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남탓과 집단 하소연은 더 큰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뿐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세월호 유족에게 고함 - 슬픔은 온전히 개인의 것

지난 1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추모제에서 4160개 촛불로 만들어진 세월호가 떴다. 기네스 기록을 냈다고는 하지만 허망한 이벤트였다. 그런다고 해서 죽은 이들이 돌아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2014년의 노란 리본은 무사귀환을 의미했다. 하지만 2015년 4월의 노란 리본은 흡사 한풀이 씻김굿과도 같은 느낌이다. 망자를 무덤에서 불러올 기세다.

감히 세월호 유족에게 고한다. 슬퍼하지 말라는 바가 아니다. 그 누구의 슬픔이든 자식이나 가족을 잃은 감정은 구구절절하고 애끓는다. 다만 한 가지. 슬픔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1년 전 304명의 사람이 애꿎게도 목숨을 잃었다. 일반인들도 수십 명 죽었지만 대부분의 희생자는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어린 학생들이었다. 꽃다운 나이였던 그들은 뒤집어진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했다.

유가족이 직시해야할 세월호 진실

원인은 선장과 선원의 과실치사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배를 불법증축한 선사와 선주 유병언, 이를 묵인 방조한 검사기관 직원들과 소수의 공무원까지 포함된다. ‘만약’이라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지만, 배가 뒤집혀져 가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의 구조보트가 펼쳐지기만 했었어도 대다수는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정비검사를 제대로 받지 않았던 구명정을 펼 수는 없었다. 선장은 이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구조보트를 끌러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인근의 구조선들이 속히 오기만을 기다렸다. 방송으로는 선내에 대기하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그 와중에 배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졌고 많은 이가 배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 세월호 사고의 원인은 선장과 선원의 과실치사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배를 불법증축한 선사와 선주 유병언, 이를 묵인 방조한 검사기관 직원들과 소수의 공무원까지 포함된다. /사진=해경 제공 영상캡처

이것이 세월호의 수많은 죽음을 둘러싼 사실이다. 참담하고 가슴 아프더라도 직시해야 할 진실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지금껏 슬픔을 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그리고 유가족들이 이제까지 보였던 태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흡사 세월호의 살인교사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다. 안쓰럽다기 보다는 어리둥절하다. 유가족의 태도는 다음과 같다.

① 에어포켓, 다이빙벨, 민간잠수사 구조제한, 미국잠수함과의 충돌, 국정원 소유 의혹 등 갖가지 선동에 동조하고 이에 몰두한다.

② 억울한 일 없어야 한다더니 몇몇 이들은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기사를 집단으로 폭행한다.

③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래서 만들었더니, 자신들 뜻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초법적 권한을 달라 한다. 법 밖의 법을 만들려 한다.

④ 대통령이 세월호 1주기에 외국순방을 나간다 하니 갖은 욕을 다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팽목항을 방문했더니 분향소를 폐쇄시키고 다 사라진다. 그리고선 대통령이든 총리든 누군가 조문을 한다 해도 거부한다.

⑤ 위험천만한 잠수작업 와중에 인양을 한다 했을 때에는 시체라도 건져달라며 반대한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보상을 해주겠다 하니 이제는 인양하라며 난리다.

⑥ 세월호 인양을 두고 절단이냐 그대로 건져 올리냐 등의 전문가 논의가 있을 때,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폐기하라며 논의 자리를 보이콧한다.

⑦ 안전한 세상을 꿈꾼다더니 시민안전을 위한 경찰통제를 무시하고 불법시위에 가담한다.

⑧ 세월호 침몰을 둘러싼 원인 규명 모두 다 밝혀졌지만, 이는 진상이 아니라고 한다. 어떤 이는 진실만을 원한다면서 육두문자를 써가며 박근혜 대통령을 욕한다. 죽여버리겠다는 표현도 횡행한다.

슬픔은 자기 자신만이 추스릴 수 있어,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몫

슬픔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지만 몇몇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말 같다. 집단으로 이를 투영하고 일종의 ‘떼법’으로 슬픔을 나누고 확장하려 한다.

하지만 슬픔은 남에게 강요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도 부정적이고 음울하다. 안산시 분위기가 세월호로 인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세월호는 바다에서 일어난 사고다. 사고로 자식을 잃었든 가족 중의 다른 누군가를 잃었든 그 슬픔은 당한 당사자만이 풀 수 있다. 누구도 풀어주지 않는다. 삭히고 삭혀서 문드러질 때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것은 다름 아닌 남겨진 가족의 몫이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처지다. 겪기 전에는 가족을 그렇게 잃은 심정을 상상할 수 없기에, 처한 당사자가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이는 다른 어느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 밖에 없다. 사랑이든 용서든 화평이든 기쁨이든 사람의 마음은 본인에게 달려있다. 슬픔도 마찬가지다. 실체 없는 남 탓은 사람의 정신을 황폐화시킨다.

   
▲ 슬픔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지만 몇몇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말 같다. 집단으로 이를 투영하고 일종의 ‘떼법’으로 슬픔을 나누고 확장하려 한다. /사진=미디어펜

세월호 유족들께 고한다. 아무도 당신들을 이해할 수 없고 그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다. 시청이든 광화문이든 청와대든 그 앞에 서서 집단으로 하소연한다 해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

풀 수 있는 사람은 당신 자신뿐이다. 용기를 내라는 말도 가당치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드린다. 힘을 내시라. 견뎌내셔야 한다. 가족을 잃은 이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예기치 못한 사고나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죽어간 이들은 세월호 뿐 아니라 세상 도처에 널려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아있는 이들 모두가 평생을 엉망으로 살지 않는다. 다들 개인으로서 가지각색의 삶을 살아간다. 꿋꿋하다. 그것이 인생이고 생명의 길이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