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최준선 교수 |
'독점은 시장경제에 해롭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의 책 '제로 투 원(ZERO to ONE)’이 지난 2월 한국에도 소개되고, 그 저자 피터 씨엘(Peter Thiel) 팰런티어테크놀로지 회장이 한국을 방문하여 그 책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선물하였다고 한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비결은 각자의 독특한 문제를 해결해 독점을 구축한 것이다. 씨엘 회장은 이를 '창조적 독점’으로 정의했다.
결국 자기 분야에서 너무 뛰어나 다른 기업들이 감히 유사한 제품조차 내놓지 못하는 것이 창조적 독점이다. “자신만의 것을 가져라.” “Competition is for losers.”(경쟁은 패배자를 위한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 책은 '독점은 시장경제에 해롭다’는 통념을 반박함으로써 독점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학계, 경제계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에게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기업의 입장에서 경쟁을 한다는 것은 일정한 파이를 이미 먹고 있는 무리 가운데서 더 먹겠다고 덤비는 것이거나, 나도 먹겠다고 새로이 뛰어 드는 것이다. 당연히 기존의 포식자들은 싫어한다. 이 책은 그러한 세상에서의 생존법을 알려 준다. 그 파이를 버리고 스스로 새로운 파이를 만들어 혼자만 먹는 법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먹고 싶어도 먹는 방법을 모르고 포크와 나이프 같은 도구가 없어서 뻔히 보고서도 먹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김승욱 교수님의 발제문에서 보듯이 역사적으로 위대한 기업가는 모두 창조적 독점을 함으로써 거대한 부를 일으켰다.
이 책은 기업가의 입장에서 쓴 책이다. 소비자에게도 이 책의 내용이 맞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기회가 제공되면 다양성을 즐길 수 있고 가격도 낮아지므로 일석이조이다. 과거 한국 국적기는 대한항공 뿐이어서 그 항공사만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아시아나 항공사가 신규로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서비스가 향상되고 항공여행 자체가 더욱 안전하게 되었다. 독점은 나쁘고 경쟁이 좋은 이유이다. 씨엘이 말하는 독점은 그것이 창조적 독점이라는 미사여구를 붙이더라도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제품과 서비스가 형편없더라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이것을 좋아할 소비자는 아무도 없다. 이와 같이 독점은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고, 보는 관점에 따라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될 수 있다.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합병에 대한 공정위의 승인거부
피아노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부도발생, 노사갈등의 극심, 회사정리절차개시 및 상장폐지우려 등으로 영창악기(주)는 2004년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하였다. 이에 구원투수로 나선 삼익악기(주)는 영창악기(주)의 지분 약 49%를 2004. 3. 매입하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합병신고를 완료하였다. 합병은 신고만 하면 되고 사후 심사를 한다.
그러나 2004. 9. 9. 공정거래위원회는 양 회사의 합병이 이루어지면 삼익악기가 국내 피아노시장의 92%(75%가 경쟁제한성 인정 추정기준)를 점유하여 독점체제가 구축된다는 이유로 합병을 불허하면서, 삼익악기가 이미 인수한 영창악기의 지분과 핵심설비를 전부 매각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러한 처분명령 결과, 삼익악기는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고, 최소한 약 250억 원의 손실을 보고 매각하였으며, 영창악기는 2004. 9. 20. 최종 부도처리되었고 이어 회사정리절차개시결정, 상장폐지되었다.
영창악기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대략 1년 후, 악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현대산업 개발 컨소시움이 현대산업개발, 리딩투자증권, 우리은행 등과 함께 영창악기의 지분을 인수하여 영창뮤직(주)로 새출발하였다. 공정위가 원하던 경쟁체제를 드디어 이루었고 공정위의 고집은 관철되었다.
삼익악기의 제소에 대한 대법원의 원고 패소 판결
삼익악기는 이 사건 기업결합은 정당한 기업결합임을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합병불허처분과 주식매각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2008년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원고 패소 판결을 하였다.
여기서 법원의 판결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원이 원고인 삼익악기에 대하여 패소판결을 내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합병 후 삼익악기의 시장점유율이 92%가 되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경쟁을 제한하고 (독점기업이 되어) 소비자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피아노는 소비재가 아닌 내구재인 점, 중고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점, 해외의 경쟁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결합 후 단순 신상품시장만을 고려한 계산한 것이 아닌가. 삼익악기와 영창악기 외에도 국내에는 이미 뵈젠도르퍼(Bösendorfer), 슈타인바하(Steinbach), 야마하(Yamaha), 슈타인웨이(Steinway & Sons), 백슈타인(Bechstein) 등 기라성(綺羅星) 같은 피아노 브랜드가 경쟁하고 있다.
국내 두 기업의 합병이 세계 시장의 점유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국내 모든 소비자가 두 회사 중 하나만을 선택할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아래 판단한 것이 아닌가. 독점문제는 이제 국제적, 거시점 관점에서 관찰하여야 한다.
둘째, '효율성 증대효과’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기업결합이 인정된다. 그러나 법원은 생산·판매·연구개발 등 생산적 효율성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사건 기업결합으로 '효율성 증대효과’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시장이 작은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경제 전체의 측면에서의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중요한데, 법원이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영창악기는 품질의 고급화를 위하여 부단한 투자를 하였고, 삼익악기는 대중적인 악기를 생산하였다. 두 회사가 합병하였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며, 위대한 강소기업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 기업의 합병으로 '효율성 증대효과’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 수긍하기 어렵다.
셋째,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은 기업결합을 허용하나, 영창악기는 회생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투자협상이 있었으며, 유상증자 시도가 있었고, IMF 외환위기 때도 당당히 재기한 바 있으며, 외부 평가기관도 회생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보고서를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투자협상, 유상증자의 시도, 타기업으로부터의 인수시도, 과거의 회생경험 등은 회생가능성을 판단할 아무런 근거가 되지 못한다.
회생가능성 여부는 그 기업의 경영자가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 어떤 기업이 매물로 나올 경우 실력도 없는 기업이 인수제안서를 내고 덤비는 경우도 많다. 우리도 어떤 시도를 한다는 것을 증권시장에 公示하여 허세를 부리고 투자자를 속이기 위한 과시적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용역을 받은 외부기관의 평가는 많은 경우 발주자가 원하는 내용으로 맞추어 주는 경우가 흔히 있으므로 정확성이 담보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 주었다.
|
|
|
▲ 삼성그룹한화그룹의 빅딜은 두 그룹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은 셈이다. 중복투자와 과잉경쟁으로 점철된 한국 경제는 이제 좁아진 세계시장에 대비해야 한다.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성장엔진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사진=MTV 캡처 |
그 후의 발전 - 영창뮤직은 어디로?
삼익악기와 경쟁체제를 구축한 영창뮤직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나? 공정위의 판단은 소비자에게 얼마나 큰 혜택을 주었나를 이제 검증하여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대산업개발이 2006년 영창개발을 인수한 뒤 현대산업개발은 계속 지금을 빌려주고 있다고 한다.
영창뮤직은 2012년 50억원대 유상증자로 긴급 자금을 수혈하였지만, 그 후 2년 연속 75억원대 자금을 차입하였다. 금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창뮤직은 당기순손실이 2012년 -86억3411만1698원, 2013년 –117억8341만2777원에 달하는 등 4년 연속 적자행진을 이어갔다. 그리고 2014년 이후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2014년에 이미 전망되었다.
현재 2015년 1분기가 지났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밑빠진 독’ 악기제조사에 물려 … 錢錢긍긍”이라는 기사가 떴다.
이 기사에서는 “영창뮤직 결손금만 400억 … 완전자본잠식 위기”, “계열주주사 출자금 470억 外 수시로 자금대여”라고 쓰고 있다. 이와 같이 부실기업에 계열사가 계속 자금을 대여하면 자금을 대여한 회사의 경영자가 배임죄에 걸릴 위험도 있다. 기사를 좀 더 인용하자면, “정몽규(53) 회장의 현대산업개발그룹이 주력 사업과는 다소 생뚱맞은 악기 제조사에 물려 낑낑대고 있다.
8년여 전(前)에 인수한 영창뮤직이 2009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적자를 내며 곳간이 비어가는 탓에 주력사인 현대산업개발을 비롯해 돈 좀 있다 싶은 계열사들이 번갈아가며 돈을 대줘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6일 현대산업개발그룹에 따르면 아이서비스는 지난 15일 만기 6개월의 단기자금 30억원을 관계사 영창뮤직에 대여해줬다. 영창뮤직의 재무구조가 갈수록 처참해지고 있어서다.
현대산업개발그룹은 현대산업개발 82.6%, IT 계열사 아이콘트롤스 6.0% 등 현재 영창뮤직 지분 88.6%(9925만1303주)를 보유중이다. 하지만 피아노를 주력으로 전자악기, 관현악기 등을 만드는 영창뮤직의 매출(연결 기준)은 2010~2013년 600억원대 초반에서 정체돼 있다. 특히 순이익은 2007~2008년 잠시 흑자를 냈을 뿐 2009년 이후 많게는 160억원, 적어도 129억원 예외없이 매년 적자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에도 별반 나아지지 않아 1~9월 매출이 454억원에 머물고 순익 적자가 96억원에 이른다. 작년 9월 말에 이르러서는 그간 적자로 쌓인 결손금이 403억원에 이르며 자본잠식비율 96.9%(자본금 560억원·자본총계 17억원)에 달하고 있는 것. 자기자본은 매년 쪼끄라드는 반면 총차입금은 357억원(총부채 897억원)이나 돼 부채비율은 5,146%에 달한다.”
반면에 삼익악기는 2014년 1분기 실적을 보면 내수는 부진하지만 중국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성장했으며, 이 기간 영업이익은 9.5% 증가해 51억원, 당기순이익은 96.1% 증가해 53 억원을 달성했다고 한다.
공정위와 법원의 판단과 고집대로 경쟁체제는 갖추어졌고 공정위가 말하는 정의는 실현되었으나, 그 결과는 신성우 기자의 말대로 처참한 지경이다. 영창악기를 인수한 영창뮤직이 언제쯤에나 차입경영에서 벗어나 홀로 설 수 있을지 기대된다. 공정위와 법원의 판단이 결과적으로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면 좋겠다.
삼성그룹과 한화그룹 간 '빅딜’
잘 알려진 것과 같이 2014년 11월 삼성그룹과 한화그룹 간 '빅딜’이 있었다. 삼성그룹이 방위산업체인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석유화학 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매각했다. 매각규모는 1조 9천억원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그룹 간 빅딜이다. 숭실대 조성봉 교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삼성과 한화의 빅딜은 각 그룹이 특화하고 있는 전문분야에 집중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화그룹은 이번 빅딜을 계기로 이미 자리잡은 방위산업과 석유화학 분야에서 강력한 독점의 지위를 갖게 될 것이다. 한화그룹은 이미 방위산업에서 유도무기, 항법장치, 탄약 등을 생산하고 있는데 여기에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가 합류하면 K-9 자주포, 경공격기 FA-50 엔진과 레이더, 해상시스템 등 육·해·공군의 거의 모든 무기체계를 확보하게 돼 국내 방위산업 분야 선두주자로 도약하게 된다.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LG, SK, 롯데 등을 앞서면서 18조원 매출규모로 국내 1위에 오르게 된다. 한화그룹은 필름, 파이프, 비닐 등의 주원료인 폴리에틸렌(PE), 폴리염화비닐(PVC) 등을 생산했으나 향후 제품군이 폴리프로필렌, 파라자일렌, 스티렌모노머 등으로 다양화되고 에틸렌 생산능력도 세계 9위 수준인 291만톤으로 늘어난다.
삼성그룹은 지난 번 삼성코닝 매각에 이어 전자와 금융이라는 핵심부문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두 그룹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은 셈이다.
중복투자와 과잉경쟁으로 점철된 한국 경제는 이제 좁아진 세계시장에 대비해야 한다.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성장엔진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선단식 경영이라고 비판받아온 재벌그룹들이 자발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각자 경쟁력을 최적화하는 선택을 한 것은 산업경쟁력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성봉 교수의 위의 지적은 참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삼성과 한화의 빅딜은 노조 문제 외에도 독과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한국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독점규제법)의 목표는 동법률 제1조에 열거되어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금지, 경제력집중금지, 부당한 공동행위금지 및 불공정거래행위금지이다.
경제력 집중금지는 삼성과 한화를 포함하는 30대 기업그룹을 대상으로 한다. 그만큼 기업그룹의 기업인수 및 합병 등의 행위는 엄밀한 감시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법 제12조는 기업결합의 신고를 규정하고 있으며, 공정위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또한 동법 제7조에 따르면 기업결합을 제한하는데, 제1항 제4호는 다른 회사의 영업의 전부 또는 주요부분의 양수, 임차 등이 금지되며, 시장점유율의 합계가 당해거래분야에서 제1위일 때는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추정한다(동조 제4항).
다만, 공정위는 2015년 3월 5일 한화케미칼․한화에너지가 삼성종합화학을 공동 인수함으로 인해 한화는 (앞서 본 삼익악기의 경우와 비슷하게) EVA 68%로 공정거래 독과점 기준을 상회하므로,
▷EVA 국내 가격 인상률을 수출 가격 인상률 이하로 제한
▷EVA 국내 가격 인하율을 수출 가격 인하율 이상으로 제한
▷반기별 시정명령 이행 결과 보고서를 제출 등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부 승인을 하였다.
한화가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등 방산업체를 인수하려면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2월 승인결정을 내렸다. 이와 같은 조건부 승인으로 공정거래법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 영창뮤직에서 보여 준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남은 문제는 M&A에 따른 과세문제가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M&A는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며 성장동력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M&A 시장을 70조원대로 키우겠다는 계획을하고 있다.
그런데 영업권 과세는 사실은 미실현 이익에 대한 세금부과이다.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장석조)가 2015년 4월 3일 2007~2010년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발생한 회계상 영업권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한 것은 타당한 판결이다.
다만, 이 판결은 2007~2010년에 이뤄진 M&A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2010년 세법 개정 이후 이뤄진 M&A에 대해서는 회계상 영업권이 여전히 과세 대상이다. 논리에도 맞지 않는 무리한 과세로 M&A시장을 실질적으로 규제하여 M&A시장을 키우려는 정부의 비전과 업계의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세법규정은 조속히 재개정되어야 한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