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력정책 시행규칙에 대남·비군사 상황·선제공격 포함
“4.25 핵 독트린 현실화 수순” “핵보유국으로서 담판 준비”
김정은 부부 9.9절 경축행사 참석…에어쇼·불꽃놀이 진행
[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최고인민회의에서 밝힌 핵무력정책 법제화는 기존 핵보유국 주장에서 실체적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핵사용 조건을 담은 세부조항을 보면 우선적으로 주한미군과 남한을 겨냥했다. 아울러 북한은 비핵화협상에 나서는 것 자체를 법 위반 행위로 만들었다. 미국과 핵보유국으로서 새로운 담판 구도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정권수립일(9.9절) 직전인 7~8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마지막 날 김 총비서는 시정연설에 나섰다. 그는 “미국이 우리를 ‘악마화’하기 위해 여론을 퍼트린다. 미국이 노리는 것은 우리정권을 붕괴시키려는 것”이라면서 “절대로 먼저 핵포기, 비핵화는 없다. 만약 우리 핵정책을 바꾸려면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 주목할 것은 북한의 핵무력정책 시행규칙이다. 6번째 조항 ‘핵무기 사용조건’에서 ▲북한에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상무기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될 때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핵 및 비핵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될 때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할 때 ▲유사 시 전쟁 확대 및 장기화를 막고 전쟁 주도권 장악을 위한 작전상 필요할 때 ▲기타 국가 존립과 인민 생명안전에 파국적 위기가 초래될 때로 규정하고 있다.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9일 밤 평양 만수대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정권수립기념일 74주년 경축행사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2022.9.9./사진=뉴스1

사실상 모든 환경에서 핵을 사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으로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항일 빨치산) 창건 90돌 경축 열병식 연설에서 직접 밝힌 ‘4.25 핵 독트린’이 현실화되고 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이 헌법상 핵보유국임을 천명했던 선언적 법규범 체계를 넘어 실체적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변화이자 핵사용 문턱을 낮추는 시도”라면서 “미국 본토를 향한 전략핵보다 주한미군과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한층 구체화하고 강화해 지난 4.25 핵 독트린이 현실화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핵 법령 내용은 핵보유국 중 가장 급진적이고 공세적 핵전략을 표출한다”며 “핵사용 결정권이 국무위원장 1인에 있고, 비군사적 상황을 포함해 사실상 모든 환경에서 핵을 사용할 수 있고, 선제공격을 포함했고, 한국을 겨냥한 핵사용 가능성을 명확히 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또 “북한의 정치적 의도는 비핵화는 더 이상 수용 불가능하고, 비핵화 수용 불가 즉, 비핵화협상에 나서는 것 자체를 법 위반 행위로 만들어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담판을 준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북한 노동신문이 10일 정권수립일(9월9일) 74돌을 맞아 청년 학생들의 야회 및 축포 발사가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2022.9.10./사진=뉴스1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비핵화 수용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고히 천명하고, 미국의 대북 인식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려 한다”면서 “한미의 대북 접근방식에 대해 거부 의사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한미의 행동을 기회로 포착해 핵무기 고도화의 계기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 연구실장은 “북한은 지난 2012년 4월 헌법 개정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명문화했고, 2013년 4월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하여’ 법령을 제정한 이후 이번에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를 제정했다”고 설명하고 “이번 법령은 핵보유에 초점을 둔 원칙이 아니라 불가역적 핵정책 차원에서 구체적인 핵사용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이번 9.9절 74주년에 열병식 등 무력시위를 하지 않고 대규모 경축행사를 열었다. 김정은 총비서는 9.9절을 하루 앞둔 8일 저녁 평양 만수대의사당 앞 야외무대에서 열린 경축행사에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참석해 꽃다발을 받고 공연을 관람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본행사 앞에 항공육전병의 강하 시범과 전투비행대들의 에어쇼가 펼쳐졌으며, 9일 저녁 김일성광장에서 불꽃놀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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