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레드라인 넘은 북, 판문점선언 ‘완전한 비핵화 공동 목표’ 파기
“北, 신냉전 인식…국제비확산 체제 흔들리는 상황 속 尹정부 시험대”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1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판문점선언’에 합의한지 4주년을 맞았다. 문재인정부 임기를 10여일 남긴 시점이지만 김 위원장은 ‘4.25 핵 톡트린’으로 평가되는 새 원칙을 발표하면서 핵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다.

김 위원장은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항일 빨치산) 창건 90돌 경축 열병식 연설을 통해 “핵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억제이지만 어떤 세력이든지 우리국가의 근본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둘째 사명을 결행하지 않을 수 없다. 공화국의 핵무력이 언제든지 가동될 수 있게 철저히 준비되어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떤 세력이든지’라고 해서 남한을 포함해 대결 상대를 확대시키면서도 ‘근본이익 침탈’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자의적인 잣대를 내세웠다고 평가했다. 결국 김 위원장이 결심하면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원칙을 표방한 것으로 판문점선언을 파기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판문점선언에는 남북 간 당국자 회담 및 민간교류를 활성화하는 것 외에도 2조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명시했다. 또 3조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저극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했으며, 3조 4항을 통해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도 약속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연설은 그동안 미사일 시험발사 등 무력시위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를 통해 표출해온 핵위협을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발설한 것으로 당분간 돌이킬 수 없는 선언으로 봐야 한다.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 열병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2.04.26./사진=조선중앙통신

실제로 북한은 문재인정부의 수차례에 걸친 경고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을 시험발사해 2018년 4월 자발적으로 약속한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선언을 파기했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에 열병식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이번 북한이 이르면 다음 달로 예상되는 7차 핵실험을 감행할지 주목된다.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과 5월 20~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및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 계기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번 김 위원장의 핵 선제타격 가능성 선언에 대해 전문가들은 세계의 신냉전 흐름을 대비하면서 북·중·러 결속을 강조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26일 “‘근본이익 침탈’이라는 핵무력 사용 조건 제시는 폭넓게 공격이나 침략을 받을 때뿐 아니라 이익을 침탈당하는 특정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 실장은 또 “지난 3월 30일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발표하면서 ‘극단적 상황’에서 핵 선제타격 가능성을 열어둔 것에 맞대응하려는 의도가 강해보인다”고 말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7일 보고서를 통해 “김정은 열병식 연설에서 신냉전 인식을 재확인했으며, 이러한 구도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선제 핵사용과 근본이익을 연계해 핵전략 운용을 위한 운신의 폭을 확장했다. 또 근본이익의 모호성을 유지함으로써 이에 대한 해석권도 행사하고자 했다. 이는 북한의 오판에 의한 선제 핵사용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제비확산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비확산 리더십마저도 분열되고 있다”며 “이제 곧 출범할 윤석열 정부는 처음부터 힘든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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