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시황 불신해 시장 개입 지적
석유협회 "어떤 영향 미칠지 미지수"
[미디어펜=박규빈 기자]산업통상자원부가 전국 주유소·도매상에 판매한 석유 제품 가격을 공개하도록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가격 안정화와 정유사 간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이유인데, 정부가 관련 업계를 담합 집단으로 낙인 찍어 시장에 개입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고속도로 휴게소 셀프 주유소./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27일 산업부는 '석유 및 대체 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고 밝혔다. 국내 정유사별 내수 판매 석유 제품 가격을 보고하고 공개 범위를 넓혀 관련 제품 가격 안정화·업체 간 경쟁 관계 활성화가 목적이라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

입법 예고 기간은 11월 9일까지이며, 이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판매한 석유 제품 평균 가격을 일반 대리점·주유소 등 판매처별로 구분해 공개할 의무를 지게 된다.

현행법상 정유사는 전체 내수 판매량의 평균 판매 가격만 공개한다. 이들이 판매처별 가격을 공시하면 개별 대리점·주유소 석유 제품 선택권이 확대되고, 정유사 간 가격 경쟁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게 산업부 계산이다.

또 휘발유·경유 가격이 시·도별로 리터(ℓ) 당 100원 넘게 편차를 보이고 있어 정유사들의 의무 보고 사항을 추가해 전국 유가 통제 체계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광역 자치 단체별 판매한 석유 제품 가격·판매량 등도 보고토록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석유 관리 당국이 이 같은 조치를 내리는 배경으로는 올해 상반기 SK이노베이션·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사가 역대급 상반기 영업이익인 12조3032억 원을 거둔 점이 꼽힐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때문에 산업부가 업계와 시황을 불신해 불필요하게 시장에 개입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도 각 정유사들은 판매한 석유 제품의 종류별 판매 가격을 판매처별로 구분해 주·월 단위로 산업부에 보고하고 있다.

통상 원유는 정유사들이 선물 거래로 구매하고, 정제를 통해 국내 시장에 유통된다. 정유사들의 실적과 시장 가격은 선물 거래가와 싱가포르 복합 정제 마진율에 따라 정해지는데, 정부는 정유사들이 담합 행위를 통해 소비자 가격을 높여왔다고 판단했다.

실제 산업부는 지난 6월 법정 최고 유류세 37% 인하분이 시중 유가에 적용되도록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지방자치단체·유관 기관 합동 '정유사·주유소 시장 점검단'을 꾸려 고유가 시기 담합 행위를 감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시중 유통 가격이 내려가지 않은 건 그만큼 국제 유가 상승분이 유류세 인하분을 상쇄해서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아직 시행까지 40일 남은 시점인데, 아직까지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예단할 수 없다"며 "10월 중순 경 공식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물가 안정을 정책 기조로 내세워 전 부처가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 교수는 "석유 당국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건 정유사들이 담합 등을 통해 이익을 거뒀다고 전제하는 셈"이라며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횡재세나 산업부의 일선 판매처 제품 가격 보고 의무화는 시장 경제 체제의 매커니즘과는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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