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사드’ 문제에 ‘칩4’까지 뇌관을 안고 시작한 한중 외교장관회담이 끝나자마자 한중관계가 미중갈등의 후폭풍에 휩싸인 형국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박진 외교부 장관이 칭다오를 떠나자 ‘사드 3불 1한’을 지켜야 한다고 언급해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압박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9일 마주한 테이블에는 한중 간 오랜 갈등 요인인 한반도 사드 배치,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인 ‘칩4’(Chip4 또는 Fab4)에 한국 참여, 북한 비핵화 문제가 올랐다.
외교부에 따르면, 칩4 문제에 대해선 중국이 우려 섞인 입장보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회담에서 한국의 칩4 예비회담 참여를 통보했고, 실제로 왕이 부장이 공개된 회담 모두발언에서 “적절하게 판단해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적절한’이란 표현에 압박이 담겨 있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중국은 일단 한국의 역할을 이용해보겠다는 판단으로 강경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장관은 한국이 칩4에 참여해서 중국이 우려하는 특정국가 배제 등이 없도록 가교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선 오히려 사드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의견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장관은 문재인정부에서 나온 ‘사드 3불’과 관련해 합의나 약속이 아니므로 현 정부에게 구속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이 나오기까지 중국측의 ‘3불’에 대한 이행 압박이 상당했을 것이란 관측이 가능하다.
결국 한중 양측은 사드 문제가 양국 관계발전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된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논의를 끝낸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박 장관은 ‘3불’ 얘기가 자꾸 거론될수록 한중 양쪽 모두 손해라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중이 공감한 ‘걸림돌’을 놓고 양측의 입장차는 전혀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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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일 중국 산동성 칭다오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갖기 위해 만나 인사하고 있다. 2022.8.9./사진=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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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외교부가 박진 장관의 출국 직후 한국이 ‘사드 3불 1한’을 선서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사드 추가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3자 군사동맹 불가를 의미하는 ‘3불’에다 이미 있는 사드의 운용을 제한한다는 의미의 ‘1한’을 중국정부가 공식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당초 중국은 ‘3불 1한’에 대해 한국이 ‘선서’했다고 표현했다가 다소 수위를 낮춘 ‘선시’로 고쳐서 언급하기도 했다.
즉각 윤석열정부는 “사드 문제는 안보주권과 관련된 사안이므로 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중국측이 ‘선서’를 ‘선시’로 고쳐 표현한 것도 외교채널을 통해 소통한 결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에 중국은 한국의 현 정부에 이전 정부가 약속한 사항을 이행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가 된 ‘1한’은 2017년에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우리는 한중 간 사드 문제가 봉인됐다는 입장으로 그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방중에 초점을 맞췄지만 중국은 사드 합의 이행을 집요하게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중국 환구시보가 ‘사드 3불 1한’을 언급했다.
당시 중국은 우리측에 ‘사드 레이더 안 중국측 차단벽 설치’나 ‘사드에 대한 기술적 설명’ 및 ‘경북 성주기지 현지조사’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외교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정한 일도 있다. 이번에도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성주 사드 포대 레이더 위치가 중국을 향하면 바로 앞에 산이 있어서 차폐되므로 물리적으로 (중국을 겨냥해) 운용할 수 없는 위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사드 운용 권한을 주한미군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불신을 해소하지 않고 있고, 미중갈등이 격화할수록 사드 문제는 한중관계에서 뇌관으로 남을 전망이다. 중국은 12일에도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지만 미국이 한국에 배치한 사드는 중국의 전략안보를 해치므로 좌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과 장외설전을 이어갔다.
베단트 파텔 미국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12일 “사드는 신중하고 제한적인 자위적 방어역량으로 북한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며 “이와 관련해 한국에 자위방어력을 버리라는 비판이나 압박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같은 날 중국 관영 영자신문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이 한중 간 사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은 미국 압력 때문에 국익을 희생하면 안된다”고 보도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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