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안일과 위험불감 여전함을 보여준 ‘외교부 참사’
   
▲ 이원우 기자

1년이 지났다. 온 국민을 낙담케 만든 그 사건 이후에도 꽃은 피고 새들은 노래한다. 세월엔 그런 잔혹성이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도 “잊지 말자”고 말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으로 다일까.

‘잊지 않음’에도 잔혹성은 있다. 이 말 안에는 언젠간 결국 이 일을 잊게 되리라는 역설이 숨어 있다. ‘나의 일’은 아니라는 선긋기도 스며있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잊지 않는 것이 마지막 행동일 수는 없다. 같은 비극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 되고 난 후에 우리는 비로소 잊지 말자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얼마나 변했을까. 세월호의 비극을 만들었던 우리 안의 무사안일과 위험불감을 얼마나 털어냈을까. 여기, 세월호만큼 커다란 이슈가 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불길한 사건이 하나 있다. 이 사건의 경과와 의미를 짚어보는 것은 세월호 1년을 맞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리비아 주재 한국대사관 피습 사건의 의미

지난 12일, 이슬람 무장단체 IS로 추정되는 괴한들이 리비아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대사관 바깥 경비초소를 향해 기관총 40여발을 난사했다. 이로 인해 현지 경찰관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이 사건에 대한 한국 외교부의 대응은 무사안일과 위험불감의 결정판이다. 첫째, 사건 발생 이후 외교부가 이 사건을 브리핑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9시간이다. 일요일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늦은 대응이다. 그나마도 언론사에서 독촉을 하자 준비된 브리핑이었다. 한국인 피해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사망한 경비원 2명은 한국 대사관 직원이나 다름없는 신분이다.

둘째, 이 늦은 브리핑마저 거짓이었다. 외교부는 “이종국 주리비아 대사는 피습 당일 인접국에서 상황을 지휘하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대사는 이미 지난 4월 1일 한국에 들어와 귀국보고를 마치고 후임자 인수인계까지 한 상태임이 드러났다. 외교부가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내뱉은 것이다.

   
▲ 현지 대사의 기본적인 소재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점, 그리고 거짓 브리핑을 한 점에 대한 비판은 이미 몇 차례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위기대응 능력의 부재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외교부의 업무파트는 인사·지역·공보 등 세 분야로 갈린다. 자기 지역 대사관이 귀국한지 열흘이 넘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건 외교부 ‘내부 정치’의 난맥상을 보여준다. 미국이나 중국 대사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도 이토록 무관심했을까.

이후 리비아 대사관을 담당하는 외교부 지역국 측은 “이종국 대사가 지역국에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아 몰랐다”고 해명했다. 반면 이 대사 측은 “인사국에는 귀국 사실을 알렸다”고 말했다. 지역국과 인사국 간의 내부적 불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거짓 브리핑’보다 더 심각한 문제 있다

현지 대사의 기본적인 소재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점, 그리고 거짓 브리핑을 한 점에 대한 비판은 이미 몇 차례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위기대응 능력의 부재다.

자기 직원이 중동에 있는지 한국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위기대응을 논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허나 사망자가 발생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는데 현지 책임자와 접촉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번 사건의 진짜 불길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의 외교부는 이번 사건보다 더 큰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상태인가?

비판의 범위를 외교부에만 한정할 이유는 없다. 그들 역시 우리와 함께 부대끼며 살고 있는 한국인의 하나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세월호를 언젠가 침몰할 수밖에 없는 괴물로 불법 개조한 위험불감이 이젠 우리에게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와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의 그림자를 털어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비율을 1:29:300로 본 것은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였다. 이번 외교부 참사는 누가 봐도 ‘1’에 해당하는 세월호 사건처럼 커다란 일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29’의 범주 안에는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다름 아닌 우리들 스스로의 모습이 녹아 있다. 비슷한 사건은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결국, 1년이 지났지만 잊음과 잊지 않음을 논하기조차 아직은 이르다는 결론이다. 무사안일과 위험불감은 여전히 유령처럼 주변을 배회하며 언제든지 잔혹해질 수 있는 우리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