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원우 기자 |
‘성완종 게이트’가 너무도 굉장해서 충암고 급식사건은 이미 뒷전으로 밀려버린 듯하다. 급식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감 선생이 학생들에게 “꺼져” “먹지 마” 등의 막말을 했다는 충격적인 뉴스의 뒷이야기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놀랍도록 줄어들었다. 기자들이야 새로운 흥행거리를 찾아나서면 그만이다. 이렇게 편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전해주는 소식과 함께 세상은 돌아간다.
이 와중에 미련한 기자인 나는 미련한 공통점 하나를 찾아냈다. 충암고 급식사건과 성완종 게이트의 무게중심에 ‘경향신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글은 성완종 게이트에 대한 글도, 충암고 급식사건에 대한 글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둘 다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국 경향신문과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경향신문과 이완구, ‘목숨’을 흥정하다
현재의 핫이슈인 성완종 이슈부터 살펴보자. 2015년 4월 9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을 정도의 분주한 삶이었고, 이렇게 끝내야 하나 싶을 정도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문제는 그의 죽음이 많은 의혹을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그가 남긴 모호한 55글자 쪽지는 삽시간에 정국을 바람 앞 등불로 만들어 버렸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맞서던 이완구 국무총리는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사람들은 ‘삼국지연의’를 비틀어 “죽은 성완종이 산 이완구를 잡았다”고 술렁였지만 이것은 서막일 뿐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안다.
경향신문은 성완종 이슈에 대한 관심을 극대화시키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언론사다. 성완종 전 회장이 목숨을 던지던 바로 그날 새벽, 뭔가를 작심한 듯 비장했던 그를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사람이 바로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 이기수 기자였던 것이다. “사정당할 사람이 사정… 이완구가 사정 대상 1호”라고 하던 성완종의 발언이 바로 이 인터뷰에서 나왔다. 당시 성 전 회장이 가장 많이 언급한 인물도 이완구 국무총리였다고 한다.
경향신문의 단독 인터뷰는 엄청난 파장을 야기했다. 박근혜 정권, 나아가 여야 정치인들 상당수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특종’이 나온 셈이다. 경향신문은 21세기에는 더 이상 보기 힘들 거라 생각됐던 장면 - 대중들로 하여금 ‘내일 신문 1면 톱’을 궁금하게 만드는 진풍경을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경향신문의 특종은 타 언론사들의 어마어마한 시샘과 반발을 야기했다. 세상을 들썩이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뒤집을’ 수도 있는 특종이었기에 그렇다. 기자들의 99.9%가 이런 특종의 근처에도 닿지 못한 채 커리어를 마감한다. 그런 면에서 경향신문의 단독보도가 업계의 질투를 사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문제는 경향신문이 ‘승자’다운 면모를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랜만의 스포트라이트에 지나치게 고무되어 버린 걸까. 경향의 보도방식은 절대반지를 손에 넣고 균형 감각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사람처럼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경향신문은 첫 특종 이후 근 1주일 동안의 보도를 이미 고인이 된 성완종 전 회장의 녹취록 중심으로 배치했다. 이미 보도 첫날부터 정국을 휘저었던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새로운 내용이 공개될 때마다 독자들은 마치 연재소설의 뒷부분이 공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망자의 목소리를 이런 방식으로 이용해도 되는 것인지 묻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경향신문은 ‘산 자의 목숨’에 대해서도 위험한 승부를 걸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14일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발언하자 경향신문은 보란 듯이 15일자 1면 톱으로 <2013년 4월 4일 오후 4시30분 이완구 부여 선거사무소 성완종 측 “차에서 비타500 박스 꺼내 전달”>이라는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이 기사는 전날 이완구 총리의 발언에 대한 ‘응답’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경향신문이 정말로 그의 목숨을 요구하는 의미로 저 기사를 올리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자사의 특종을 ‘현직 국무총리 망신용’으로 사용하는 언론의 품위에 대해서는 준엄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목숨을 담보로 한 진실게임에 익숙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손석희에게 ‘한 방’ 먹은 경향신문
경향의 기세가 꺾인 것은 15일이다. 손석희가 보도부문 사장을 맡고 있는 JTBC ‘뉴스룸’이 성완종의 육성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경향신문의 ‘글자들’은 전날까지의 기세를 잃고 말았다. 이때부터 경향신문의 주타방(주요타격방향)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JTBC 쪽으로 변경되었다. 동종업계 내부의 혈투가 시작된 것이다.
자사의 특종을 ‘가로챈’ JTBC의 행태를 절도로 간주하는 경향신문과, “공익성이 있다고 판단해 보도했다”고 변명한 손석희의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경향의 ‘찔끔찔끔 보도’가 JTBC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소수의견도 있지만 사건의 개요를 알고 있는 대다수 대중들은 손석희에게 실망했다는 쪽이다.
이 국면 역시 새로운 것이다. 지금껏 그 어떤 논란과 사건 앞에서도 품격 있는 언론인 이미지를 놓치지 않았던 손석희가 이번만큼은 상당수 대중들의 외면을 받고 있기에 그렇다.
|
|
|
▲ 충암고 급식비 막말 논란. /사진=MBN 캡처 |
굳이 승패의 구도로 해석해 본다면 경향신문은 ‘졌지만 진 것이 아닌’ 게임을 치른 셈이 됐다. 그 누구도 균열을 내기 힘들었던 손석희 아성에 얼룩을 뿌린 당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이 ‘언론의 윤리’에 대해 아무리 기나긴 일장 훈수를 두더라도 사람들은 손석희 아닌 경향의 편에서 경향의 언론관을 두둔할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그럼 이제 진짜 질문을 던져 보자. 경향신문은 언론의 윤리성에 대해 말할 만큼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충암고 교감은 정말로 “꺼져”라고 말했나
이 시점에서 이미 과거의 핫이슈가 되어버린 충암고 교감 막말사건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굉장히 오래 전 사건 같지만 처음 논란이 불거진 건 지난 4월 6일. 이번에도 ‘특종’을 잡은 건 경향신문이었다.
송현숙 기자는 6일자 기사를 통해 서울 충암고등학교의 김모 교감이 4월 2일 복도에서 점심 급식을 기다리던 학생들 앞에 나타나 급식비를 못 낸 학생들에게 “내일부터는 오지 말라”고 다그쳤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이 기사는 김모 교감이 “넌 1학년 때부터 몇 백만 원을 안 냈어. 밥 먹지 마라” “꺼져라.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전체 애들이 피해본다”라는 말을 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이어진다.
급식비 때문에 교감이 학생에게 “꺼져”라고 말한 초유의 사태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이 분노한 건 당연했다. 특히나 무상급식에 대한 논쟁이 장기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불거진 이 사건은 논란의 축을 한쪽으로 이행시킬 수도 있을 정도로 부피가 커졌다.
김모 교감과 충암고는 여론의 십자포화를 얻어맞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교감이 학생들에게 했다는 ‘막말’에 있음은 물론이다.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급식비 납부 여부를 체크한 것만 해도 기분이 나쁜데 심지어 돈을 안 냈으면 꺼지라니? 이는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반대자들을 압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논리 - 선별적 무상급식이 학생들의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경향신문이 기정사실로 보도한 교감의 ‘막말’ 여부가 명확치 않다는 점이다. 해당 기사는 흡사 르포 형식으로 작성돼 있지만 송현숙 기자가 근거로 삼은 것은 ‘주변 학생들의 증언’뿐이었다. 교감과 학교 측은 사건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저렇게 원색적인 막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윤명화 학생인권옹호관을 충암고로 파견해 사태 파악에 나섰다.
경향신문의 문제점은 교육청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고 사실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충암고 교감이 ‘거짓말’을 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확언하듯 내보냈다는 점이다. 역시 송현숙 기자에 의해 작성된 경향신문 7일자 기사의 첫 문장은 “서울 충암고가 거짓말로 상황을 덮으려 하고 있다”고 아예 확정을 짓고 있다.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인데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기자는 무엇을 근거로 교감의 발언을 ‘거짓말’로 치부할 수 있었을까? 기사 내용에는 충암고 학부모와의 통화 내용이 있을 뿐 교감의 막말 여부가 확실하게 드러난 정황은 없었다. 이런 식의 ‘몰아가기 보도’는 과연 윤리적인가? 경향신문은 다음날인 8일에도 <충암고 교감 “막말 안 해”는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내보냈다.
그리고 지난 14일 송현숙 기자는 “서울 충암고 사태로 무상급식이 더 조명 받고 있다”는 내용으로 새로운 기사를 썼다.
사실과 진실이 어긋날 때
등산을 하다 보면 분명 산을 오르는 중인데도 내리막길이 나올 때가 있다. 이때 잠시 등장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해서 “지금 산에서 내려가는 길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fact)과 ‘산을 오르고 있다’는 진실(truth)이 불일치하는 순간이다.
언론인들의 몫이란 바로 이 사실과 진실의 균열을 봉합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스스로의 주장을 보강하기 위해 사실과 진실이 일치하지 않는 미묘한 순간을 교묘히 활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저 사람은 산에서 내려가고 있다”며 선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완종이 남기고 간 ‘사실’을 본인이 지향하는 ‘진실’로 끌고 가는 것. 충암고의 누군가가 막말을 들은 것 같더라는 불명확한 ‘사실’을 ‘진실’로 포장해 마구 주장하는 것. 이런 것들까지 가감 없이 수용하는 것을 과연 우리는 언론의 자유라 칭해야 할까. 기자들이 사실 그 자체보다 스스로의 주장과 신념에 더 충실한 ‘경향’이야말로 한국 언론의 현주소이자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이 글은 굿소사이어티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