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한국과 일본 정상이 참석하면서 기대를 모았던 한일 정상회담은 결국 개최되지 않았다. 대신 29~30일(현지시간) 이틀 일정동안 양국 정상이 5차례 대면하면서 ‘톱다운’ 식 관계 개선을 모색할 수 있다는 관측이 우리정부로부터 제기돼 주목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지 브리핑에서 “스페인 국왕 주최 정상 부부 동반 만찬장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을 먼저 찾아와서 얘기했다”고 전하고, “두 분이 나눈 대화가 짧고 가벼웠지만 핵심적이었다. 일본 정치 일정이 끝나면 얼마든지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톱다운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참의원선거가 끝난 뒤 한일 간 현안을 조속히 해결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고,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이 한일관계를 위해 노력해 주시는 것을 알고 있다. 한일관계가 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사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외교안보 공약에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실현을 포함하는 등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1998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고 국민감정이 개선된 효과를 다시 한 번 기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담 초청국인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4개국 정상이 함께한 아시아·태평양파트너국(AP4) 정상 회동이 끝난 이후 기자들이 기시다 총리의 인상을 묻는 질문에 “한일 현안을 풀어가고 양국 미래의 공동이익을 위해 양국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하게 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과거사 문제와 미래 문제는 모두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같이 풀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며 “과거사 문제가 양국간에 진전이 없으면 현안과 미래의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은 지양되어야 하고, 한일 양국이 미래를 위해서 협력할 수 있다면 과거사 문제도 충분히 풀려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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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9일(현지시간) 마드리드 이페마 컨벤션센터에서 아시아 태평양 4개국 정상, 옌슨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2022.6.29./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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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일 간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오랜기간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일본의 강제노역 역사 현장인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추진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된 현안도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모두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통해 이미 각각 해결됐다는 입장이어서 최근 대법원 판결에 따라 나온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정부가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에도 윤 대통령을 대면한 뒤 기자들과 만나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바탕으로 한국 쪽과 긴밀한 의사소통을 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이 전한 기시다 총리의 ‘일관된 입장’은 이미 해결된 과거사 문제를 한국측이 다시 제기한 만큼 지금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정부가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톱다운 방식이든 바텀업 방식이든 한일 간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선 그동안 미온적이던 일본정부의 태도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피해자를 포함한 우리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해결책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윤석열정부가 떠안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더구나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신전략 개념에서 중국을 ‘도전’, 러시아를 ‘위협’으로 적시해 중국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나토 신전략 개념에 대해 “엄중하게 우려하며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환구시보는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두고 “불가피한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다”며 경고했다. 윤석열정부는 “특정국가 배제”가 아니라 “가치 연대”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의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미국의 주도하는 동맹 재편에 참여한 것으로 안보도 경제도 미국·나토와 함께하는 다자협력구도에 뛰어든 것이다. 사실상 ‘글로벌 신냉전’이 시작된 것이어서 우리에게 한일관계 개선은 더욱 시급하다.
현재 정부는 7월 10일 일본 참의원선거가 끝나면 한일 대화를 본격화할 예정으로 우선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협의회를 4일 출범시키기로 했다. 한일 양국이 모두 만족하는 과거사 문제 해법이 윤곽을 갖춰야 2년 반째 열리지 않은 한일정상회담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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