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중남미 4개국 순방 강행 후유증으로 위경련과 인두염에 시달리던 박근혜 대통령이 딱 일주일만에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해 “기대 이하”라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 시한을 지킨 것을 의미가 있지만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못 박았다.

이어 여야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 합의한데 대해서는 “국민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 나기 때문에 반드시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문제”라며 “해당 부처와도 신중하게 논의한 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대 이하 공무원연금개혁은 물론 국민적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여야가 국민연금과 연계한 것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박근혜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공무원연금 개혁이 당초 기대치보다 훨씬 밑도는 수준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국민연금을 연관 지은 것에 대한 불쾌감을 동시에 드러낸 것이다.

여야가 공무원연금개혁 과정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폭과 시기까지 합의한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은 “국민연금은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임을 지적한 것으로 향후 당·청간의 냉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여야가 합의함에 따라 6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별 무리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여 남은 것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이 기대에 못 미치고 국민연금까지 끌어들인 것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지만 여야 합의로 이루어진 결과물을 쉽게 ‘퇴짜’를 놓을 수는 없는 모양새여서 그만큼 박 대통령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공무원연연금 개혁안을 놓고 여야 당내뿐 아니라 시민단체·전문가들도 기대이하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여당은 야당의 눈치만 보고 야당은 노조 등 공무원 단체의 눈치만 보며 합의시한에 쫓겨 나라 걱정은 외면하고 국민부담만 되레 늘렸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빌미로 국민연금에 손을 댄 것은 본래의 목적을 벗어난 것”이라며 “합의를 위한 합의일 뿐 국가의 미래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평가절하했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은 2000만명 이상이 가입한 국민연금을 개편하면서 공론화 과정은 고사하고 관계부처와 합의도 하지 않은 것은 “공무원노조가 자신들의 연금 삭감을 막기 위해 ‘공적연금 강화’라는 방패막이를 내세운 꼼수에 정치권이 제대로 걸려든 꼴”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은 현재 9%인 보험료를 두배 수준인 18%로 올려야 가능하다”며 “보험료를 두배로 올릴 자신이 있느냐. 그렇게 하지 못하면 포퓰리즘이 된다”고 강하게 우려감을 나타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여야의 졸속합의라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박 대통령과 그간 온기류가 형성되던 당·청관계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박 대통령은 중남미 방문에 앞서 성완종 리스트로 들끓던 정국 안정을 위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긴급회동을 가지며 당·청관계에 온기류가 흘렀다. 더구나 4·29재보궐선거의 승리로 정국 안정과 개혁 드라이브가 힘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4·29재보선은 정국의 주도권을 더욱 공고히 해 주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공무원연금개혁 졸속처리로 정국은 또다시 냉기류속으로 빠져 들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끓어오르는 여론의 부담과 함께 향후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개혁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악의 씨’를 뿌린 것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