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3권 분립의 나라…미국의 리더십 발휘 여건 보장돼야

   
▲ 주재우 경희대 교수
중국 주도의 아시아 인프라투자 은행(AIIB)의 가입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은 우방국들에게 가입 결정에 신중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때론 외교적 압력 행사도 불사했다. 미국의 외교 압박은 때로는 도를 지나칠 정도로 심했다. 일례로, 미국의 케리 국무장관은 2013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 호주의 에벗 총리와의 조우에서 호주의 AIIB 가입 고려에 대해 ‘똑 바로 운전(steer clear)’하라는 식의 경고성 발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의 방중에 앞서 왕이 외교부장이 정상회담 관련 방한하면서 AIIB의 가입 문제를 의제화하자고 공식 제언했다. 이 소식을 접한 미국은 2014년 6월 주한 미대사관을 통해 우리의 AIIB 가입에 대해 ‘심각한 우려’의 입장을 전했다. 미국은 더 나아가 “AIIB는 중국이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AIIB에 가입할 경우 그동안 양국이 쌓아 왔던 우방으로서의 신인도가 영향을 받게될 것”이라고 협박성의 경고 메시지도 보냈다.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호주를 포함한 대부분의 미국 우방국들이 AIIB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난 15일 추가 회원국 접수를 마친 결과 AIIB 총 회원국은 당초 예상치의 30개국을 훨씬 뛰어 넘어 57개국으로 확정되었다. 이로써 작년 7월부터 가입문제를 둘러싸고 펼쳐진 장기적인 소모전이 일단락되었다. 우리가 이토록 장기적인 소모전을 치룰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이 ‘미국 눈치 보기’때문이었다.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구의 탄생에 참여하는데 미국의 압박과 반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목은 우리가 미국을 제대로 알았다면 이런 국가적 정력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60년 동안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이런 국내 정서는 우리의 학계와 정계를 주도하는 이른바 ‘아메리칸 스쿨(미국학파)’의 득세의 결과로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기득권층 대부분이 ‘친미파’, ‘지미(知美)파’와 ‘미국 전문가’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항상 ‘미국 눈치 보기’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그만큼 더 알면 더 정정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나?

   
▲ 미국이 지역금융기관의 발의에 즉각 동참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내재적 구조가 미국 외교에 존재한다. 미국이 그래서 우선 반대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예산 지원이 전제되는 국제금융기관의 설립과 같은 문제에서 미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동의나 동참의 의견을 표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미 행정부가 미 의회를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외교적 방편이다. 미국이 우리나 우방의 AIIB 가입을 왜 반대했는지에 대해 정확한 답을 제시 못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이다. /사진=KTV 캡처
작년부터 벌인 장기적인 정쟁을 보면 그 어느 누구도 미국이 우리나 우방의 AIIB 가입을 왜 반대했는지에 대해 정확한 답을 제시 못했다. 즉, 논쟁의 명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미국의 반대 이유를 매우 단순하게 이해했다. 미국과 같이 우리는 중국이 지역개발금융기관의 설립을 주도하려는 저의를 의심하는데서 우리의 정쟁을 개진했다. 이런 의구심은 중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관이 기존의 국제금융질서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논리로 표출되었다. 그리고 중국에 의해 제출된 가제안서에 따르면 AIIB의 지배구조가 국제수준의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에 자금의 흐름이 중국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배구조의 문제는 차관 신청국의 자격 조건에 대한 엄격한 심사 없이 차관 제공이 이뤄질 수 있어 국제금융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는 충분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즉, 미국에게는 AIIB의 중국식 지배구조가 미국의 ‘워싱톤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 차관 제공의 조건부가 미국이 요구하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안 수용)’중심의 국제금융질서에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런 인식 때문에 AIIB 설립 문제에서 보여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기(氣)싸움은 곧 ‘워싱톤 컨센서스’와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 정치적, 사회적 조건부 없이 투자와 차관이 제공되는 중국식 지원방식)’의 대결 구조로 귀결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반대 이유가 그러했을까? 답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지역개발은행이나 지역통화기금의 설립을 주도하는 국가가 미국의 우방일지언정 상관없이 모든 기구의 창설 제언에 우선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무조건적이고 우선적인 반대 입장은 지역금융기관 중 가장 오래전 세워졌던 미주개발은행(IADB, 1959년),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1964년)에서부터 독일과 프랑스 주도 하에 설립된 유럽부흥은행(EBRD, 1990년)과 일본이 제창한 아시아통화기금(AMF, 1998년)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이들 기관들의 설립 논의가 발의될 때 미국은 무조건 반대했고 그 이유는 항상 불명확했다. 미국은 처음부터 명확한 반대의 이유를 제시한 적이 없다. 그 때 그 때 사안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 중국이 미국의 참여를 요청하지만 이런 문제에서 미국과 합의를 보지 않으면 AIIB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중국 주도의 지역국제금융기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AIIB는 우리의 중견국 외교의 가장 큰 시험장이 될 것이다. /사진=KTV 캡처
미주개발은행의 설립을 반대한 미국의 이유는 지역에서 미국 세력에 대항하고자하는 신흥 독립 남미국가들이 세력을 집결하려는 의도로 인식한데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3년 뒤 참여의 당위성을 당시 남미지역에 확산되는 공산주의 세력을 대응하는데서 찾았다. 1964년에 설립된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에 대한 미국의 참여 반대의 입장은 은행의 지배구조가 IMF(국제통화기금)의 원칙에 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프리카 국가들이 초기에 비지역국가의 참여에 배타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은 1976년까지 이런 원칙 구조의 개선을 전제조건으로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다.

유럽부흥은행에 대한 미국의 우선 반대하는 입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6개월 만에 번복되었는데 그 이유는 구소련에 대한 차관의 제공 조건과 원칙이 미국의 주장대로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비민주주의 국가이며 시장경제도 아닌 구소련에 대한 차관이 공공부문(public sector)에 유입되는 것을 미국이 원칙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대신 민간부문(private sector)에 더 많은 차관이 할당되어야 ‘밑 빠진 독에 물 넣기’식은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수용된 원칙이 구소련과 동구국가에 대한 차관의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비율을 60:40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런 반대 입장이 AIIB 사례와 같이 미국의 행정부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주지하듯이 3권 분리가 철저하게 이뤄지는 나라다. 입법부,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한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고 정해져있다. 그리고 이들 간의 월권행위는 절대 용납이 안 되는 정치체제다. 이런 체제 하에서 미국의 외교는 철저하게 의회정치에 기초한다. 즉, 미국의 외교는 미국 의회의 재가를 전제한다. 미 의회의 재가 없이 행정부가 독립적으로 외교권을 행사할 수 없다. 특히 미국의 예산재정에서 출자가 요구되는 외교적 사안만큼은 미 의회의 비준과 통과가 반드시 있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금융기관의 발의에 즉각 동참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내재적 구조가 미국 외교에 존재한다. 미국이 그래서 우선 반대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예산 지원이 전제되는 국제금융기관의 설립과 같은 문제에서 미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동의나 동참의 의견을 표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미 행정부가 미 의회를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외교적 방편이다.

상기한 사례를 보면 미국의 지역금융기관의 참여 전제 조건은 결국 미 의회에서 결정된 지배 원칙이 관철되는 것과 이를 주도할 수 있게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미국의 리더십이 보장되는 것은 결국 미국이 최대 주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리더십과 미국의 원칙과 규칙의 수용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미국의 AIIB 가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미국의 참여를 요청하지만 이런 문제에서 미국과 합의를 보지 않으면 AIIB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중국 주도의 지역국제금융기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AIIB는 우리의 중견국 외교의 가장 큰 시험장이 될 것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