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연출·여배우의 자의식속 길 잃어…찬사·호평에 대한 불편한 질문
   
▲ 이원우 기자

영화 ‘화장’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감독 임권택, 주연배우 안성기, 여배우 김호정의 투혼,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초청, 또 그 수많은 찬사들. 개봉하기 한참 전부터 들려온 영화의 수많은 ‘스펙’들에 관객들은 압도된다. 취업준비생으로 비유하자면 ‘토익 만점, 학점 최상, 공모전 입상 다수’에 해당하는 학생이다.

그가 취업시장에서 생존하지 못할 거라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이 훌륭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을까. 자신 없으면 조용히 ‘좋아요’를 누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 된다. 역시 임권택, 역시 안성기. 하지만 그걸로 끝인가.

이 영화는 해외 관객들에게 ‘레비브레(Revivre)’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다. 프랑스의 화장품 브랜드 이름이자 ‘소생하다, 활기를 되찾다’ 등의 의미를 띤 단어다. 허나 이 의미가 무색하게도 102편의 영화를 만든 ‘거장’ 임권택의 연출은 군데군데 낡아 있다. 무용 공연을 보며 추대리(김규리)를 상상하는 주인공 오상무(안성기)의 모습은 더 이상 심야의 케이블 TV에서도 보기 힘들어진 80년대 방화처럼 그려진다.

오상무는 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김호정)를 수발하는 한편 젊은 후배 추대리의 몸을 상상한다. 그런데 아내를 품으며 어린 여자의 나신을 떠올리는 오상무의 상상 속 추대리 역시 형광등 불빛 아래 있는 것처럼 적나라할 뿐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다. 중년 남성의 상상력을 얕보고 있나. 낡은 연출이 ‘레비브레’를 말할 때 관객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불편한 질문을 던져본다. 임권택의 것임을 숨기고, 또한 바다 건너의 찬사를 숨기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더라도 이 영화는 지금처럼 국내 관객들에게 찬사를 끌어낼 수 있었을까. 스스로의 판단에 의하지 않고 어떤 권위나 전통에 기대어 판단할 때 빠지는 함정을 ‘극장의 우상’이라 부른 건 베이컨이었다. 베이컨 시대의 임권택은 누구였을까.

   
▲ 이 영화는 해외 관객들에게 ‘레비브레(Revivre)’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다. 낡은 연출이 ‘레비브레’를 말할 때 관객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더 까다로운 얘길 시작해 보자. 이 영화에서 배우 안성기는 양조위와 다카쿠라 켄의 중간 어디쯤을 성실하게 맴돈다. 전립선 비대증으로 비뇨기과에 들러 “오줌 좀”이라고 말하는 한편 추대리와 마주치기 위해 택시를 두 번이나 돌리는 꼴사나움에선 쓴웃음이 나온다. 그러는 틈에 배우 안성기의 빈자리에는 천천히 ‘오상무’가 스민다.

두 여배우에 대해선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들은 끝내 ‘여배우’로서의 자의식을 놓지 못한 느낌이다. 김규리가 연기한 추대리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와인에 대해 말할 때도, 운전을 할 때도, 멀어지는 오상무를 바라볼 때도 그냥 여배우 같다. 나중엔 얼굴 없는 문자 메시지까지 여배우의 것처럼 보인다.

본인의 투병 경험을 떠올리는 것이 괴로워 ‘화장’ 출연을 고사했었을 정도인 김호정이 암 환자를 제대로 연기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궤변 취급을 당할지 모르겠다. 허나 스크린에 비친 그녀의 몸은 별로 암환자 같지 않다. 그녀의 화장실 장면에 대해 모든 매체들이 한 마디씩을 얹었지만, 정작 암환자의 하반신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서 이 영화는 무심하다. 화면에 비친 건 그냥 ‘배우 김호정’의 몸이었다.

노출 얘기 중심으로만 기사가 났다는 점에 대해 김호정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지만(스포츠투데이 4월2일자 인터뷰), 리얼(real)을 표방하면서도 끝내 리얼은 아닌 그 언저리에서 영화의 도전은 멈춰버리고 마는 것 같다.

우리가 이미 아는 사실 - 이를테면 나이와 상황을 불문하고 유지되는 남성의 성욕에 대한 이 영화의 묘사는 진부하거나 모호하다. 우리가 알기 힘든 사실 - 이를테면 병마와 싸우며 죽어가는 여성의 절망에 대한 이 영화의 접근은 미묘하게 엉성하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영화를 통해 언제나 뭔가를 배울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배우면 되는 걸까.

부산까지 ‘거의 다’ 갈 뿐 끝내 부산역에 당도하지는 않는 부산행 KTX 같은 영화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