재화보다 현재의 재화를 더 선호한다. 쉽게 말하면 동일한 주택을 10년 후에 소유하는 것보다 현재 소유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할 수만 있다면 10년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내 집에서 사는 것을 원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보통 미래에 재화를 소비하기보다는 현재에 재화를 소비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둔다. 이렇게 현재의 재화와 미래의 재화의 가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일종의 ‘시간에 대한 가격’이 바로 이자다. 사람들이 미래의 재화보다는 현재의 재화를 더 선호하는 것을 양(陽)의 시간선호(positive time preference)라고 하는데, 그러한 점에서 이자는 시간선호 때문에 발생한다.

   
▲이주열총재의 한은이 1%대 초저금리시대를 연 것은 또다른 심각한 거품을 유발할 것이다. 벌써 실물경기는 여전히 침체상태인데, 부동산시장이 살아나고, 주식시장도 꿈틀대고 있다.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넘어 수년내 심각한 파열음을 낼 것이다. 초저금리정책에 기대기보다는 기업규제를 과감히 풀어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야 한다. 투자를 늘려야 한다. /MBN 화면캡처

미래에 완성되는 최종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현재 재화의 소비를 포기하는 저축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재 재화의 소비를 포기하는 저축에 이자가 지불된다. 그 이자는 그 저축을 제공하는 생산자(엄밀하게 말하면 자본가)에게 지불된다. 그리하여 생산자는 항상 금리를 보고 생산결정을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가격은 재화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수많은 개개인의 의사결정을 조정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가격이 통제되거나 간섭받으면 가격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해 시장이 파괴되고 교환 활동이 줄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가격에 대한 간섭이 커질수록 정보는 부정확해지고 경제적 조정이 되지 않으며 경제가 퇴보한다. 일반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거나 제한하면 시장이 왜곡되고 파괴되어 경제적 혼란이 야기되듯이 금리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생산 과정이 왜곡되고 잘못된 투자가 발생하여 경제적 혼란이 야기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면 수익성이 없었던 투자 프로젝트가 갑자기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기업들로 하여금 그 장기 프로젝트를 실행하도록 한다. 그래서 공장이 새로 세워지고, 새로운 자본설비가 도입되며, 고용이 늘고 원자재 구입이 늘어난다. 이로 인해 소득이 늘어난 소비자들은 현재의 소비를 더 늘린다. 따라서 소비와 투자 증가로 경기가 좋아지며 일시적인 호황이 일어난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시간선호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소비가 미래로 미뤄지지 않는, 즉 저축이 늘어나지 않아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투자 사업에 필요한 자원 부족이 발생한다. 결국 투자 사업이 중단될 수밖에 없게 되어 불황에 빠진다.

그래서 불황은 잘못된 투자로 인한 시장 왜곡을 시정하는 과정이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시장의 기능에 의해 잘못된 투자가 교정되게 된다. 그런데 정부가 시장의 조정과정을 믿지 않고 시장의 정상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입하면 시장의 조정과정을 방해하여 불황을 더욱 심화시키게 된다. 이것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유이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장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을 겪는 이유다. 과다한 통화 팽창으로 발생한 불황을 다시 통화팽창으로 치유하려고 하는 데 따르는 고통이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이 취했던 1%대의 초저금리 정책은 우리 경제를 더 큰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지금까지 경기부양을 위해 수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한 바 있다. 그러나 경기는 꿈적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경기 침체가 계속되어 왔다. 그렇다면 금리를 인하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기침체의 올바른 원인을 찾아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경기부양에 효과도 없는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거품을 일으키고 그 거품이 꺼질 때의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다. 최근 그러한 위험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실물경기는 살아나지 않는데 단기 부동 자금이 급격히 늘고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몰리고 있으며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경기침체는 금리가 아니라 잘못된 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와 정치권은 시장을 옥죄는 규제와 입법을 양산해왔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는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을 만들기보다는 경쟁을 제한하고 기업 활동을 억제하는 규제들을 양산해 왔다. 노동시장을 경직화하는 친노동 정책, 대형마트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화학물질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하도급거래 규제강화 등 수없이 많은 조치들을 취했다.

이러한 규제들이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억제하여 한국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졌으며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감한 규제혁파를 통해 기업들에게 많은 자유를 주지 않는 한, 경제가 살아나기 어렵다.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데에 따르는 또 다른 문제는 소득재분배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금리를 낮추면 저축자의 이자 소득은 줄게 되고, 차입자는 차입 비용이 줄게 되어 이익을 본다. 이것은 정부가 은행 예금 이자로 살아가는 저축자에 대해 세금을 매기고, 차입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이유로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회불안 요인이 된다.

초저금리 정책으로 거품이 발생했다가 꺼지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어 사회가 불안해지면 정부가 이를 교정한다는 명목으로 더욱 시장에 개입할 것이다. 정부의 간섭주의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경제가 점점 정부와 정치에 예속되어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경제가 더욱 피폐해지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초저금리를 피해야 할 이유이다. 금리를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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