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사 살리려다 현대중-대우조선 합병 '골든타임' 놓쳐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지난달 26일 금융위원회에 퇴임 의사를 밝힌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산은 무용론'에 대해 지난 5년간의 구조조정 성과로 반박의 뜻을 내비쳤다. 특히 전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의 구조조정 성과를 비판하며, 취임 후 산은이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나름 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2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일각에서 맹목적인 비방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5년간 산은이 한 일이 없다는 둥, 3개로 쪼개야 한다는 둥, 도를 넘는 정치적 비방은 신정부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라 본다"면서 "이는 산은이라는 조직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할 일을 하는 3300명 직원과 그 가족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 지난달 26일 금융위원회에 퇴임 의사를 밝힌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산은 무용론'에 대해 지난 5년간의 구조조정 성과로 반박의 뜻을 내비쳤다./사진=산업은행 제공


이 회장은 '팩트(fact)'를 언급하며 작심한 듯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말했다. 그는 "2019년 5월 취임할 당시 정리되지 않은 현안 부실기업이 금호타이어·한국지엠·대우건설·현대상선(현 HMM) 등 10∼15개, 대규모 부실기업만 10여개나 있었다"며 "은행 금고는 텅 비어 자본잠식 직전 수준이었다. 조선·해운업 등에 대한 거액의 대손 비용 등으로 취임 전 3∼4년간 주요 부실기업 구조조정 관련 손실액은 14조 5000억원, 당기순손실만 5조 5000억원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호타이어, 한국지엠, 대우건설, 두산중공업 등 11개 기업의 구조조정을 완료했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게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합병이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의 불승인이 났고 KDB생명, 쌍용차 매각이 좌절됐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에 실패한 3건을 근거로 지난 5년간 한 것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KDB생명에 대해서는 재매각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최근 유럽연합(EU)으로부터 합병 불승인 통보를 받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조선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원인으로 꼬집었다. 당시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중 한 곳과 합치는 '빅딜'을 정부가 구상하고 있었지만, 시간만 질질 끌었다는 평가다. 대신 대우조선을 정부가 살려줌으로써 3사가 단가 출혈경쟁에 매몰됐고, 부실로 이어졌다는 시각이다. 

이 회장은 "(해운·조선) 대호황이 지속되면 모를까 대한민국 3사가 공존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절대 아니기 때문에 산업 차원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조선업이 부실화됐던 2015~2016년에 '빅2'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데 컨센서스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빅2로 만들자 할 때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 삼성이든 합병하는 건은 당시 집행했어야 했다"고 구조조정 실패 요인을 꼽았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출혈경쟁을 막았어야 했는데 당시 정부가 여론을 의식해 산은과 수출입은행을 활용해 각사에 정책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부실산업을 연명시키고 각자 경쟁만 부추겼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 구조조정이 3사를 살리는 자금지원이라는 점을 유럽 선주와 경쟁당국이 간파해 선가(船價)를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합병 반대를 내걸었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현 상황에서는 3사가 과잉경쟁 할 수밖에 없다. 출혈경쟁으로 수익성 개선이 어렵다"며 "EU에서 선주들은 국내 3사 출혈경쟁으로 낮은 선박가격이 유지되면 혜택을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은의 지원, 정부의 지원으로 3사간 경쟁이 유지되고 EU 선주들은 낮은 선박가격을 향유했으면 하는 게 EU 합병 불승인 배경이다"며 "쉽게 말하면 한국 정부가 유럽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꼴이다"고 비판했다. 

또 "일부에선 LNG 선박 특수로 조선업황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나, 이는 단기적 전망"이라며 "(몇 년 후) 2015~2016년과 같은 대규모 조선업 부실위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계속되는 쌍용차에 대해서는 "본질적 경쟁력이 매우 취약해 지속 가능성이 있는 사업성이 안 되면 자금 지원만으로 회생이 어렵다"며 "회생법원이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쌍용차는 지난 2020년 매물로 나온 뒤 에디슨모터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결국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이 불발됐다. 현재 쌍용차는 새 주인을 물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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