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나광호 기자]상품 가격은 통상적으로 소비자들에 의해 결정되지만, 국내 기름값은 공급자가 좌지우지 한다는 인식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대부분의 주유소가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산업통상자원부가 담합 등을 감시하기 위한 감시단을 운영하는 것도 이같은 우려에 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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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광호 미디어펜 산업부 기자 |
그러나 국제유가가 오를 때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경유값이 빠르게 인상되고, 하락할 때 느리게 내려가는 것은 소비자들의 행태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기름값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는 최대한 먼저 주유하는 것이 유리하다. 내일 보다 오늘 기름을 넣는 것이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다수의 소비자들이 빠르게 주유소를 찾으면 사업장의 재고가 다량 소진되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기름을 들여오게 된다. 이같은 과정이 반복되면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제품값은 조기에 인상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반면, 기름값이 떨어질 때는 '존버'(이악물고 버틴다는 뜻의 신조어)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게 된다. 오늘 보다 내일 주유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고가의 제품이 팔리지 않고, 주유소 입장에서도 저장 용량 등의 이유로 가격이 인하된 제품을 도입하지 못하는 등 가격이 정체된다.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이 재고 손실을 감수하면서 유류세 인하분이 적용된 제품 공급에 나섰음에도 소비자들의 체감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현행법상 유류세는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시기가 아니라 제조장에서 반출할 때 부과되고, 정유공장을 출발한 휘발유·경유가 저유소를 거쳐 전국 사업장으로 도달하기까지 열흘 안팎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주유소들이 담합을 통해 가격을 결정한다는 주장도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담합을 깨뜨리는 가장 큰 요인은 내부자의 이탈로, 1만개에 달하는 주유소가 있는 우리 경제에서 '짜고치는 고스톱'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주유소의 80% 안팎은 개인사업자들이 운영하는 자영주유소다.
2009년 1만3070개였던 국내 주유소가 2019년까지 연평균 1.3%씩 감소하고, 지금도 1000곳 이상이 한계주유소로 분류되는 등 업황이 좋지 않다는 점도 담합을 가로막는 요소로 꼽힌다. '사슴사냥의 비유' 등에 따르면 생존의 위협에 내몰린 플레이어는 판을 깰 동인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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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도로 휴게소 셀프 주유소./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일명 '횡재세'(초과이윤세) 논란이 불거진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코로나19 등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을 때 석유수입부과금 철폐 및 원유관세 인하 등 업계의 요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던 정부가 조단위 영업이익에 대한 세금 부과를 검토하는 것은 이중적인 태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세금을 책정하기 위해서는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소비자를 상대로 폭리를 취했다는 근거가 필요하지만, 호실적이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이익을 토대로 시현됐다는 점에서 명분도 부족하다.
정부가 물가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아픔을 달래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를 비롯한 외부 요인에 의한 기름값 변동의 책임을 사업자들에게 돌리는 등 꼼수를 부리는 것보다는 유류세에 포함된 교육세 철폐 등 정공법을 채택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나은 솔루션이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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