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국회가 결정"에 민주당 "전액 삭감"…'긁어부스럼' 대치정국, 하루만에 철회로 끝나
미군 용산공원 반환·총선 승리 후 지어도 늦지 않아…끼워넣기 방식, 국민 납득 어려워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외국 귀빈을 만약에 모셔야 되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 공원은 개방하더라도 이 건물(청와대 영빈관)은 저녁에 국빈 만찬 같은 것을 할 때 쓸 수 있지 않겠나." (3월 20일 당선인 신분 당시 윤석열 대통령 발언)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리고 용산대통령실로 이전한 뒤 내외빈 행사를 국방컨벤션센터 등에서 열었으나 국격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이에 부속시설 신설 필요성을 국회에 제안한 것으로, 예산안의 최종 결정권은 국회에 있다." (9월 15일 오후 9시 SBS 단독보도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

논란이 일어난지 만 하루만에 대통령실 영빈관 신축 계획은 16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전격 철회' 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국회 다수당으로서 신축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나선 더불어민주당의 비토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명분이 없어서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용산 대통령실 이전을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명분은 바로 '실용주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 3월 20일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밝히면서 "대통령 권위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기 위한 각오와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고자 하는 저의 의지를 헤아려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대통령실 이전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했다.

   
▲ 3월 20일 윤석열 대통령(당선인 신분)이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직인수위 제공


이번 영빈관 신축 계획이 세간에 충격을 던진 것은 그 진행 방식이었다.

만약 대통령실 기존 입장대로 부속시설 신설 필요성이 분명하고 시급한 사안이었다면, 이를 입안 초기부터 전면 공개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관련 입장을 뒤집는 신축 계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 신축 계획을 사실상 숨겼다.

그것도 기획재정부가 지난 2일 국회에 제출한 '국유재산관리기금 2023년도 예산안'에 '대통령실 주요 부속시설 신축 사업' 예산을 책정한 끼워넣기 방식이었다.

예산안에는 직접 영빈관이라고 표기하지 않았지만, 시설 신축의 사업 목적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외빈 접견 및 각종 행사 등을 위한 주요 부속시설을 신축하는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영빈관 기능을 수행하는 건물을 짓겠다는 뜻을 담았다.

신축 장소도 '대통령 집무실 인근'이라고만 적었다.

문제는 이 예산안 자체가 지난 15일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재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라는 점이다.

한병도 의원이 해당 자료를 요청하지 않았다면 영빈관 신축 예산은 무사히(?) 국회 심의를 통과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실은 당장 영빈관 신축에 들어갔을 것이고, 훗날 더 큰 논란을 낳았을 수 있다.

지금은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등 3고 시대가 도래한 가운데, 복합위기가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국민 민생이 쪼들리고 어려운 상황이다. 영빈관 신축 사업에 878억 6300만원이라는 사업비를 책정하고 이를 소모할 시점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영빈관 논란이 영부인 김건희 여사 리스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16일 오후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과거 김건희 여사 녹취록에서 '청와대 들어가자마자 영빈관을 옮겨야 한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며 "무속인 충고에 국민 혈세 878억 6000만원이 더 들어가게 됐다. '복채'로 여기기엔 액수가 너무 크다"고 꼬집었다.

   
▲ 윤석열 대통령(가운데)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6월 17일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정리해 보자.

이번 사안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명분이 없었고, 추진하는 방식도 사실관계를 교묘하게 가릴려고 했다. 알려지면 영부인 리스크와의 접점이 생겨 야당의 좋은 비판거리가 될 뿐이었다.

애초에 대통령실의 누가 대체 이런 영빈관 신축을 추진하자고 했는지 궁금하다. 윤 대통령 결단으로 기재부 예산안에 관련 예산을 끼워넣은 것이라고 보긴 미지수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후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린 이후 대통령실 자산이 아닌 국가의 미래 자산으로 국격에 걸맞은 행사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이 같은 취지를 충분히 설명해 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며 "즉시 예산안을 거둬들여 국민에게 심려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밝혔다.

신축 계획을 전면 철회하라고 지시하면서 내놓은 말이다.

지난 6개월간 정권 교체 이후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있어서 내세운 기조는 '일하는 실용주의'다. '구중궁궐' 일색이던 청와대를 탈피하고 나선 것도 이를 표방해서 그렇다.

대통령실 조직 또한 효율성과 슬림화를 기조로 해서 전면적인 조직 개편을 마쳤다. 일하는 실용주의의 중심은 영빈관 같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윤 대통령이 내세운 '일하는 실용주의' 관점에서는 영빈관 등 공간적인 여건 마련에 힘쓸 타이밍도 아니고, 그 명분 또한 희박하다. 굳이 짓겠다면 복합위기가 종료된 후다. 미군 용산기지 반환이 완전히 끝난 뒤 본격적인 공원 조성을 하는 시점이나,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해 여대야소 국면을 만들어야 가능하다.

이번 영빈관 해프닝은 실용주의라는 자신의 국정 철학을 뒤집은 윤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라면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