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본부를 보건복지부 산하의 기금운용공사로 개편해 복지부 산하에 둔다는 국민연금운용의 ‘공사화’가 박근혜정부에서 추진 중이다. 관련 정책토론회가 4월30일이 아닌 5월22일로 돌연 연기된 가운데 보건복지부의 ‘공사화’ 복안은 기금을 효율적으로 굴려 수익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권·공무원으로부터 기금운용공사의 독립성 확보가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다. 법으로 정치적 개입소지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쌈짓돈이다. 국민세대 간의 상호부조에 따라 마련되고 지출되는 국민의 돈이다. 이를 정부․정치권이 안정성, 수익성이라는 명분으로 자신들이 관리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위원회 조차도 전문성 부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고 국민연금기금이 의결권 행사나 배당확대 요구 등 정부의 입김에서 이미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다양한 개편방안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노후보장을 위한 국민연금 기금운용체제 개편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아래 글은 지난 27일 개최된 바른사회 주최의 ‘국민연금기금 운용체제 개편방안’ 토론회에서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 발표한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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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과정에서 명심해야 할 몇가지 원칙들
정부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를 보건복지부 산하의 공사(公社)로 개편하는 방안을 다시 추진중이라고 한다. 500조원의 자산을 관리하는 거대한 공룡조직을 독립적인 공사 체제로 바꾸면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도 확 바꾸는 방안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겸하고 노사쪽 위원 3명씩 등 모두 20명이나 되는 현행 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가 중심의 9명(정부 인사 2명, 민간전문가 7명)으로 줄이되 장관급의 상근직 위원장을 따로 둔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정부는 4월 30일 공청회를 거친뒤 개편 방안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이어 관련 법개정안을 국회에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편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해묵은 것이다. 2008년에도 정부안이 발의됐으나 18대 국회의 임기가 종료되면서 법안이 자동 폐기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7월에서 이번 개편안과 거의 유사한 정부안이 나온 적 있다. 개편 논의의 배경과 명분은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다. 기금 규모의 거대화에 따른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 제고다. 본격화된 초저금리 시대에 운용 수익률을 높이자는 현실론도 올해 개편논의에 덧보태졌을 것이다.
갈수록 비대해지는 국민연금을 그간의 방식대로 계속 운용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적자를 넘어 기금고갈(2060년)까지 예고돼 있지만 2034년에는 2561조원이 될 정도로 기금의 규모는 일단 급속도록 커지게 돼 있다. 더구나 뚝뚝 떨어지는 수익률은 당장의 현안이다. 2010년 10.37%에서 지난해는 5.25%로 급락했다. 저성장, 저금리가 세계적인 추세라지만 지난해 캐나다연금과 네덜란드연금은 각각 16.5%, 14.5%씩 수익률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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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공단이 서울에서 전주로 자리를 옮긴다. 국민연금공단 본부는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 중심의 밝은 미래를 열어간다”를 모토로 삼고 있다. /사진=국민연금공단 |
그렇다면 공사 체제로 외형만 바꾼다고 전문성과 독립성이 강화되고 수익률도 절로 올라갈 것인가. 그간 국민연금 지배구조를 둘러싼 정부주도의 논의를 돌아볼 때 개편 논의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가령 최대 이슈격인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산업계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의 반대에다 심지어 국민연금 내부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다음 달 심의안건에 또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이미 몇차례 상정된 안건이었으나 찬반 양론이 뒤섞혀 결론이 나지 못한 사안인데, 집요하다.
지금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과정에서 국민연금 운용의 효율성, 전문성,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 원칙부터 재확인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은 사회문제가 아니라 국민들 노후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연금의 주인인 국민들 전체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구조에서 몇몇 대리인들의 주주권행사는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전국 연금가입자 총회 같은 것을 열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민연금의 최광 이사장 같은 전문가도 연금사회주의는 단연코 배척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정부정책의 도구로 연금기금이 마구 동원되어서도 안된다. 이점도 중요하다. 공사로 되는 순간 자리는 복지부가, 운용에는 기획재정부 개입할 여지가 매우 높아진다. 안 그래도 재정지출 수요는 높아지는데 반해 재원은 매우 취약하다. 한마디로 돈이 부족하다. 재정이 취약할수록 5년 단임의 정부들은 어떻게든 국민연금을 쌈짓돈마냥 끌어다 쓰려고 할 것이다. 포퓰리즘 정책에 국민들의 노후가 흔들리게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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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노후보장을 위한 국민연금 기금운용체제 개편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진은 지난 27일 개최된 바른사회 주최의 ‘국민연금기금 운용체제 개편방안’ 토론회의 전경이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바른사회시민회의 |
운용의 전문성 못지않게 투명성도 과제다. 경쟁체제나 민영화가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결국 통제가 잘 안되는 공룡을 만들면 독립성을 지향하는 공사라 해도 자칫 정권의 전위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업에 배당을 늘리라는 식의 압력을 넘어 이사선임 등 인사에도 본격 간섭하게 될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버틸 기업이 없다.
또 이사선임에 관연 기준 등을 만들어 버리면 그것이 규준이 되고 근거가 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국민연금까지 정치판으로 만들어 국민들 미래의 생명선을 망치게 할 수는 없다. 지배구조 개편에 신중해야 한다. 많은 공사들이 결과적으로 그렇게 악용되고 동원됐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