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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일 경제진화연구회 청년위원 |
4.29재보선은 새누리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인터넷 여론과 실제여론이 이렇게 다른 줄 몰랐어요” 한 진보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댓글이다.
우리 주위의 친구들, 직장 동료들 등등만 봐도 진보성향의 사람들은 쉽게 눈에 보인다. 성향을 드러내는데 적극적이고 동조하는 사람도 많아 보인다. 거리는 연일 박근혜 퇴진 전단지가 뿌려지고, 현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가 이어진다.
세월호 문제는 일 년 내내 현 정권을 공격하고 있다. 포털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만 보면 지금 당장 혁명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름 있다는 공인과 연예인들도 경쟁적으로 진보적 발언을 하면서 깨시민 혹은 개념인 칭호를 받는다. 언론도 영향력을 상실해가는 종이신문을 제외하면 대부분 진보성향 뉴스로 도배된다.
어쩌다 보수성향이 등장하지만 대부분 거센 비난을 받기 쉽다. 국민사위였던 함익병은 박정희 정권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방송에서 하차해야 했다. 김정태는 새누리당 후보의 유세현장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방송을 떠나야했다. 한 판사는 인터넷에 올린 댓글을 이유로 정치편향이라며 직장을 빼앗고 향후 재취업마저 차단하라고 극성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가카빅엿‘이라며 비난한 판사가 개념판사란 칭호를 얻고 국회의원까지 진출한 것과 정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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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대리기사폭행에 연루되고 세월호 추모행사는 폭력집회로 변질되면서 밑바닥 민심은 진보를 표방한 새정치민주연합에 피로감을 느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거부감은 침묵하는 다수를 투표소에 나가게 했다. /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
성향은 이미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으로 취급받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필자 주변에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은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냉가슴만 앓는다고 말한다. 침묵의 나선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상대의 의견이 다수라고 여기면 소수의 사람들은 고립에 대한 공포로 침묵하려 한다. 그럴수록 진보대세론은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4:0이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듯 선거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패다. 절대다수인 것처럼 보였던 그들이 막상 표를 까면서 추풍낙엽처럼 무너졌다.
필자는 그 원인을 몸집 불린 복어에 비유하고 싶다. 복어는 자신이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공기를 넣어 몸을 부풀린다. 몸집이 크면 적이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간파당하는 꼼짝없이 먹이가 되고 만다. 진보의 몸집 부풀리기는 대중에게 간파당한 것이다.
이런 선거결과는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도, 2014년의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도 세간의 목소리는 진보일색이었다. 정치전문가들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의 승리를 예견했다. 그러나 결과는 늘 여당 새누리당의 승리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이제 사람들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거대한 대세가 한낱 몸짓 불린 복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사직했다. 그리고 자신 있게 NO를 말하기 시작했다. ‘일베’ 현상은 그런 반작용이다.
진보 대세론에 근거한 여론 주도는 한계에 부딪혔다. 새정치민주연합 친노계파 등 진보 특유의 강경노선은 참여자들의 집회, 시위, SNS활동 등 일당백의 움직임으로 사회 내에 다수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런 대세가 밴드왜건 효과를 일으켜 중간지대의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해 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전략은 독으로 작용했다. 대중들에게 자신이 다수인 것처럼 부풀리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런 몸집에 스스로가 먼저 속아버렸다. 자기편 집단의 결속력이 강해질수록 기존 신념을 강화시키며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런 모습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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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9재보선은 승리한 새누리당, 패배한 새정치민주연합 등 여야 모두에게 과제를 남겼다. 각자 어부지리, 자업자득이지만 이제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 삶과 기업 현실에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다. /사진=연합뉴스 |
진보의 도덕적 우월감은 대중을 계몽대상으로 여기게 하고 대의를 위해 공동체쯤은 잠시 파괴해도 좋다고 여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파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대리기사폭행에 연루되고 세월호 추모행사는 폭력집회로 변질되면서 밑바닥 민심은 진보에 피로감을 느꼈다. 새정치민주연합이든 세월호 시위를 지지하는 자들이든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거부감은 침묵하는 다수를 투표소에 나가게 했다.
한총련의 몰락의 골든크로스가 된 1996년 연세대 폭력사태를 우리는 기억한다. 학교를 점거한 2만 명 학생들이 폭력, 살인, 방화를 일으켰고 대중들은 경악했다. 평범한 대학생들을 그렇게 만든 건 서로 생각이 같은 집단이 모였을 때 오는 내부 동질성이 만들어낸 극단화였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보수정당 리쿠르당은 총선 직전까지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야권에 뒤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리쿠르당의 압승이었다.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역시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큰 표차로 부결됐다. 보수결집이 승리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새정치민주연합 진보진영의 움직임에 침묵한 나선효과다.
투표는 가장 낮은 수준의 정치참여다. 침묵하는 사람도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하는 사람도 투표권은 하나다. 투표는 평범한 시민이 그들과 대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런 선거에서 침묵하는 다수는 그들의 선전에 휩쓸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어제도 오늘도 돌아오는 다음 주말도 광화문에서는 세월호특별법, 임금인상 등을 놓고 그들의 다양한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는 절대다수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대중이 그들의 실체를 간파한 지금 더 이상 민주주의의 왜곡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조성일 경제진화연구회 청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