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정부가 지난 14일 소상공인·가계·청년·서민 등을 타깃해 '125조원+a'의 역대급 채무탕감 패키지를 내놨다. 금리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차주들의 빚 부담이 늘어나자, 정부가 긴급 재원을 투입하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여파로 대출 원리금 상환을 무작정 연기하는 정책을 펼친 반면, 윤석열 정부는 빚을 일부 탕감해줌으로써 차주가 최소한의 부채를 갚을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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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지난 14일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소상공인·가계·청년·서민 등을 타깃해 '125조원+a'의 역대급 채무탕감 패키지를 내놨다. 윤 대통령은 채무상담에 나선 국민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한편, 민간 전문가, 현업 종사자들과 금리 상승기 속 소상공인, 주택 구입자, 청년 등 대상자별 상환 부담 경감방안을 논의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
하지만 정부가 부실차주 및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빚투(빚내서 투자)'족까지 구제해줌으로써, 차주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불러 일으키고, 성실 상환자에 대한 역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15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크게 △자영업자‧소상공인 금융애로 완화 △주거 관련 금융부담 경감 △청년 등 재기지원을 위한 채무조정 강화 △서민‧저신용층 금융지원 보완 및 민생범죄 근절 등 4가지 부문에 전방위적으로 지원할 것임을 시사했다.
정부의 금융지원은 금리상승 여파로 취약차주와 변동금리를 이용한 차주들의 상환부담이 가중된 까닭이다. 금융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1860조원으로, 주택담보대출 820조원, 전세대출 162조원, 신용대출 270조원, 기타(비주택부동산 담보대출, 예적금담보대출) 609조원을 기록했다. 이 중 2030세대의 부채가 508조원으로 전체 계층의 27%를 점유했다.
기업부채는 2355조원으로, 대기업·회사채 1025조원, 중소법인 730조원, 자영업자 600조원이다. 자영업자의 경우 다중채무, 저소득·저신용자 등 부실위험액이 전체의 9.2%인 82조원에 달한다.
미국이 물가상승을 우려해 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에 이어 한 번에 1.0%p 인상하는 '울트라 스텝'을 이달 실시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우리나라도 연말까지 대규모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미 부채 리스크가 큰 취약차주와 영끌·빚투족의 채무부담을 고려하면 정부가 뒷수습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정부가 내놓은 정책을 세부적으로 놓고 보면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대표적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 중 연체 90일 이상 부실차주 대상 원금 60~90% 감면 △안심전환대출(변동금리 주담대의 장기·고정금리 전환) △청년층 투자 실패자 채무 30~50% 감면 및 은행권 프리워크아웃 등이다. 특히 주택을 비롯해 주식,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 실패까지 정부가 구제해준다는 점에서 논란이다.
이를 두고 학계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비롯해 생활비가 부족한 취약계층에 한정해 핀셋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만큼, 변동금리 주담대를 이용하는 차주에게 고정금리로 전환할 수 있는 정책을 고려할 만하다고 전했다.
다만 투자 실패에 따른 책임까지 정부가 보장해야 하느냐는 문제라고 논했다. 특히 그동안 어려운 환경에도 성실히 빚을 갚아온 차주에게 역차별을 불러 일으킬 수 있고, 빚을 내어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어 우리 사회 전반에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평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시스템으로 채무를 흡수하자는 것인데 이는 신뢰를 훼손하는 반(反) 시장 정책이다"며 "가계부채의 절반이 주담대인데, 이를 취약차주로 볼 수 없다. 자산을 사서 이익이 나면 본인 것이고, 손실이 나면 국가가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이자감면에 대해서는 "연체 90일 이상은 '고정이하여신'을 뜻하는 것인데, 연체한 것을 누가 갚나. 결국 은행이 갚아야 하는데, 정부가 그 돈을 은행에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빚을 본인이 졌는데 이를 국유화하자는 것이다. 재정을 투입하면 재정은 나머지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메워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리한 주택매수에 따른 구제에 대해서는 "(이자 부담으로) 주담대를 상환할 수 없다면 집을 팔거나 작은 사이즈로 옮기거나 전세를 내어주고 나오면 된다"면서도 "금리가 많이 높아져서 이를 저리(고정금리)로 전환시켜주는 부분이 필요하다. 문제는 금리가 내렸을 때인데, 그렇게 되면 정책의 일관성이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랜 저금리로 빚어낸 부채가 폭등한 집값을 떠받치고 있는 만큼,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영끌족'이 본인 선택에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평가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생활비 목적으로 안심전환대출을 사용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 취약계층이기 때문에 이들에 국한해 재정을 투입하는 게 합리적이다"고 평가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을 풀면 경기둔화, 인플레 지속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지원을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냉정하게 취약차주와 한계기업을 식별해 핀셋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센터장은 "과거에는 코로나 이후 경기가 좋아지면 다 같이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대출 만기연장 등의 정책을)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럴 단계가 아니다. 취약차주, 한계기업들을 대상으로 시장에서 자연스레 이뤄져야 할 구조조정이 안 된 부분이 있다"며 "금리 상승기에 경기침체가 바로 시작되는 단계라 국가재정을 동원해 (부채를) 다 끌고 가겠다는 것은 국가 재원을 생산적인 부분에 쓰지 않는 것이다"고 평가했다.
이어 "처음부터 (모든 빚을) 다 끌고 가겠다는 건 무리가 있다"며 "좀비기업이나 회생 불가능한 가계를 연명시키는 형태가 되어선 안 될 것이고, 경쟁력있는 기업을 선별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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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지난 14일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소상공인·가계·청년·서민 등을 타깃해 '125조원+a'의 역대급 채무탕감 패키지를 내놨다. 윤 대통령은 채무상담에 나선 국민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한편, 민간 전문가, 현업 종사자들과 금리 상승기 속 소상공인, 주택 구입자, 청년 등 대상자별 상환 부담 경감방안을 논의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
한편으로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지는 점을 고려해 역차별 우려에도 취약계층에 한정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아침 '도어스테핑'에서 빚투 구제에 따른 상실감 및 투기 조장 논란에 대해 "금융리스크는 비금융리스크보다 확장 속도가 빠르다"며 "완전히 부실화 되어서 정부가 뒷수습 하는 것보다 선제적으로 적기 조치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후생과 자산을 지키는데 긴요한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금융위도 도덕적 해이 논란에 대해 "궁극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과 후생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며 "금융권과 함께 지원대상 및 수준, 심사기준 등을 세밀하게 설계·운영해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면서도 정책효과를 극대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학계에서도 윤 대통령의 취지와 궤를 같이 하는 의견들이 일부 제기됐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재정을 투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금리라는 게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인 반면, 재정정책은 특정 그룹을 타깃해서 펼칠 수 있다"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조율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제정책이라는 게 역차별적 측면이 있고 향후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일으키는 측면도 배제하기 어렵다"면서도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는 상황에 취약계층을 나몰라라 하기엔 취약계층이 갖고 있는 여러 경제적 어려움, 부채 문제 등이 크다고 본다. 실무적으로 (수혜층을) 제한해야 할 것이다"고 전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역차별 논란에는 동의하지 않는 게 취약차주에게 지원해줘야 금리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며 "전체적으로 금리를 올리려면 어려운 계층을 대상으로 어느정도 지원해줄 수밖에 없다. 이들 때문에 금리를 못 올린다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투입은 불가피하고, 재정 전체 규모는 줄여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재정투입이 불가피하다. 소상공인이 쓰러지고 부도가 나니까 정부로선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전반적인 대책이 되기엔 어렵다고 보는데, 위기대응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라 본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부가 빚을 탕감해준다 하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고 향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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