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흉내내기·진출…문화와 예술 그리고 경쟁에 대해
예술에 있어서는 저마다의 취향과 해석이 있으므로 경쟁의 공정한 룰을 부르짖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면 예술인들은 경쟁을 악으로 규정할까? 오히려 경쟁이야말로 예술의 질을 높이고 예술가의 창작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예술인들이 뭉쳤다.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2015년 4월 27일 화요일 오후 2시, '예술인이 본 경쟁, 경쟁은 왜 아름다운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차라리 죽지 그래> 의 저자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미디어펜 이원우 기자, 조우석 문화평론가가 각자의 시선에서 예술 분야의 '경쟁'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고 시장경제제도연구소 김이석 소장과 경희대 경제학과 안재욱 교수가 발제문에 대해 코멘트 했다. 본 행사를 통해 수렴된 내용들은 올해 중 책으로도 발간될 예정이다.

아래는 이원우 기자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이원우 기자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변기를 미술관 안에 들여놓아 ‘작품’으로 승화시킨(혹은 우긴) 예는 현대 미술, 나아가 현대 예술의 중요한 한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이 모더니즘의 종식을 의미하든 모더니즘 ‘이후’를 의미하든 중요치 않다. 정답이 없는 세계, 확정이 없는 명제, 뭐 그런 것들이 전부 포스트모더니즘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당신을 제약할 수 없다. 우리는 ‘자유’다.

현대 예술의 중요한 패착은 이 ‘자유’의 비중을 너무 크다 잡은 나머지 ‘제한’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예술가(여기엔 대중예술가로 볼 수 있는 연예인도 포함된다)들에게는 어떤 제약도 걸어서는 안 된다는 신화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약이 적을수록 예술의 질이 올라간다는 인식은 현대 예술의 질적 빈곤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제약을 피하고자 하는 심리는 경쟁, 그리고 시장원리에 대한 예술가 및 예술 애호가들의 인식 또한 적대적으로 만들었다. 경쟁과 시장원리야말로 희소성과 불확실성의 지배를 받는 ‘제약의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다른 노력을 할 것 없이 시장원리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미켈란젤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 원리 ‘안’에서 활약했을 때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경쟁과 시장원리는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남이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언제나 후자의 손을 들어준다. 예술가들의 경우 경쟁에 반감을 갖는 이유는 남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본인의 예술적 순수성을 훼손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파고들기 시작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순수성이라는 건 뭘까. 정글에서 혼자 살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 중 누가 단어 그대로의 순수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순수하지 않은 인간이 순수를 표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선(僞善), 아니 위순(僞純)이 아닐까?

경쟁이야말로 위와 같은 형이상학적(이기만 할뿐 별로 의미는 없어 보이는) 고민들을 훨씬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바꿔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말은 무조건 베스트셀러만이 좋은 예술작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팔리지 않는 작품도 얼마든지 좋은 예술을 구현할 수 있다. 우선은 세상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살피기는 해보자는 의미다. 그걸 알아야 그 요구를 수용하든 기각하든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명실 공히 ‘국가산업’ 대접을 받고 있는 K팝의 성공은 경쟁에 대한 살아있는 사례로써 우리에게 통찰을 던져준다. 그리고 K팝이 보여주고 있는 놀라운 발전의 양상은 ‘ECG’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리고 경쟁은 이 ECG를 떠받치는 하나의 전제다.

K팝 진화의 ECG 법칙 ‘E’ : Endure

2015년 현재 K팝을 이끌어가는 3대 기획사로는 YG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가 꼽힌다. 그런데 이 세 기획사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세 회사 모두 그 수장이 연예인 출신(이수만, 박진영, 양현석)이라는 점이다.

비록 이들 회사의 실질적 경영이 전문 경영인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할지라도 세 회사의 공통점은 21세기의 K팝이 ‘음악밖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의 버티기(Endure)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는 점을 표상한다.

다른 길을 선택할 여지가 있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손을 털고 시장 밖으로 떠났다.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서 시장 차원의 정리해고는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이 과정에서 생존한 자들에게는 시련과 불황에 대처하는 내성(耐性)이 생겼다. 그리고 적자(適者)들끼리의 경쟁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 우리는 언제부터 한국 대중음악을 K팝이라고 불렀을까. ‘K’는 한국시장 안에서는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는 글자다. 즉, K팝이란 말은 ‘버티기(Endure)’와 ‘흉내 내기(Copy)’를 반복하며 입지를 다져온 한국 대중음악이 나라 밖으로 ‘진출(Go)’하면서부터 활성화된 용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K팝 진화의 ECG 법칙 ‘C’ : Copy

통상 어떤 K팝 아티스트가 새로운 노래를 녹음하기 전에는 기획사의 A&R(Artist & Repertoire) 파트 담당자들이 신곡의 콘셉트를 정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유행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레퍼런스’를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일이다.

일련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바라보면 ‘구조적 표절’이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다. K팝의 성공을 ‘거품’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자주 지적하는 문제도 바로 과도한 카피의 문제다. 타인의 성공을 그대로 베껴 본인의 것인 양 허장성세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는 물론 법적으로도 처벌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K팝 아티스트와 대중의 소통이 단독거래가 아닌 ‘반복거래’의 양상을 띤다는 사실이다.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서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해 무리한 카피를 하는 아티스트는 법적/도덕적 잣대에서부터 단죄 받을 수밖에 없다. 참고하되 베끼지 않는 것. 그 미묘한 중간지대의 어디쯤에서부터 K팝은 다양한 진화의 발판을 다져왔다. 표절 시비에 대한 ‘진정한’ 판정은 법원이 아닌 대중들이 하게 마련이다.

K팝 진화의 ECG 법칙 ‘G’ : Go

우리는 언제부터 한국 대중음악을 K팝이라고 불렀을까. ‘K’는 한국시장 안에서는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는 글자다. 즉, K팝이란 말은 ‘버티기(Endure)’와 ‘흉내 내기(Copy)’를 반복하며 입지를 다져온 한국 대중음악이 나라 밖으로 ‘진출(Go)’하면서부터 활성화된 용어다.

K팝의 해외진출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국내에서의 성공을 등에 업고서 자랑스럽게 진행된 형태가 아니라 국내에서의 입지가 좁아져 어쩔 수 없이 감행된 ‘강제진출’이었다는 사실이다. 비즈니스 의도 없이 ‘한국 대중음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외로 진출한 K팝 업계 종사자는 없었다.

K팝에게 해외에서의 명성이 필요했던 이유, K팝이 해외로 진출(Go)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생존’이 있다. K팝은 도저히 한국시장 안에서 자생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K팝은 ‘보다 잘 경쟁하기 위해’ 해외로 진출했다.

K팝은 정부를 포함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철저히 자생적 진화를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왔다. 절대적 위기 속에서 버티고(Endure), 성공사례를 흉내 내며(Copy), 생존을 위해 진출(Go)했던 것이다. 현재 K팝 시장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버티고, 베끼고, 해외로 진출한 이유는 결국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정부가 아무런 규제도 지원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K팝 시장이 무주공산에 무법지대였다는 말은 아니다. 경쟁이라는 ‘보이지 않는 제한’이야말로 이 시장에 긴장감과 절박함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 경쟁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K팝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