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부인·비난자에 대한 비난 심리…공갈 지뢰도 존재할 것

   
▲ 성시완 범죄심리학자
성완종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김기춘 10만달러 2006년 9월 26일, 허태열 7억원, 홍문종 2억원, 부산시장 2억원, 유정복 3억원, 홍준표 1억원, 이완구, 이병기’.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발단은 이 메모로부터 시작된다. 검찰의 자원비리 수사과정에서 분식회계 및 횡령 등 개인비리 혐의로 별건 수사를 받던 중 자살을 선택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

이완구 총리는 성완종 회장이 한 언론과 나눈 인터뷰에서 폭로한 3천만원 수수설과 각종 의혹제기를 견디지 못하고 3월 20일 밤 늦게 총리직 사의를 표명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1억원을 전달했다는 성완종 회장의 폭로로 검찰의 칼날 앞에 정치생명이 흔들리고 있다. 다른 6인들 역시 지난 대선 및 경선 과정에서 성완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성완종 회장이 메모를 작성하였을 당시로 시간을 되돌려 보자.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성회장은 검찰의 무리한 별건수사로 박근혜 정부의 공신인 자신이 부당하게 탄압을 받고 있으니 친박 실세들을 통해 구명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완구 총리 등은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정상적으로 수사에 응할 것을 권유했고 성회장은 정권 최고 실세들조차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생에 의지를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 아닐까.

한 심리학자는 “범죄학의 이별살인 심리와 유사하다. 헤어진 이가 다시 구애를 했지만 상대가 반응이 없자 살해를 결심하고 결국 자기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라고 성완종의 심리를 묘사했다. 건국대 이웅혁 교수는 “내가 이렇게 했는데 너희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당신들을 응징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심리를 ‘이타적 징벌자 심리’라 평가했다. 이타적 징벌자는 자신의 피해를 무릅쓰고라도 집단에 악영향을 끼친 자들을 처벌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성회장의 이같은 이별분노 대상이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주장도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서 제1대부터 제3대 비서실장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들이 모두 거론되었다는 점을 두고 그런 억측까지 나오는 것이다.

   
▲ 자원외교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과연 그럴까. 평범한 의문 하나를 던져 보자. 성회장이 내놓은 명단의 인사들 모두 돈을 받기는 한 걸까. 자신을 버린 정권을 파멸시키고야 말겠다는 앙심에서 무고한 정치인들까지 리스트 속에 집어 넣은 건 아닐까. 비서실장 세명이 다 거론된 것도 그렇지만 지난 대선 당시 핵심 요직에 있었던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이 모두 거명된 것 역시 이런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한두명 정도는 성완종 회장의 머리 속에서 재구성되어 끼워넣기 식으로 기재된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지점에서 필자는 성회장의 8인 리스트가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바탕한 창작물은 아닐까 하는 진지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픽션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논픽션이라고 보기에도 뭔가 궁색한 일종의 ‘세미(semi)픽션 리스트’라고나 할까. 그게 사실이라면 성완종이라는 희대의 작가가 쓴 시나리오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게 될 반전드라마 개봉박두.

범죄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다 심층적으로 들여다보자. 성완종을 자살에 이르게 한 범죄와 국가권력은 그에게 어떠한 의미였을까. 저명한 범죄학자인 마차와 사이크스(Matza & Sykes)의 중화이론(Neutralization Theory)에 따르면, 성완종은 자신의 범죄에 대해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거나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 주변 환경의 탓이라는 등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외부 세력 때문에 범죄를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중화이론의 한 부류인 ‘책임의 부인(denial of responsibility)'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또,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 즉 정부나 검찰 등 공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는 식의 ’비난자에 대한 비난(condemnation of condemners)' 이론 또한 성완종의 범죄 및 폭로 행각에 적용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볼드(Vold)라는 범죄학자가 주장한 집단갈등이론(Group Conflict Theory)에 따르면, 법이란 집단간 투쟁에서 이긴 정치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보호를 위해 상대 집단을 제거하려고 만든 것이라 한다. 입법적 다수를 차지한 집단이 국가권력에 대해 통제력을 가짐으로써 소수집단을 억압하게 되고 결국 범죄라는 것은 이러한 소수집단의 반발행위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볼드에 따르면 범죄는 집단 갈등의 소산이라고 정의된다.
 
성완종 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주류 세력에 편입하지 못한 정치인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끊임없이 친박 정치인들과 교류하며 권력 핵심부로 들어가려 했으며,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성완종 회장은 결코 주류 정치집단에 속할 수 없었으며 집단간 경쟁에서 밀려남으로써 소수집단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성회장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러한 갈등이론적 범죄해석은 일면의 타당성이 있으며 본인의 기업비리가 범죄가 아니라거나 정권탄압의 대상이라는 주장 이면에도 이러한 시각이 자리잡고 있다 하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범죄는 범죄인 것이다.

앞으로 검찰 수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성완종 회장의 ‘세미(semi)픽션 리스트’는 세상으로 나와 대한민국을 온통 지뢰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가 깔아놓은 지뢰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는 기약없이 흘러갈 것이다. 이러한 무차별적 지뢰들 중에는 공갈지뢰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어정쩡한 지뢰밭 한가운데에서 검찰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밟아가며 터졌다 안터졌다 하는 지뢰들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국민 정서법에 따르면 적어도 7-8할 이상의 타율은 쳐야 욕은 먹지 않을 것이나, 가끔씩 피식하는 공갈 지뢰에 허탈해 할 대한민국, 그럼에도 또 모든 지뢰를 제거해 나가야 하는 우리의 숙명, 그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어렵다. /성시완 범죄심리학자, 범죄학 박사, 죄와벌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